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은 내몸뚱아리 하나로 표현하는 언어이다. 춤은 몸을 자유롭게, 영혼을 맑게, 정신을 건강하게 한다. 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자유롭고자 추는 것이다. 그런 춤…. 우리는 그런 춤을 춘다.‘
5월 24일 국가인권위 춤 동호회를 등록하면서 내건 머릿글이다.
춤. 아마도 서른이 넘어서 였다. 춤에 관심 갖기 시작한 때는. 그 관심의 시작은 기웃거림 정도였다. 기웃거림에서 서성서림으로, 서성거림에서 엉거주춤으로 생각과 행동이 바뀌어 가면서 언젠가 춤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1년 전 쯤에는 춤을 가르쳐주는 카페까지 현장답사를 가는 적극성도 보였지만, 구경하는 것으로 그치고 말았다.
올 초 나를 위한 투자를 최소한 두 가지는 하자고 다짐했다. 그 중 한 가지가 사진이었고 다른 한 가지가 춤이었다. 그런 차에 국가인권위에서 동호회를 모집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어느 국가기관이나 동호회가 있는 모양이었다. 처음 동호회 얘기를 듣고는 기웃거림도 꿈꿔보지 못했다. 이처럼 바쁜 와중에 동호회에 가입한다고 해서 활동을 제대로 할 것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 관심사를 기준으로 동호회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은 쑥 자라버렸다.
동호회를 만드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유롭지만, 지원금을 받으려면 최소한 회원이 10명은 확보되어야 했다.
그런데 첫 수요조사 결과 춤동호회는 3명뿐이었다. 고민 끝에 본격적으로 춤동호회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어차피 언젠가는 내가 한번 배워야 할 춤이라면 이참에 배워보자는 것과, 인권위를 풍요롭게 하는 방안으로 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 결심에 따라 택한 홍보 방식은 글이었다. 나는 틈틈이 직원 이메일과 직원용 내부 게시판에 춤 동호회 결성을 위한 글을 올렸다. 글 쓸 시간이 없어서 행정교육 쉬는 시간에 틈틈이 내려와 글을 썼다.
5월 24일, 인권위 춤 동호회를 등록할 때, 회원은 총 16명이었다. 축구에 이은 두 번째로 많은 회원이었다. 그때서야 덜컥 겁이 났다. 정작 춤을 제대로 출 줄 모른다는 내 현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언제부터 춤동호회가 본격적으로 활동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동호회 결성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게 돼 기쁘다. (2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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