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 시간 째였다. 잠시 고궁을 바라보다가 이내 발걸음을 옮기고 다시 허공으로 뻗어 오른 나무가지들을 유심히 살폈다. 심지어 길가에 떨어진 손톱만한 벚꽃 잎을 보고도 발길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카메라 렌즈로 꽃잎을 들여다보다가 이내 다시 발길을 돌리고…. 함께 나온 사람들은 열심히 무엇인가를 찍고 있었지만, 중간 점검을 30여분 남기고도 내 카메라 안에 있는 필름은 한 컷도 감기지 못했다.
오직 사진을 찍기 위해, 그것도 누구를 혹은 무엇을 찍겠다는 생각도 없이 사진을 찍기 위한 첫 외출은 그렇게 예상치 못한 ‘산책’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산책이라고 하기엔 머릿속이 복잡했다.
3월 중순, 한겨레문화센터 ‘포토저널리즘’ 강좌를 신청했다. 이전부터 사진을 배우고 싶었다. 취재를 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글로만 표현하기엔 아쉬움이 남았다. 그 아쉬움을 사진으로 담고 싶었다. 비록 한 번도 검증해 보지 못했지만, 때로는 이런 시각에서 저 장면을 잡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취재 때면 종종 들곤 했다. 지난해 장터 취재를 다닐 때는 종진형에게 배우겠다고 했지만, 그처럼 계획 없이는 무엇 하나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니 정작 1백만원이나 하는 카메라는 내 손에서는 일이십 만원하는 자동카메라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올 들어 나를 위한 투자를 올해 안에 두 가지 정도는 하자고 결심했고, 그 중 하나로 사진강좌를 신청했다.
강좌는 <한겨레> 강재훈 기자가 진행하는, 나같은 초짜에겐 좀처럼 어울리지 않을 ‘포토저널리즘’을 신청했다. 국가인권위 생활로 보자면 감히 엄두도 못낼 일이었지만, 지금 듣지 못하면 결국 앞으로도 듣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수요일엔 무슨 일이 있어도 6시에 퇴근하기로 했다. 더군다나 종진형이 인권위를 그만두면서 주요 기록사진은 내 몫일 수밖에 없는 점도 사진 강좌 신청을 굳히게 하는 데 한 몫 했다.
강좌는 수요일 저녁의 이론 강좌와 일요일 오전의 현장 실습으로 이뤄졌다. 종묘 사진은 수요일 강좌가 네 번 진행 된 후인 4월 7일 가진 첫 출사였다. 아침 날씨는 약간 흐렸다. 강사의 말에 의하면 인물사진 찍기 딱 좋은 날씨라 했다. 종묘 촬영에 특별한 주제는 주어지지 않았다. 각자 개인이 고민해야 했다.
여전히 카메라 작동법도 채 익히지 못했지만, 무작정 셔터버튼을 누르고 싶진 않았다. 서른여섯 컷 안에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그 이야기를 찾기 위한 산책은 무려 한 시간가량 진행되었고, 결국 ‘나무이야기’로 택했다.
종묘라면 고궁이 대표 상징물이 되겠으나, 식상해 보였다. 그래서 고궁을 직접 찍는 앵글은 피했다. 대신 나무를 통해 고궁을 들여다보았다. 그런 입장이 선 다음에야 카메라에 필름을 넣고 셔터를 눌렀다.
어떤 대상을 선정한 후에 한 번의 셔터를 누르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먼저 필름을 한롤 밖에 챙기지 못해, 서른여섯 번의 기회로 만족해야 했다. 한 사물을 잡은 다음엔 어떤 프레임을 만들 것인가를 두고 한참 고민했다. 렌즈를 밀고 당겨 보기도 하고 서 있는 자리를 바꿔보기도 했다. 고궁의 기둥을 프레임 안에 살짝 걸치기도 하고, 문틈 사이로 저 멀리 서있는 나무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그렇게 대강 프레임을 맞추었다 싶으면 이제는 셔터스피드와 조리개 수치를 맞추었다. 조절장치가 손에 익숙하지 않아 한 번에 원하는 수치를 맞추지 못했다. 겨우겨우 조리개와 셔터속도를 맞추고 나면, 이번엔 호흡을 가다듬었다. 군대에서 총 방아쇠를 당길 때 호흡을 멈추듯이, 카메라의 셔터버튼을 누를 때도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이 모든 사사로운 행동들을 하면서 내가 언제 이렇게 정성들여 사진을 찍어 본 적이 있나 싶었다. 어느 순간 몰입돼 있다는 것을 느꼈다.
몰입. 그런 기분을 느끼고 산 지가 꽤 된 듯 했다. 무엇 하나에 푹 빠져 보는 것. 내가 몰입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글뿐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글 쓸 때의 몰입이란 복잡한 몇 가닥의 선들을 꼬아가는 듯한 몰입이다. 한 정점으로 끌고 가긴 하되 그 끌고 가는 것들이 복잡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사진을 찍을 때의 몰입은 단명했다. 생각하는 이상의 계산들과 잔머리가 작동해야 셔터를 누를 수 있긴 했지만, 호흡을 가다듬어야 하는 순간이 되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4월 중순, 종묘와 어린이대공원의 야외촬영 결과에 대한 평가회가 있었다. 슬라이드로 찍은 필름을 수강생들과 함께 보면서 강사가 몇 가지를 지적 하곤 했다. 강의 마지막 부분에 내 사진이 나왔다. 그중 한 컷은 “모두들 이런 사진 찍고 싶죠?”라는 선생님의 칭찬을 받았다. 양 옆으로 처마를 걸치고 옆으로 기둥을 세운 프레임을 설정하고 그 안에 저 멀리 서 있는 나무를 두었다. 다른 사진들에서는 중요한 결점이 발견되었다. 내 사진들이 대부분 ‘좌경’, 즉 왼쪽으로 기울인 채로 사물들이 찍혀 있었다. 내 자세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그처럼 맛을 들어가던 사진 강좌는 도중에 포기하고 말았다. 4월 22일부터 5월 17일까지 오후 6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인권위내에서 인권 교육이 실시됐다. 이 교육프로그램 때문에 ‘포토저널리즘’ 강의에 갈 수 없었다. 35만원의 수강료야 그렇다 해도 좀처럼 잡기 어려운 이 기회를 이처럼 끝내 버리는 게 무척 아쉬웠다.
이제는 대안을 찾으려 한다. 어차피 시작한 공부이니 뭔가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어차피 이번 수강으로 사진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우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까.
‘강의를 듣기 전까지는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는데, 강의를 듣고 나니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는 알겠다.’
강의에서 얻은 점이다. 그것이면 족하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될 것 같다. 잘 다독이고 가꾸어서 나를 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을 배워야겠다. (2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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