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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2+33

어머니가 준 생일 밥 값


 

"정환아! 며칠 있으면 네 생일이지? 내가 돈 줄 테니까 너 맛있는 것 사 먹어라이.”

8월말 어머니에게 갔을 때, 어머니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셨다. 생일날 아침에 미역국이라고 끓여 먹이고 싶었겠지만, 생일이 평일이고 내가 바쁜 줄 아니 얼마라도 돈을 주시는 거였다. 


시골에 살아본 노인네들이 힘들어도 일하기를 바라듯, 어머니 역시 놀기보다는 뭐라도 해야 한다며 여전히 일을 하고 계신다. 육신이 편하기를 바라는 게 인지상정임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돈 욕심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가 서울에 올라온 지 20년 가까이 되었지만, 한 번도 일터를 떠나 본 적은 없다. 식당일에서부터 목욕땅 청소까지, 당신의 자존심 때문에 굳이 일을 가리진 않았다.


그런 어머니가 ‘술꾼’인 아버지와 살면서 가진 유일한 희망은 아들이었다. 아들을 가르치시겠다고 솥단지까지 팔아서 서울로 이사 왔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상계동 88번지. 훗날 재개발로 인해 철거민들의 농성이 이어졌던 상계동올림픽이 치러진 그 터에 1984년에 250만원짜리 전세방을 얻고는, 그때부터 악착같이 일하셨다.
그것을 아들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한다면, 아들로서는 두려움마저 느껴지는 무서운 집착이었다. 그 집착은 아들이 대학을 나와 취직하고 나자, 아들에게 집 한 채 사 주는 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꿈은 아들로 인해 좌절되었다. 아들은 집을 원하지 않거니와, 그런 돈을 아들에게만 쓴다는 것을 수용할 수 없었다.   


몇 년 전부터 어머니에게 매달 10만원을 드린다. 그 돈으로 어머니가 하고 싶은 일에 사용하길 바랐다. 그러나 어머니는 돈을 받으려 하지 않다가는
결국 받으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돈 역시 고스란히 통장을 만들어 저축하고 계셨다.

어머니에게 내 생일 밥깂으로 2만원을 받은 날, 나는 어머니에게 10만원을 드렸다. 경제적 계산으로 하자면 내가 어머니에게 8만원만 드리면 간단히 마무리되는 거래다. 그러나 그 행위를 그처럼 거래로 정리해버리면 삶의 많은 빛깔들이 생략돼 버린다.


생일날 아침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노 선생님. 미안합니다. 생일날 미역국도 못 끓여주고. 있다가 점심 때 그 돈 가지고 맛있는 거 사먹으세요. 그 돈이면 충분하지? 그 돈으로 사먹으면 더 맛있어.” (2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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