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 정확히 그날이었다. 게릴라성 호우가 급습하고 난 다음날 아침이었다. 플라타너스 잎 사이로 고개 내민 바람들이 살결에 부딪히는 순간 익숙한 무엇을 만났다. 가을이다. 선선한 기운마저 도는 바람은 급속도로 마음속까지 쓸고 갔다. 다음날 아침엔 모처럼 학교 지기가 이메일을 보내왔다.
“벌써 가을 냄새 맡았수? 아침에 자전거 타고 달리는데 가을 내음 나더군요. 그런 생각하면서 철마다 철 타던 형 생각 잠시 났고 책 받고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보낸 것도 생각났고 그랬어요.”
녀석도 계절을 맡은 모양이었다.
그 후로 서울엔 여름 우기(雨期)를 맞은 듯 며칠인지도 헤아릴 수 없는 날들 동안 비가 내렸다. 담쟁이 넝쿨들을 더욱 윤기 있게 만드는 게 빗방울이듯이, 여름 끝에 걸린 채로 내린 비는 마음 속 가을빛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그 기분에 취해 조금이라도 더 계절 안에 머물고 싶었다. 그때마다 중독증에 걸린 듯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그처럼 서성거린 채 10여 일을 보냈다.
계절에 몸 담글 줄 아는 감성을 갖고 살고 싶다. 쉽게 표현하자면 일상에서 느낌을 갖고 사는 것이다. 가을바람을 느끼며,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봄기운에 마음 설레며, 여름장마철에 무심히 긴 여행을 위해 배낭을 꾸려보는 것 등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있다는 증거 중의 한 가지로 이 느낌을 갖고 사는 일을 추가했다. 아마 유난히 가을 타는 것을 즐겨하고 있으니, 이런 느낌들이 삶에서 생소한 것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입추 이후 십여일 간의 가을바람이 유난히 마음속에 깊게 들어앉은 것은 일상의 고단함 때문이다. 습관처럼 버스에 올라 출근해, 신문 읽고 하루 일과 정리하고 아침에 잠깐 회의 끝나고 나면 어느새 오전은 고스란히 잠식당한다. 오후 역시 몇 개의 문서와 전화 통화로 쉬이 저문다. 저녁을 먹고 사무실 문을 나서면 밤 9시 혹은 10시 무렵. 그렇게 하루가 흘렀고, 그런 하루가 한 달로 모여 차근차근 서른 셋은 흘러가고 있다.
한번쯤 나를 둘러보고 싶었다. 평지를 달리던 의식이 고개를 만난 듯했다. 8월 한 달 국가인권위에서의 일도 한동안 주춤거렸다. 잡지 만들 꿈은 막상 그 설계도를 그릴 기회를 얻고서도 망설이고만 있다. 줌마네 아줌마들에게서 받은 여러 메시지들도 뭔가 의미가 있을 듯 한데 고민이 깊지 못해 정리하지 못했다.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글쓰기도 어느새 기억 결결이 먼지가 들어 앉아 버렸다. 그런 서른셋의 가을 문턱에서 다시 이별을 만났다. 어쩌면 여전히 미련에 젖어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별은 이별이다. 헤어지는 것은 그런 미련까지의 헤어짐을 포함해야 한다.
이제야 비로소 혼자살기를 실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몇 번을 굴러 떨어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산을 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시지프스의 산이 아닌 바에야 그 정신까지를 나무랄 수는 없는 것 같다. 며칠 내내 <봄날은 간다> OST를 듣고 있다.
“가만히 눈감으면 잡힐 것 같은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 같은 것들
봄은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고, 피고 아름다워서 너무나 슬픈 이야기“
이 이별 느낌까지를 안고 이번 가을에 차츰 몸이 묻혀 든다. (2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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