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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2+33

새로운 시스템에 던진 한 표


 

12월 초, 광화문의 허름한 김치찌개집에서 후배 둥글이와 마주 않았다. 둥글이는 이번 대선에 대한 내 생각을 듣고 싶다고 했다. 그때가 아마도 이번 대선에 대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장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았나 싶다.

한 후배는 “정치 개혁과 부정부패 청산, 그리고 한반도 평화 정책”을 이번 대선의 가장 큰 이슈로 판단했지만, 나는 달랐다. 그런 구체적이고 거창한 이슈들이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큰 기준으로 삼은 것은 ‘이슈’가 아니라, 어떤 이슈를 추진하는 ‘시스템’이었다. 즉 지금의 시스템과는 전혀 다른 비주류의 시스템으로 주류사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그런 시스템의 핵심과 과정은 ‘탈권위’와 ‘탈기득권’에 맞닿아 있다. 


이번 대선 때 한편에서는 민주세력으로의 단결을 얘기했지만, 내 관심사는 민주세력이 아니었다. 불행하게도 민주세력이라는 말은 과거의 전력으로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이름에 불과했다. 더욱이 그들은 대체로 시스템에 대한 개혁이 아니라 기존 시스템을 정치적으로 장악하는 데 관심이 있다.


그런 목표는 기존 시스템에 관심을 잃은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민주화 실현을 기준으로 보자면, 민주화 세력과 빈민주화 세력으로 나눠 민주화 세력을 편들겠지만, 내 전선의 기준은 우리 사회내의 권위에 대한 저항 여부다. 민주든 비민주든 권위를 가진 대상과는 선택을 달리 할 수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민주=탈권위’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은 경우는 쉽게 목격한다. 그래서 오랜 민주화 경력을 가졌다하더라도 가부장적인 사람이라면 나는 그 사람을 지지할 수 없다.


기존 시스템은 그 어떤 이슈를 취급하든, 이미 정형화된 틀 안에서 해결한다. 그 틀은 이미 기득권자들을 중심으로 파이를 나누게 짜여졌다. 또한 기존 시스템은 대체적으로 경제적 가치를 누가, 어떻게 선점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크다. 그만큼 일상에서 문화적으로 부딪히는 권위와 기득권의 문제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경향이 있다. 그런 시스템으로서는 탈기득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국가가 국민을 지배한 이래, 기득권 보존 중심으로 작동하는 권위적인 국가 시스템은 국가뿐만이 아니라 직장, 사회, 가정에도 스며들어 있다. 그렇게 살아온 지 50여 년이 흐른 것이다. - 혹자들은 ‘큰 것’에 대한 관심으로 ‘사소한’ 것을 털고 가자는 시각도 있지만, 그 역시 동의할 수 없다.      


내가 선택한 후보는 ‘탈권위’와 ‘탈기득권’를 핵심으로 한 새로운 시스템을 구현할 ‘끼’와 ‘꿈’을 지녔다. 내 시골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내게 내뱉는 “씨말놈아”라는 말에서 정겨움을 느끼듯, 내가 지지하는 후보의 거친 말에서 진실과 탈권위를 느꼈다. - 이는 당선 이후 이른바 나발불듯 병째로 축하주를 마시는 태도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 사회의 주류들은 대통령의 품위를 떨어뜨렸다고 무척 경악했다. 그런데 그것만큼 유쾌 통쾌 상쾌한 것은 없었다.  


나는 탈권위적인 자세가 우리 사회 이슈의 내용까지 바꿔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슈는 후배 대진이가 제기한 “정치 개혁과 부정부패 청산, 그리고 한반도 평화” 등이 될 것이다. 결국 나는 이슈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이슈의 내용을 추진할 사람의 자세와 방식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아울러 내가 지지한 후보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해보면 그것은 곧 비주류의 전형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대선은 주류에 대한 비주류의 도전이었다. 정권은 바뀌어도 주류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디제이 정권에서 충분히 증명했다. 부자가 망하면 3대를 간다고 하듯, 50여 년 동안 주류가 지배해온 사회에서 대통령 한 명 바뀐다고 그 시스템이 곧 바뀌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디제이는 비록 정치적 성향으로야 야당이었지만, 그 시스템은 주류와 다르지 않았으니 더욱 쉽게 주류에 포위당했다. 따라서 정권 교체는 디제이 때지만, 사회 교체는 이번 대선이 되는 셈이다. 기존의 시스템과는 다른 방식으로 유지되는 정부는 주류와 좀더 큰 마찰을 빚겠지만, 그것 또한 거룩한 혁명과 다를 바 없다. 


그밖에도 대선을 국민들이 축제로 즐길 수 있도록 근거를 제공한 점, - 물론 이 공은 국민들 스스로에게 돌아가야 한다. - 검은 돈이 거래되는 악습을 과감히 개혁한 점, 국민을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감동의 동반자로 인식한 점 등도 내겐 이번 대선에서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내 서툰 정치적 판단으로 규정한 ‘새로운 시스템’이란 용어는 부족하기 그지없을 수 있다. 정치적 반박의 여지도 많고 체계적 고민까지 도달하지 못한 수준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민주화 세력이니 하는 구태의연한 말을 삼갔으면 좋겠다. 과거로 평가받지 말고 현재로 인정받는 사람이 필요하다. 아울러 그 의미나 무게와는 별개로 무엇보다도 이제 민주라는 말 자체는 식상하다. 80년 광주를 내 기억의 4․19처럼 느끼는 이들에게 민주라는 말이 어떤 정치적 상상력을 남겨줄 수 있을까.


따라서 여전히 민주화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제 그 이름만이라도 바꾸었으면 좋겠다. 나처럼 시스템이라고 하든, 그 흔한 정보화 시대의 하드웨어라고 하든. 가끔 이용하는 낙지집에서는 뚝배기 비빔밥과 낙지 비빔밥이란 메뉴가 있다. 단지 온기가 있는 뚝배기냐, 데우지 않은 비빔그릇이냐 만이 다를 뿐 내용물은 똑같다. 그처럼 때론 이름이 의미를 새롭게 한다. 똑같은 비빔밥이라도 뚝배기에 담아낼 줄 아는 장사꾼의 재치같은, 문화적 감수성까지가 새로운 시스템의 내용이다.
(200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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