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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2+33

포인세티아, 그리고 14년만의 대답



선배의 책 출판기념회가 끝나고, 여의도의 한 포장마차에서 출판사 사람들과 뒤풀이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편집장은 상업적인 면에서도 선배의 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감성적 성찰로 사물과 일상을 돌아보는 이 옥중산문집을 요즘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는 내 추측과는 달랐다.

나는 지금 단 하나의 이유로 그 편집장의 말을 믿기로 한다. 그 편집장이 겪은 ‘사소한’ 일화 한 토막 때문에.

어느 날 편집장은 술을 마시던 일행들이 단란주점에 가려했을 때, “우리가 비록 몸은 이렇게 (‘현장’에서 동떨어져) 살지만 마음만은 부끄럽게 살지 말자”며 저 80년대의 신념 한 자락이 담긴 마음을 내비쳤다고 한다.


선한 이가 반드시 승리하지는 않지만, 오늘은 그 편집장의 말을 믿기로 했다. 절망보다 큰 희망을 가꾼 선배의 글을 책으로 엮을 궁리를 한 편집장이라면, 선배가 본 희망이 어떤 빛깔인지 짐작하고 있으리라. 어느 자리에 있었던 편집장과 선배는 80년대를 ‘살아내야’ 했던 이들이었으니. 

때론 사람을 읽는 법은 그처럼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되나 보다.


1. 

<비상을 꿈꾸는 새는 대지를 내려다본다>(호미 펴냄)

책장을 넘기며 그동안 전화 통화로만 감지했던 선배의 일상을 만났다.

6시 30분 기상 방송과 동시에 쏟아지는 수용자들의 박수소리로 시작하는 아침부터, 산등성이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오늘에 감사하고 내일의 안녕을 기도하는 저녁까지. “팬티 한 장만 달랑 걸친 채” “다리굽혀펴기 500회, 팔굽혀펴기 200회”를 하며 이열치열로 사는 여름도, 벽과 천장에 달라붙은 습기를 털어 내려고 창문을 열고 찬 공기를 끌어들여 결국 바늘 바람이 온 몸을 쑤시는 겨울도 만났다.


무척 깊어진 선배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은 봄처럼 산뜻했다. ‘면벽수도’로 일궈낸 그 마음은 지극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흔한 테니스를 치면서도 배우는 일곱 가지 지혜며, 새들의 몸짓을 보고서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자연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살아갑니다. 완전한 삶, 그것은 자연과 가까운 삶, 본성에 충실한 삶입니다. 자신의 본성이 무엇인지 깨달아 그대로 살아가는 삶이 행복한 삶입니다. 그것을 깨닫게 해준 귀여운 스승들에게 감사합니다.” 


그 스승들은 “민들레와 참새와 까치와 비둘기”다. 그래서 말벗을 찾다 마음속에 그린 낙서들이 이처럼 아담한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와도 부끄러움은 묻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관심은 말벗도 없이 갇혀 있는 이로서 갖게 마련인 궁여지책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사소하고 미미한 일상에서 의미를 찾고 그 안에서 새로운 뭇 생명들의 삶을 터득해내는 그 시선만큼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 

마음이 깊어지면 눈이 깊어진다. 마음이 깊어지면, 귀가 넓어진다. 마음이 깊어지면 손과 발이 부드러워 진다. 그래서 마음이 깊어질수록 심장의 박동수는 이미 내 힘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미물들이 삶의 고개마다 쏟아놓는 한숨에도 박동수는 변주한다. 그처럼 떨림과 체득(體得)이 일상으로 스며들면, 생각이 생각을 담고 생각이 생각을 낳아 그 마음 안에는 생명이 있고 사랑이 있다.

깊어진 선배의 마음 안에 사랑이 가득 찬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불러주는 행위가 곧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만큼 가슴을 열어두는 여유도 감옥 안에서 둘 줄 알게 되었다.   
  

“당신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가장 많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요, 부른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겁니다. 부르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일지야, 밥 먹어.” “승지야, 옷 입자.”… 뭔가 덜어 주기 위해서, 나눠주기 위해서 부르잖아요. “아빠, 조금 있다 갈게.” “여보, 오늘 장보러 가요.”… 뭔가 함께 하기 위해서 부르잖아요. 부르는 바탕에는 예외 없이 사랑의 마음이 깔려 있습니다. 사랑하면 많이 부르게 됩니다.“


마음이 깊어진다는 것은 곧 성취가 아니라 성숙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을 법한 대목이다. 그래서 이번 책은 ‘운동가 김경환의 세 번째 책’이 아니라, ‘인간 김경환의 첫 번째 마음산책’인 셈이다. 그 산책길을 따라 걷다보면 새싹들이 힘 자랑하는 봄내음이 물씬 난다. 겨울이 깊어도 봄을 잊지 않는 새싹들처럼, 고단한 감옥생활 중에도 선배는 여전히 세상과의 대화법을 찾으려 한다.

면회장으로 가는 대열에 끼인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을 위해, 다른 재소자들이 그를 앞줄에 세워 발걸음을 맞추는 행동을 보고는 선배는 희망을 먼저 읽었다. 빨리 가려는 마음에 그랬다는 것을 알면서도 재소자들의 밝은 표정에 담긴 희망을 보았다. 


“저는 혁명이라는 것이 결국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대열의 맨 앞에 세우는 것. 장애우, 여성, 노동자, 농민…… 이들이 사회의 맨 앞에 설 때 비록 속도는 더디지만 정확하고 올바르게 인간 해방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만큼 선배 안에는 희망을 담은 봄이 있으며 선배가 곧 봄의 씨앗이기도 하다. 겨울을 설득하고 돌아오는 봄처럼, 이제 투쟁보다 사랑을 먼저 볼 줄 안다. 위세 떨친 함성이 아니라 꽃웃음 담은 잔걸음으로 오는 봄처럼, 평화로 이기는 법을 슬쩍 내보이기도 한다. 


3. 

그 마음 산책길에는 또한 지나온 선배의 삶에 대한 반성도 차곡차곡 디딤돌로 놓여 있다. ‘사회운동’에 매달리면서도 정작 굶어 죽어 가는 이들에겐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던 과거는 그런 반성의 디딤돌 중 하나다. 하나의 사상만이 존재해야 한다는 유일사상은 “지독한 인간 모독”이라는 말 역시 또 다른 반성의 디딤돌이다. 그렇게 차곡차곡 놓인 디딤돌을 밟고 몇 굽이 돌아 세월의 강을 건너는 선배는 마침내 '비상을 꿈꾸는 새'를 보았다.

그제야 지난 시절, 비상을 꿈꾸었음에도 눈은 현실을 보지 못하고 늘 하늘에 둔 이상주의자였음을 깨닫게 된다. 진정 비상을 꿈꾸는 새라면 혹시라도 모를 추락에 대비해야 하고 낙하지점을 보기 위해서라도 대지를 내려다보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역설적이게도 비상을 위한 날개 짓마저도 자유롭지 않을 감옥 안에서 헤아리며 머리를 끄덕거리고 있다.


그 끄덕거림 끝에 선배는 이제야 14년 전의 한 후배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14년 전인 1987년 6월. 선배는 성남시에서 제지공장 노동자로 살았다.

“동지들이 잡혀가고 있어.”

그 어느 날 저녁 한 후배는 울먹이며 선배에게 말했다. 대책을 논의한 후 헤어지려 할 때 그 후배는 불쑥 질문을 던졌다. 

“우리 승리할 수 있을까?”

80년대, 그 시대의 무게가 온통 그 말 한 마디로 옮겨왔다.


“나는 갑자기 머리가 텅 비어 버려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가슴이 먹먹해지고 까닭 모를 슬픔이 밀려와서 와락 그를 끌어안고 말았습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얼마나 처량 맞던지. 눈물 때문인지 빗물 때문인지 가로등이 뿌옇게 흐려 왔어요. 그렇게 헤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모두 체포되었습니다.”

이제 선배는 14년의 세월을 건너 다시 그 질문 앞에 섰다. 버거워서라도 충분히 비껴갈 수 있었을 질문인데, 피하지 않고 그 앞에 몸을 내놓았다. 

“우리 승리할 수 있을까?” 

이제는 “넉넉한 웃음의 아줌마가 된” 그 후배에게 내 놓은 답은 간단했다.

“이기든 지든 상관없어!”

마치 한 평생을 도를 깨우치는 데 바치고 입적을 앞둔 스님의 마지막 한 마디와 모양새가 닮았다.

“씨앗은 수평에서 싹을 틔워 수직으로 꽃을 피워. 우리도 세상 속에서 살며 배우며 사랑의 씨앗을 뿌렸잖아. 이제 비와 햇살을 맞으며 당당하게 서서 꽃을 피우자. 이 세상 어떤 꽃보다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람꽃을 말이야. 역사의 화원은 시들지 않을 거야. 눈물겨운 동지야. 내가 사랑하는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항상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기 바란다.”


4. 

포인세티아. 

선배의 책에서 처음 만난 꽃이다. 아직 빛깔도 보지 못하고 향기도 맡지 못했으니 이름만 아는 셈이다. 꽃 색깔이 아주 붉어 예수의 피를 상징한다는 그 꽃. 그러나 정작 흥미로운 것은 그 꽃의 속성이다. 빛이 완전히 차단된 어둡고, 냉기가 감도는 추운 곳에서만 홀로 꽃을 피운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빛에 닿으면, 붉은 색에 얼룩이 생긴다니 신비스럽기까지 한 그 꽃….

선배는 포인세티아를 닮았다. “춥고 어둡고 낮은 곳에서” ”평등과 평화와 혁명과 사랑이라는 이상(理想)의 꽃을” 피우려 했으니 또 다른 포인세티아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포인세티아의 꽃이다. 그리고 그 꽃을 피우려 할 때의 희망은 역설적이게도 한 줄기 밝은 빛이 아니라 ‘눈물나는 현실’이고 ‘눈물겨운 삶’이다. 그 눈물들이 ‘한 권의 꽃’을 피워내기까지 포인세티아가 느꼈을 삶의 갈증을 풀어 주었다.


그 ‘눈물나는 현실’은 백발이 다 된 칠순의 아버지에게서도 느낄 수 있다. 1․4 후퇴 때 혈혈단신 피난 내려왔던 그 아버지는 희망이었을 4대 독자 외아들을, 옥살이가 세 번째인 그 아들을 이제는 포기할 때도 되었건만 여전히 사랑을 놓지 않았다.

“얘야, 이젠 제발 있는 듯 없는 듯 살았으면 좋겠구나. 살아보면 알겠지만 인생 별 거 아니란다.”

면회 와서 남기고 간 그 한 마디가 천근의 무게에 버금가는 것도 실은 그 사랑 때문이었다. 그래서 선배는 그 한마디를 쉬이 잊지 못해 “독방에 들어앉아 한숨짓는데 괜시리 눈물이” 나는 것이다.

‘눈물겨운 삶’은 “침실이자 거실이고 변소이자 식당인 1.18평 작은 방에서” 거침없이, 그러나 무척이나 일상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 방을 함께 쓰는 용덕이와 영기가 나누는 대화.

“니 내꺼까지 다 묵는 거 아이가?”

“그리 걱정 되몬 빨리 싸고 나온나.”

“침실이자 거실이고 변소이자 식당인” 방에서 용덕이는 똥을 누고, 영기는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러니 “산다는 건 정말이지 눈물겨운 일”일 수밖에.

 

5. 

원고 교정이 한창 진행되던 때 선배는 말했다. 산문집보다는 시집을 내고 싶었다고. 그러면서 덧붙였다.

“나는 왜 책을 낼 때마다 매번 여건이 좋지 않은 지 모르겠네.”

첫 책 <또 하나의 투쟁>은 수배 중에 ‘조한백’이라는 가명으로 출간하고, 두 번째 책인  <권영길과의 대화>는 97년 대선을 앞두고 한 달도 못 걸려 출간해야 했단다. 이번 책 역시 선배는 갇힌 몸인 채로 쓴 글을 엮어 내놓았다. 


지난 한해 선배가 빨리 나오기를 바랐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것에 보탬이 되고자 바동거렸다. 그러나 이제 선배의 석방을 기원하는 일은 접을 생각이다. 대신 선배가 행복하기를 기원하련다.

출판기념회를 끝내고 난 며칠 후 형수가 전화를 걸어 왔다.

“김경환이 이번 3․1절에도 사면이 안되면 어떡하지?”

“선배는 감옥안에서도 잘 살고 있으니 형수님이나 행복하게 사세요!”

“나는 김경환이 감옥에서 나와야 행복해!”

“… …”

책머리에서 마음자세를 고쳐 앉게 하는 이현주 목사의 발문 한 구절은 이렇다. 

“이것은 그냥 글이 아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른 가지에서 피어나는 겨울꽃이다. 이런 꽃 앞에서 사람이라면 마땅히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 발문을 다시 새기며, 나 역시 “마땅히 고개를 숙여” 기원한다.

“선배…, 행복하세요.” (2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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