아침. 몸이 가뿐하다. 현관문을 열고 바깥 기운을 느끼는 순간 꽃망울 터지듯 가슴이 확 열린다. 2월 4일, 입춘이다. 아! 용케도 입춘이란 절기를 내 몸이 알아차렸다. 그 기분에 들떠 며칠을 보냈다. 다시 2월 중순 어느 날, 또다시 가슴꽃밭에 자라던 꽃들이 만개했다. 다짐했다. 봄 마중 떠나자고.
봄 마중 나갈 채비로 생활을 조금 바꾸었다. 그 시작은 아침밥 먹고 출근하기다. 지금까지 2주일은 잘 지켰다. 막상 해보면 이런 일은 별거 아니다. 밥은 저녁에 자기 전에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앉혀두고는 다음날 일어나 코드만 꽂으면 된다. 혼자 밥 먹는 경우 반찬도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 다행히 입맛이 까다롭지 않아, 국거리 하나면 된다. 지난 주엔 참치김치찌개로, 이번엔 돼지고기 김치찌개로 바꾸었다. 계란도 한 줄 사다가 냉장고에 채웠다. 조만간 현미도 사다가 좀 더 ‘화려한’ 밥상을 만들 생각이다.
출근시간도 앞당겼다. 아침 7시30분까지 출근하기. 다행히 이것도 지난 일주일간 잘 지켜졌다. 아침인지라 버스타고 출근하면 집에서부터 회사까지 딱 30분이면 출근이 끝난다. 욕심만 내면 좀 더 일찍 출근할 수도 있을 듯 싶다. 아침 공기는 도심이든 집앞이든 상쾌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얻은 시간은 나를 위해 쓰기로 했다. 책을 읽든 글을 쓰든. 몸이 익숙해지면 그동안 안 해본 일을 아침시간에 해볼 작정이다.
봄은 시작이고, 봄은 변화다. 봄은 생기 그 자체다. 올 봄은 내겐 더욱 그렇다. 새로운 시작이다. 인권위에 남아도 새로운 일이고, 인권위를 떠나 백수로 지내도 새롭다. 그와 상관없이 내 봄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봄 마중을 결심으로 비롯하고 싶지는 않다. ‘決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을 풀어헤치는 방법으로 이뤄가고 싶다. 그저 봄처럼 자연스럽게,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마음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올 봄엔 사람들과 대립하지 말아야겠다. 설득하지도 말아야겠다. 그저 내 좋은 일을 찾아 힘닿는 데까지 해봐야겠다. 그 일에서 얻은 즐거움만큼 남에게 무엇을 나눠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연이 떠난다면 개나리보다 더 진노란 웃음으로 보내주어야겠다. 집착하지 말아야겠다. 혼자 지내도 좋고, 또 새로운 인연이 닿아도 좋은 나날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봄은 그만큼을 안다. ‘열흘 동안 붉지 않는다’고 그 꽃을 나무라지 않는다. 열흘을 채우지 못하고 사그라지면 그것만으로도 한 우주가 이미 이뤄졌음을 안다.
몇 년 전부터 길을 걷다가 자주 취하는 몸짓이 있다. 두 팔을 양옆으로 나란히 펼치고 서서 눈을 감는다. 두 팔을 스치는 바람을 맡는다. 거창하게 말하면 명상이다. 아주 짧은 명상…. 올해는 틈틈이 봄을 내 몸으로 받아야겠다. 마침, 인연으로부터 즐거운 시디를 한 개 얻었다. 지금 그 시디를 듣는다. 글을 쓰다가도 어깨가 덩실거린다. 가끔은 빈방을 무대 삼아 몸도 흔든다. 이정현 3집. 덕분에 봄맞이 시도 한편 보았다.
아이 참!
당신,
그 날아갈 듯한 어깨에 가득한 게 봄이 맞나요?
‘닭살’ 돋는 이 글이 오늘은 그냥 시다. 내 앞집 작은 뜰에 서 있는 감나무가 새순을 내민 모습을 보니 감나무에게 헌사 할 詩다. (2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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