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2+33

사라진 시간, 내 몸의 두 번째 반란


1

손끝은 계속 허방을 짚는 듯했다. 손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맥 풀린 팔뚝은 퍽퍽 꺾였다. 몸도 따라 바닥에 떨어졌다. 밤새 불편한 자세로 자다 아침에 일어나려고 침대에 손을 짚었을 때, 저려있던 팔뚝이 맥없이 접혀버린 듯한 그 몇 번의 손동작…. 아마 누군가 그 모습을 보았다면 바닥에서 일어서려는 아이가 몸을 들었다가 제 몸 기운을 못 이겨 픽픽 쓰러지는 모습을 연상했을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은 희미했다. 다만, 내 팔이 의식보다 먼저 움직였을 뿐이었다. 


잠시 후, 물리적 시간으로 계산하자면 아마 2~3초도 되지 않았을, 그러나 정신적 시간으로는 참으로 지루하고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잠시 후, 의식이 제 자리를 찾는 듯 했다. 그때서야 땅바닥에서 일어나려고 ‘손버둥 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내가 왜 손버둥 치고 있는지는 다시 ‘잠시 후’에야 알 수 있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하던 생각에서 ‘잠시 후’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제야 팔뚝에 힘이 들어갔다. 얼굴이 화끈거렸고, 혀끝으로 만져 본 이빨은 몇 개가 달랑거리듯 매달려 있었다. 게 중 한 개는 끝이 깨진 모양이었다.

‘아! 이가 빠졌나 보다!’


그쯤에서 정신이 멀쩡해졌고 곧바로 땅바닥에서 일어났다. 근처 가게 통유리 앞으로 갔다. 언뜻 언뜻 유리를 통해 비치는 내 얼굴을 보았다. 얼굴 왼쪽이 심하게 다쳤다. 왼쪽 광대뼈 부근은 깎였다. 왼쪽 입술 부분에는 깊게 패인 상처가 났다. 그 부위, 왼쪽 입술 위와 코 옆 부분에선 피가 흘렀다. 급한 대로 마스크로 흐르는 피를 닦아냈다.

‘작살났구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6월 2일 일요일 오전 11시 30분. 삶은 또다른 세상의 블랙홀로 빠져들었다. 


2

6월 2일 일요일 오전 11시 30분. 그때로부터 10여분 전, 자전거를 타고 출근 중이었다. 홈페이지 내용을 보강하고, 배포할 보도자료도 있었다. 마침 인권현장 확인반이 두 번째 활동을 벌이는 날이라 겸사겸사 일이 맞아 떨어졌다. 월요일 아침까지 제출해야 할 서류도 몇 개 있었다. 

버스를 타고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자전거를 택했다. 평소에 자전거로 출퇴근 해보자는 욕심이 있었는데, 오늘 같은 휴일 여유에 기대 시험삼아 자전거로 출근해보자 싶었다.  


신촌로터리에서 아현동 고개까지 이어지는 오르막을 갈 때는 기어를 3단으로 올렸다. 차도에 익숙하지 않아 인도로 들어섰다. 오르막이 길어서 버겁긴 했지만, 이미 한 달여 전에 한 번 오른 경험이 있는지라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이대 전철역을 지나고 나니 이제 고갯길은 끝났다.

고개에 오르고 나니 아현역 부근까지는 내리막이었다. 남은 길은 그리 어려운 구간이 없었다. 거리상으로도 절반가량 왔다.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어 차들이 멈춰서 있는 틈을 타서 차도로 들어섰다. 자전거 뒤에 실은 가방을 묶은 끈 매듭을 만져보았다. 아차! 끈이 풀려 있었다. 브레이크를 잡고는 자전거를 세웠다. 도로가에 일렬로 주차된 자동차 사이로 자전거를 세워 두고는 끈을 다시 묶었다.


그때 숨이 가파왔다. 물이 냄비에서 끓어오르듯 급격히 숨이 차올랐다.

‘안되겠다. 쉬었다 가야겠구나.’ 

곧바로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인도 쪽으로 끌었다.

그쯤에서 기․억․은  사‥라‥졌…다….

숨이 가팠고, 쉬어야겠다 생각했고, 자전거를 인도 쪽으로 끌고 가던, 그쯤에서… 의식은 말끔히 사라졌다. 얼마 후 - 추측밖에 할 수 없는 그 시간은, 피가 많이 흘러내리지 않은 점으로 보아 길지 않았던 듯싶은 그 얼마 후 - 되돌아온 의식은 손버둥 치는 나를 발견했다.

순식간에 차올렸던 숨 때문에 기절했던 것이다. 내 몸이 내게 일으킨 두 번째 반란은 그렇게 찾아왔다. 서른 살의 여름에 찾아온 첫 번째 반란인 안면마비에 이어 약 3년만이었다.


3.

‘그쯤’, ‘얼마 후’, ‘잠시 후’로 밖에 기억할 수 없는 그 시간을 보낸 후, 정신 상태는 멀쩡했다. 상황과 사태를 파악하고는 넘어진 자전거를 일으켜 세워 근처에 묶었다. 이내 가방을 풀고는 어깨에 멨다.   

얼굴 상처를 확인하고는 근처에 사는 친구를 불렀다. 얼굴 다친 정도는 대강 치료하면 될 듯한데, 이빨은 나로선 손 쓸 방법이 없어 병원에 가야 했다. 그러나 일요일이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119에 전화를 걸었다. 일하는 치과병원을 물어보니 세브란스 병원을 알려줬다. 이윽고 도착한 친구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다행히 병원에는 의사들이 있었다. 대략 30여분 정도 치료를 받았다. 왼쪽 윗니들이 상했단다. 오른쪽에 있는 앞니는 끝이 깨졌다. 왼쪽 앞니는 신경이 죽어 버렸다. 그 옆으로 난 왼쪽 차아들이 심하게 흔들거렸다. 일단, 의사는 보철로 치아를 연결하고는 두어 달 정도 지켜 보자고 했다. 치아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4. 

월요일 아침 치과병원에 들러 다시 보강 치료를 받고 사무실로 출근했다. 몇몇 직원들이 어제 일을 알고 있었다. 어제 저녁 내 출근을 기다리던 과장이 나와 통화하고는 몇몇 직원들에게 알린 모양이었다.

얘기를 들은 가정의학과 의사 출신인 직원은 이빨 다친 것은 아무 것도 아니란다. 그러면서 당장 가정의학과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다음날엔 직접 와서는 의사들 이름까지 적어주며 빨리 찾아 가라고 했다. 하긴 쓰러져서 깨진 치아와 얼굴이야 결과일 뿐이지 원인은 아니었다. 진정한 해결책은 원인을 규명하고 그에 맞는 처방을 하는 것이리라.


웬만해서는 병원가기를 싫어하는 지라 사흘이 지난 후에야 아산병원(서울중앙병원)에 전화를 걸어 소개받은 의사의 진료를 예약했다. 그러나 예약은 곧바로 되지 않고 일주일 후에야 가능했다. 그것도 특진이었다.

예약하면서 특진이라 묘한 감정이 들긴 했다. 그러나 그만큼 절박했다. 또한 그런 것과는 상관없는 어떤 믿음이 있었다. 소개받은 그 의사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이었다. - 나중에 알았지만, 그 의사는 의약 분업 때 ‘의사’의 편에 서지 않은 이였다. - 간혹 의사라는 직업이 갖는 권위와 불친절이 싫은 나로서는, 적어도 인의협 회원이라면 그런 권위는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런 판단은 곧 의사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졌다.   


6월 11일, 병원에 가는 길은 발걸음부터 조심스러웠다. 사나흘 전부터 머리가 어지러웠다. 전날 저녁엔 걸음을 빨리 해도 어지러움이 일었다.

‘아! 무슨 병인지 모르지만 단단히 걸렸구나.’

이처럼 급격히 체력이 떨어질 수 있는가 싶었다. 어느새 이제 유서라도 써놓고 살아야겠다는 다짐까지 하게 되었다.


의사는 친절했지만, 담담했다. 몇 가지를 묻고는 간단한 검사를 해 보더니 별 이상이 없다고 한다. 쓰러지는 거야 소변을 보다가도 그럴 수 있단다. 진찰 막바지엔 기초적인 검사만 해보자고 했다. 진찰을 받고 나와 피를 뽑고, 소변을 채취하고는 방사선 검사와 심전도 검사를 받고는 병원을 나섰다. 결과는 15일 토요일 오전에 확인하기로 했다.

6월 15일. 병원에 갈 때는 과장에게 ‘비장한’ 결심을 적어 이메일로 보냈다. 내심 의사가 당장 입원하라고 하면, 며칠은 시간을 달라고 할 참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밖이었다. 진단 결과 이상이 없단다. 뒷골도 당기는 등 몇 가지 증상을 더 얘기했지만, 의사의 답은 간단했다.

“지금 이 정도면 더 이상 검사하지 않는 게 보통입니다. 간단히 약을 조재해 줄 테니까 일단 약을 복용하고 2주일 후에 봅시다.”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직원들에게 한 마디 했다.

“나는 아픈데, 의사는 내가 안 아프데요. 내가 꾀병 부리고 있나봐요.”


5. 

16일. 이제 얼굴에 난 타박상은 딱지가 떨어졌다. 그런데 또다시 몸이 들고 일어났다. 선배의 부친상에 가려다 약속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덕수궁에 들어갔다. 한 시간 정도 쉬자는 생각에 나무 그늘 벤치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시원한 바람이 좋았다.

그렇게 한 시간을 보내고 난 후 후배를 만나 병원으로 갔다. 그때부터 오른쪽 다리와 오른쪽 팔이 저린 듯 했다. 몸의 다른 곳과는 확연히 다른 그 느낌…. 낯설지 않은 그 느낌은 3년여 전 구안와사가 왔을 때 얼굴에서 스멀거리던 느낌과 흡사했다. 그 하룻 동안 다시 몸과 마음이 움츠려 들었다.

그날 저녁, 한의학을 공부하고 있는 신정 누나를 만나 건강에 대해 한 시간 정도 강의를 들었다. 다음 날,

“어제부터 오른쪽 팔과 다리가 저린 것처럼 이상해요.”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신정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시 한 번 혼나고 나서 상계동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스승 한의사에게 함께 가보기로 했다.

점심 무렵 그곳에 들러 기초 검진을 받았다. 그 결과 한의사는 큰 이상이 없다고 했다. 혈액 검사를 받고도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면 다행이라며 한 마디 덧붙였다.

“혈액검사를 받으라고 한 것은 혹시 백혈병이 아닐까 싶어서 그런 거였어요. 혈액검사 받아서 이상 없으면 됐어요. 그거 아니니까.”

결국 저렴한 값에 한약을 짓는 것으로 진단을 끝내고는 되돌아왔다.


6.

6월에 갑자기 찾아온 ‘사라진 시간’에 대한 1차 진단은 그쯤에서 끝났다. 치과에서, 가정의학과 특진으로, 한의원으로…. 아마 이번 6월에 병원에 간 횟수와 종류가 지난 32년 동안 병원에 갔던 횟수와 종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지 않을까 싶다.

이제 두어 가지 진단이 남아 있다. 치아는 좀 더 시간을 두고 보아야 한다. 8월쯤 치아를 갈아 끼우든가 운이 좋아 지금 치아가 회생한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얼굴에 났던 상처자국이 그대로 남는다면 6개월 후쯤에는 피부과에도 들러야 한다.


6월 한 달은 또한 32년 동안 내 몸에 가졌던 관심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몸을 돌보았다. 때론 상임신하는 여성처럼 ‘상상빈혈’에 걸린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혹시나 또 갑자기 가슴이 차오르면서 의식을 잃고 쓰러질까 싶어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절대 뛰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어지럽다 싶으면, 어떻게 쓰러지는 게 덜 다칠 지를 생각하며 나름대로 대비책을 세우기도 했다. - 그 대응이라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모르지 않음에도.

6월 말, 사흘 동안 병가를 내고 지리산 휴양림을 찾았다. 요양이다. 그 후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여전히 산을 오를 때 갑자기 쓰러질지 모른다 싶어 상채를 앞쪽으로 한껏 숙이고 오르긴 했지만. (2002.6.)

'서른의 생태계 > 서른의 생태계32+33'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그루 나무에 매달린 잎새처럼  (0) 2009.12.06
춤, 추다  (0) 2009.12.06
부모님과의 거리  (0) 2009.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