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마네 2기 강좌가 끝났다. 아쉬움이 많았다. 아줌마들과 만나는 것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고 그리 익숙한 일상은 아니다. 언젠가는 경험에서 시작된 느낌과, 그 느낌으로부터 비롯된 내 안의 변화 등을 차근차근 들여다보고 싶다. 몇 번인가 그 마음을 풀어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다시, 깨닫는다. 아직 여물지 않은 열매를 애써 따려 하지 말자. 그래서 오늘은 열매가 익어가길 기다리며 나무 아래를 서성인다.
지난 4월부터 줌마네 2기 자유기고가반 아줌마들을 만나면서 줌마네 게시판에 남긴 글들을 모았다. 언젠가는 열매를 만질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1. 가엾지 않은 삶을 위해
“강의를 1시에 하겠다는 아래 글이 무색해져버렸습니다. 어제 강의를 진행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일주일에 하루지만, 그 하루 짬을 내기가 한 분 한 분에게는 만만치 않다는 것은 이제는 조금 눈치채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만, 제 사정이 여의치 못해 그리 되었습니다.
그 사정이라는 것을 간략히 말씀드리면, 애초 그제 있었던 회의가 어제 오전으로 미뤄졌는데, 오전 11시경 갑자기 오후 1시 30분으로 미뤄지면서 일이 어그러졌습니다. 팀 회의가 아니라 그 윗선에서 참석하는 회의라서 개인의사를 반영하기 어려웠습니다. 어찌할까 판단하다가 그래도 아줌마님들끼리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보는 게 좋다 싶어 로리님께 전화를 드려 '자율학습'으로 대체하였습니다.
어제 못한 강의는 추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 축구에도 흐름이 있듯 이제 강의에서도 조금 풀려간다 싶었는데 다시 한번 흐름이 꺾여 버렸습니다.…“
강의가 있는 목요일 오후엔 반일 휴가를 냈다. 당연한 권리인 휴가를 쓰긴 하지만, 한 달에 두 번 자리를 비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공보담당관실 직원이 3명뿐이라 모든 결재서류엔 부득이 내 이름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강의를 진행하지 못한 그 날도 그랬다. 직원이라도 몇 명 더 있으면 한 명 빠지는 일은 그리 큰 문제는 아닐 듯 싶었다. 그러나 셋 중 한 명이 빠지고 난 후의 썰렁함을 메우기란 쉽지 않을 듯 했다.
갑자기 잡힌 일정은 목요일 오후 5시까지 기획예산처에 들어가 2003년도 예산안을 설명해야 한다는 거였다. 강의가 2시부터 5시까지니 끝내고 가기엔 늦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강의를 한 시간 정도 앞당기자는 생각에 1시부터 강의를 하자는 글을 게시판에 올렸다. 그런데 목요일이 되고 보니 또다른 복병이 등장했다.
그 전 시간 강의에서 아줌마들이 과제로 제출한 장 취재 기사를 평가했다. 그 강좌를 끝내고는 이제 조금 감이 붙는다 싶었다. 그 감이 이날 출강 기회를 놓치면서 함께 끊겨버렸다. 더욱이 강의가 한 달에 두 번 있고, 다음 내 강의까지는 3주가 걸리기 때문에 그 흐름을 되돌리기엔 쉽지 않았다.
2. 내 안의 또다른 욕심
“그렇잖아도 지난번 강의시간에 유쾌하지 않은 모습을 본 듯해 마음에 걸려 있었는데, 오늘도 결석을 하신다니… 쩝쩝… 이맘쯤 되면 다들 첫 수강신청 했을 때를 생각하면서 '그 동안 뭐 했나 싶은 생각들도 들 텐데' 이제 조금 더 가면, 일차 목표의 끝이니까 힘을 내면 좋겠습니다.
제가 지리산을 1년에 한번 정도는 갑니다. 처음 산에 갔을 때, 힘은 들고 이만큼 걸었으면 뭔가 목표지점이 나타나야 하는데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걸어온 길의 성과는 참 무의미해집니다.
요즘엔 지리산을 가면 길이 훤합니다. 어디쯤 가면 어떤 바위가 있고 어디쯤에서 휴식을 취하면 지리산 바람으로 샤워도 할 수 있는지. 그런 여유는 오직 초행길의 경험이 축적된 결과입니다.
오늘까지 지난 시간 과제를 내신 분이 두 분 밖에 안 되는 걸 보면 다들 지쳐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시간에 출석하신 분들이 얼마 되지 않아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강의라는 게 말미에 가면 애초 수강생의 50%정도가 남습니다만, 줌마네는 1기분들의 시작이 좋아서 내심 최소한 80%까지는 남아 있도록 하자했는데, 뭐 그런 기대 - 스스로 허물고 스스로 다시 세우는 - 에 따른 씁쓸함이겠죠. 이제 제가 여러분들과 공식적으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오늘하고, 토요일 정도입니다. 잘 마무리합시다.“
강의를 하다보면 고민거리가 강의 내용만은 아니다. 강의 분위기 또한 중요하다. 대학졸업 이후 자발적으로 강의를 들어본 게 세 번 정도 된다. 그 때마다 강의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는 1위가 강사의 자질이고 2위가 수강생들의 분위기였다. 강사의 자질이 우선시 되는 거야 당연지사다. 수강생들의 분위기는 굳이 누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몇 강좌를 지내고나면 자연스레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특히 소금같은 인물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엔 썰렁한 분위기가 흐르기 일쑤인데, 이럴 경우엔 강의 자체가 쉽지 않다.
지난 번 한겨레문화센터 사진 강좌를 들을 때 우리 기수의 분위기는 ‘이상한’ 편이었다. 이전 기수들의 경우 강의가 끝나면 자연스레 술자리로 향했다는데, 우리 기수는 그런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결국 강의가 끝날 때까지도 함께 공부한 이들의 이름 정도도 외우는 게 쉽지 않았다.
대개 사설 강좌의 경우 전체 강좌의 1/3 정도 지나면 처음 수강 때 기대했던 것과 내용이 다르다는 걸 발견한 이들이 떨어져 나간다. 시나브로 한두 명씩 떨어져 나가다가 마지막에는 50% 정도의 수강생들이 끝까지 남게 된다.
그런 점에 비하면 줌마네 수강생들은 일반 강좌의 수강생들보다 결속력이 강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강의가 종반으로 흐르면서 과제를 제출하는 이들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강의 출석률도 60% 정도로 떨어졌다. 그 무렵 한 아줌마가 강의에 출석하지 못하는 이유를 게시판에 간단히 올려두었다. 그런데 마침 전 시간 강의 때 뭔가 흐름이 좋아 않다고 느꼈던 분이었다. 비교적 장문의 글을 게시판에 남긴 이유는 그런 느낌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굳이 그 아줌마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강의를 진행하면서 삶에 대한 고민들도 나누고 싶었다. 선생이 단순히 지식의 전달만으로 그의 임무를 다했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눈치껏 빠져나온 시간의 제약을 벗어날 길이 막막했고, 아줌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만만치 않기에 그야말로 ‘욕심’이었다. 그런 욕심만 남은 현실을 생각하면 이처럼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일은 모험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게시판 글에 대해 두 가지 오해가 발생했다. 아줌마 중 한 분은 이메일로 의견을 보내왔고, 다른 한 분은 게시판에 댓글을 게시했다. 그러나 다시 무엇을 부연하고 싶은 마음은 그쯤에서 그쳤다. 생각을 글로 푸는 것은 분명 글만큼의 한계가 있다. 이를 해명하기 위해 무엇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그 글만으로 끝이 아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삶을 포괄적으로 전망할 수 없을 때 무엇인가 조언하는 일은 쉽지 않은 법이다.
결국 아줌마들과 최대한 동질감(?)을 찾는 일은 줌마네 강의를 맡고 있는 동안 내가 풀어야 할 과제다. 내용상 강의를 잘하는 것과 함께, 아줌마들의 글쓰기 고민에 대안까지는 없더라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모두 좀더 나를 들여다보는 작업을 해야 가능할 것 같다.
3. ‘기사평론가’되기
“훗날 자유기고가로 글 쓸 때도 다른 분들의 자료를 찾아 드릴 수는 없을 겁니다. 내일 강의 때 말씀드리겠지만, 예습과제를 찾는 일부터가 자유기고가 훈련입니다. 인터넷 못하시는 분은 아마 글쓰기 힘들다는 걸 아셔야 할 것이고… 그만큼 발품을 팔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서점에 갈 분들은 아마 서점에서 '시사저널'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이미 때가 지나 모두 수거해 갔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할 지가 또 앞에 놓인 과제인 겁니다. 그것까지 풀어야 합니다. 동지로 동료를 돕는다는 것은… 강의 시간에 글쓰는 과정에서의 자신의 경험을 충분히 털어놓는 것이면 족합니다.
아무튼 미리 그런 꼼수까지 밝히지 않은 저도 주의를 받아야 할 것 같고. ○○○○님께도 주의 카드를 드려야겠습니다.”
줌마네 2기 강의시간에는 1기 때와는 달리 ‘기사 읽기’를 진행했다. 일간지나 주간지 등에 나와 있는 기사 중 한 편을 선정해 그 기사를 읽고 각각의 관점에 따라 분석해 보는 방법이다. 독자 입장에서 읽는 기사와 글 쓰는 이의 입장에서 읽는 기사는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를 발견하는 게 목표다.
기사읽기 첫 과제는 <시사저널> 650호에 실린 '조폭 때려잡고 그녀가 웃네'라는 기사였다. 기사의 구성이 그리 복잡하지 않아 첫 강의용으로는 무난해 보였다.
강의를 이틀 남겨 두고 이 내용을 줌마네 게시판에 공지했다. 기사를 미리 읽어오면 강의 시간에 좀 더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료찾기에 대한 연습을 해 보자는 거였다. 인터넷을 이용하면, 자료 찾기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아줌마들로는 그것 역시 익숙한 경험이 아닐 듯 했다. 그런데 과제를 내고 난 이후 수강생 중 한 분이 그 자료를 게시판에 올려놓았다. 동기들이 겪을 자료 찾는 수고로움을 덜어주겠다는 판단에서 였다. 위에 옮겨놓은 게시판 글은 그에 대한 ‘주의’ 였다.
기사읽기는 이후 매 시간마다 이어졌다. 때로는 같은 소재를 전혀 다른 기사형식으로 다룬 두 기사를 비교하기도 하고, 때로는 주제어만 던져 주고 관련 기사를 찾아오게 하는 과제도 제출했다.
아울러 기사읽기를 진행할 때는 매 시간마다, 과제의 내용에 따라 분석 기준을 달리했다. 어떤 때는 그 기사에서의 아쉬운 점을 거론했고, 어떤 경우엔 형식이 다른 기사가 주는 맛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강의를 진행하면서 매 기수마다 다양한 강의 방식을 개발해 보고 싶다. 이번 2기 자유기고가반에서는 기사읽기가 그런 새로움 중 한 가지였다.
4. 중성의 나
“비혼인 남성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님이나 ○○○님의 글을 읽고 나서는 ‘걱정마 나는 안 그래’라고 할거란 말입니다. 저 역시 ‘걱정마 나는 그런 일없을 거야’라고 말해야겠지만, 그 말을 꺼내는 순간, ‘푸하하하’하는 아줌마님들의 단결일치된 강고한 웃음소리가 들릴 듯하니….
우이동 그날 밤… 어찌 비혼인 저라고 불륜에 대해 할 말이 없었을까요. 그런데 하지 않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먼저 제 얘기는 역시 이성적인 분석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삶의 진득한 얘기를 꺼내는 아줌마님들의 얘기에 비해 그리 쓸모가 없습니다. 또한 제 의식은 결혼이란 제도에 대해 달갑게 생각하지 않으나, 현실에서는 고민하는 대목들이 무척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좀더 생각해볼 여지가 많았습니다.
아무튼 진득하게 싸워나가길 바랍니다. 저는 그런 싸움을 하는데 있어 글이라는 게 충분히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 무기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알려주는 것 정도에 최선을 다하지요. 누구에게 무기를 사용하고, 어떤 때 무기를 사용하는지의 여부는 오소리님이나 로리님이 틈틈이 도움을 주실 수 있을 것 같고요.“
이번 2기 강좌에서 1기 때와는 달리 새롭게 시도한 또다른 것은 이른바 현장취재와 엠티였다. 현장취재와 엠티는 즉흥적으로 제안되었다. 어느 날 야외수업을 제안했다. 날씨 좋은날 공원이나 대학 캠퍼스를 찾아 잔디밭에 둘러앉아 강의를 해보면 어떨까 싶은 거였다.
그러던 어느날 소래포구에 사는 한 아줌마가 그 근처로 놀러 오라는 얘기를 게시판에 올렸고 자연스레 엠티가자는 의견으로 좁혀 졌다. 이에 엠티를 갈 거라면 현장취재를 해보자는 의견이 보태졌고, 결국 현장취재를 겸한 엠티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몇 군데를 생각하면 끝에 인사동에서 열리는 전시와 공연을 보고는 우이동에서 1박을 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마침 경인미술관에서는 한국표현예술심리치료협회에서 주관하는 춤치료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캠퍼스라이프> 시절 <한겨레> 자유기고가반 강좌를 기획하면서 현장취재 프로그램을 강의안에 넣었다. 그때는 수강생 중 여성들의 비율이 많은데 1박이 가능할 것인가가 의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2기 강의에서는 자연스럽게 그 문제가 해결되었다.
인사동 공연 취재는 진지했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다. 아줌마들에겐 1박을 포함한 나들이라는 점이 다소 설렘을 가득 안겨주었던 모양이었고, 그 설렘이 현장취재 목적을 뒷전으로 밀어냈다. 인사동 취재를 끝내고 우이동으로 간 때는 밤 11시 무렵이었다. 이미 아줌마들은 저녁 8시경 우이동에 도착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1기 몇 명이 참석해 진행된 ‘해방구’ 프로그램. 불륜을 주제로 얘기를 나누는 자리였는데, 뒤늦게 참석한 나는 분위기 파악하느라 그저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아줌마들은 늘 자신의 삶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아줌마들의 고민은 남성들의 고민과는 다른 내용이 많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듣는 시간이 곧 좋은 경험이 된다. 아울러 얘기를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중성이 된 느낌이다. 다행히 이제는 조금씩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있다. 게시판에 글을 올린 때는 엠티를 갖다 온 지 며칠 지난 뒤였다.
엠티에 참가했던 한 아줌마가 1박을 했다는 이유로 집에서 남편과 작은 신경전을 펼친 모양이었다. 그 사연을 담은 게시판 글을 읽고는 몇 마디 적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그런 글들을 읽고 나면 비로소 내게 의무감이 불쑥 솟곤 했다. “뭔가를 써 보려고 이렇게 가끔씩 투덜거리”는 것은 바로 그 의무를 좀 더 명확히 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5. ‘전 선수 출루’에 대한 기대
“이제야 시작이네요 전○○님 글에 대해 올라온 의견들을 대강 읽어보았습니다. 우선 사적인 일을 왜 공개했느냐는 '꾸짖음'들이 많네요. 비꼬는 내용 또한 적지 않고요. 벌집을 쑤셔놓은 듯 하네요. 글 쓰신 분이 무섭다고 하였는데.. 여전히 그러한지요. 아님 다시 새로운 싸움을 준비할 수 있는지요.
‘오마이뉴스에 첫 글을 올리고 그 글이 메인에 올라가고 이에 60여개(21일 17시 20분 현재)의 의견글이 올라온 상황’을 셀프 취재해 보시면 어떨지요. 생각이 있으시면 이곳에 글을 남겨 주십시오. 아님 다른 분이 지원사격을 해주시든가(자원하세요) 함께 기획해 보도록 하죠.
이제 시작입니다. 아줌마의 눈으로 읽은 세상에 동의하는 마음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가야 할 이유와 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가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 1기 강좌에 이어 이번 기수에도 <오마이뉴스> 글쓰기를 강의했다. 지난 1기 때는 ‘강의 속 강의’로써 부록 형태였다면, 이번 강좌는 본 강의 안에 두 시간을 할당했다. <오마이뉴스> 글쓰기를 강의안에 공식적으로 넣은 이유는 간단했다. 강의가 끝나기 전에 아줌마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 싶었다. 인터넷매체에서는 가장 잘 나가는 <오마이뉴스>에 자신이 쓴 기사를 자신의 이름으로 올려보는 즐거움. 그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접해보는 일은 나름의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 몇 가지 목적으로 강좌에 넣었지만, <오마이뉴스> 글쓰기는 쉽지 않았다. 우선 기획안이 부실했다. 몇몇 아줌마들이 기획안을 냈지만, 많은 아줌마들이 기획부터 ‘포기’하는 바람에 전반적으로 흐름이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엠티를 다녀온 한 아줌마가 남편과 잠시 불편한 관계가 만들어진 모양이었는지, 심정 등을 밝힌 글을 게시판에 올려두었다. 그 글을 읽고는 <오마이뉴스>에 한번 써 보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올렸다. 결혼 6년만에 첫 외박을, 그것도 목적이 분명한 외박을 한 셈인데, 그를 대하는 남편이 싸늘한 모습이었다니 남성들의 감수성 훈련에 도움이 될 듯 싶었다.
워낙 사적인 내용인지라 혹 글을 올리고 나서 글쓴이가 난처해질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몇 번 이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렸다. 다음날 이 기사는 메인 화면에 올랐다. 남성들이 이해하기엔 쉽지 않은 문제인지라 악의에 찬 의견글도 줄을 이었다. 때문에 글을 쓴 아줌마는 적지 않게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 무렵 게시판에 남긴 글이 “이제야 시작이네요” 였다. 심사숙고 끝에 시작한 일이라면 갈 수 있을 때까지 가 보자는 오기가 발동했다. 줌마네에서 강의하는 동안은 “아줌마의 눈으로 읽은 세상”에 대한 글쓰기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악의에 찬 의견글과의 마찰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새로운 한 판을 위해 후속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주문을 게시판에 올린 것이다. 그러나 후속기사는 이어지지 않았고, <오마이뉴스> 기사쓰기는 여기서 끊어지는 듯 했다.
지난 1기 때는 강의가 끝나고 뒤풀이에 종종 참석한 적이 있었다. 아줌마들은 ‘수다’를 떨며 일상사를 언뜻언뜻 비치곤 했다. 그때 나는 ‘저게 글감이 되는지’를 판단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 2기 강좌 때는 공식적인 뒤풀이가 한 차례도 열리지 못해 그런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니 게시판에서 얻은 내용을 바탕으로 기획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오마이뉴스> 두 번째 기사는 목욕탕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기사였다. 나름대로 잔잔한 의미가 있다 싶었다. 기사는 서브 화면에 올려졌다.
첫 번째 기사가 나름 ‘흥행’에 성공하자 몇몇 아줌마들이 글을 보내왔다. 게 중엔 구성이 맞지 않아 되돌려 보낸 글도 있었다. 글 가운데는 교수직을 구하고 있는 한 40대 여성을 인터뷰한 기사도 있었다. 그 글 구성에 대한 몇 가지 의견을 전하고는 <오마이뉴스>에 글을 게재해보자고 했다. 이 글 역시 메인화면에 올랐다. 여전히 의견글도 만만치 않게 덧붙었다.
<오마이뉴스> 기고를 단순히 결과만으로 놓고 본다면 홈런 두 방에 2루타가 한방이니 나쁘지 않은 기록이다. 그럼에도 좀더 많은 타자들을 내보내지 못한 게 아쉬웠다. 최소한 9번 타자까지는 내보내는 게임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오마이뉴스>는 당분간 줌마네 강좌에서는 거쳐야 할 다리가 될 것이다. 그곳에 “아줌마의 눈으로 읽은 세상”이 온전히 펼쳐질 수 있도록. (2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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