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6일 오전 10시 30분, SBS ‘뉴스추적’팀에서 취재를 오기로 했다. 전날 오전에 연락을 받았다. 기자는 임금체불 건으로 진정을 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국가인권위의 입장을 듣고 싶다고 했다.
질문 요지를 팩스로 받아, 팀장과 취재 협조 범위를 의논했다. 질문은 내가 충분히 정리할 수 있었다. 인터뷰는 진정상담 접수팀장이 하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접수팀장은 홍보팀에서 진행하라고 해 결국 내가 응하기로 했다. 이로써 인권위라는 이름으로 티비에 나오는 일이 세 번째가 되는 셈이다.
첫 번째 출연은 1월 말 정도에 방송된, MBC <전유성․손범수의 모닝카페>였다. 당시 인터뷰 내용은 ‘천호동 성매매 여성’건이었다. 이날 출연은 조용히 묻혔다.
두 번째 인터뷰는 2월 3일 KBS <추적60분>으로 첫 번째와 같은 내용이었다. 이 방송 후에는 지인들이 티비에서 나를 보았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방송이 나가고 한 이틀쯤 있다가 사무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두어 마디 나누고 보니, 대학교 구내서점 주인아저씨였다. 대학 다닐 때 거의 모든 책을 구내서점에서 주문해 구입해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서점 아저씨는 학생회 일하던 이들과 무척 친했다. 아저씨를 본 지 거의 5년 여 만에 통화했다. “졸업 후에도 그런 좋은 일을 하고 있느니 반갑다”고 말한 아저씨는 광화문 근처에 나올 일이 있으면 들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거의 7년여 만에 연락한 지인도 있었다. 군대에서 나보다 한달 앞선 고참이었다. 티비를 보고는 무척 반가웠단다. 그는 이메일 주소를 묻더니, 그날 오후 이메일 한 통을 보내왔다.
“한번 만나고도 싶고, 하지만 연락하기는 힘들더군요. 언젠가 다른 인연으로 만날거라 생각하며, 노정환씨와 저는 인연이 있는 것 같아요. 그때도 그랬지만 반드시 다시 만날 거라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제 우연히 TV를 켜서 보니 노정환씨가 나오더군요. 수염은 기르셨지만 알아볼 수 있었어요. 아주 좋은 일 하시는 것 같았어요. 사회봉사직이지요? 정말 보람 있는 일 같고 부럽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지난 후에는 여수에 사는 공선옥 누나가 전화를 걸어왔다. 설날이고 해서 안부 전화한 것이란다. 선옥이 누나 역시 티비에서 나를 보았다고 했다. 그동안 전화 통화 하며 온갖 수다를 떨었지만, 정작 누나는 나를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내 얼굴을 들키고 말았다.
티비는 그처럼 대중성의 위력을 과시하고 들었다. <작은이야기> 전 편집장도 덕분에 전화를 걸었고, 심지어 사무실 근처 식당 아줌마도 알아보곤 했는데, 수염을 기른 모습 때문에 그 기억이 오래 가는 듯 싶었다.
티비의 대중성은 가족이라고 비껴 갈 리 없었다. <추적60분>이 방송되던 날 밤, 인천에 사는 큰누나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너 직장 옮겼냐?”
나는 집에 티비도 없고, 그날 ‘추적60분’이 방송된다는 것도 잊고 있던 터라 무슨 소린가 싶었다. 그동안 <작은이야기>를 그만 둔 일을 가족들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지금의 내 신분이 부유하는 상황에서, <작은이야기>를 그만두고 국가인권위에서 일하는 상황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에 ‘취직’했다고 말할 수도 없고, 놀고 있다면 실직했다며 걱정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인권위가 어떻게든 정리될 때까지는 함묵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티비가 그 함묵을 보기 좋게 깨 버렸다. 누나에게는 나중에 다시 알려주겠다고 간단히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다만 어머니나 아버지에게는 절대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 어머니는 내가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하면 상당기간 고민에 휩싸일게 분명했다.
SBS 취재가 있던 26일 아침 출근하기 전에 입을 옷에 신경 썼다. 지난번 ‘추적 60분’ 인터뷰 할 때 흰색 목폴라티에, 2, 3센티는 자란 수염을 깍지 않았는데, 국가인권위 내부에서도 부적절했다는 의견이 나온 모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 인터뷰에 그냥 평상시처럼 옷을 입고 나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양복에 넥타이는 취향상 도저히 입을 수 없었다. 그쯤에서 대안으로 개량한복을 입고 갈까 싶었다. 그러나 그도 곧 포기했다. 결국 절충안으로 티에 자켓을 걸쳤다. 그런대로 차분한 맛은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침 10시 무렵, 급한 일들을 우선 정리하고는 그제야 인터뷰를 준비했다. 접수서류를 보며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했다. 뉴스추적에서 취재하고 있는 건은 진정인들이 진정 당시 언론에 알리고자 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진정이 접수되었다는 사실 정도는 확인해 줄 수 있었다. 취재 약속 5분을 남기도 나는 부지런히 답변 내용을 외웠다. 아침에 공들여 골라 입고 왔던 자켓은 ‘조폭같다’고 해서 벗어버렸다. 이쯤이면 되겠다 싶었는데, 회의에 들어갔던 팀장이 다가와 한마디 던졌다.
"SBS건 접수팀장이 인터뷰하기로 했어. 그쪽으로 넘겨.“
“그래요.”
국가인권위 이름을 달고 나올 뻔한 세 번째 티비 출연은 그쯤에서 멈췄다. 서운하거나 아쉬울 것은 없다. 그냥 그런 일이 있을 뻔했다는 것 정도다. (2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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