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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2+33

"연애하고 싶습니다. 당신과…”

 


연애를 하면 수많은 기억들이 쌓인다. 때론 그 기억에 갇히기도 하고, 그 기억으로 인해 괴롭기도 하다. 내 연애의 기억을 풀어 헤친다. 이 과정이 나를 더욱 옭아맬 동아줄을 만들지, 자유롭게 날수 있는 날개를 덧붙여 줄지 지금으로선 알지 못한다.      

다만, 연애를 시작했을 때는 몰랐을 지라도 슬픔도 기쁨도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로 인한 모든 아픔과 성장도 그 모든 것까지가 연애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애는 사람을 성장하게 만드는 큰 힘이다. 비록 수많은 방황의 뒷길에서 몸과 마음이 충분히 괴로운 다음에야 미욱하게 깨닫곤 하지만…. 


#1 - 첫 만남

한 시간 여 동안 얘기를 나누고 나오는데, 참 기분이 좋았다. 깨끗한 사람을 만나고 나온 느낌. 작은 것들을 찾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한 가지 꿈을 꾸어본다. 서른 쯤 되면 정말 착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영악한 나로서는 힘든 일이긴 하지만. 지난번 다른 취재 건 때도 느낀 것인데, 이번 역시 사람냄새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1998. 6. 10.)


인터뷰를 갔던 길이었다. 이 세상에 또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날이었지만, 그 세상이 나와 어떤 인연이 맺어 질 줄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끝은 모르지만 시작은 알게 된 인연을 마음은 눈치 챘는지, 그 날 밤 세상풀이 한 자락에 낙서를 남겨 놓았다.


#2- 이름

‘갈매.’ 순 우리말로 뜻은 ‘짙은 초록빛.’ 갈매나무의 열매가 갈매인데 빛깔이 그렇다나 봐요. 이유는 우선 ○○○씨가 자주 웃는 모습이 그런 빛깔이 아닐까 싶어. 전에 근무했던 곳과의 이름하고도 맞을 것 같고. 의미를 더 붙여 본다면, ‘매’자에 사물을 연결시켜 주는 ‘매개’의 뜻을 담아볼 때, 내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데 매개 역할을 많이 한 듯해서, 어울릴 것 같고…(2000. 2. ○○.)


예상치 못한 재회했다. 여친과 헤어졌던 무렵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1년 반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나는 1년 반 전에 느낌이 좋았던 그 사람과 다시 만났다. 노을이는 그를 ‘갈매’라 부르기로 했다. 그 이름을 짓게 된 배경을 글로 써 팩스로 보냈다.


#3 - 선물  

지금쯤 집에 갔으려나! 아님, 술이 허전해 누군가를 불러 한 잔 더 마시려나. 기분이 좋네요. 정말로… 뜻하지 않는 선물도 받고…. 노을이는 맨날 말로만 얘기하고 마는데.

옷 잘 입을 께요. 나도 정말로 뭔가를 하나 사주어야겠어. 3월이 가기 전에. 의무감은 아니고. 근데 뭐가 좋을까. 이미 쎅시한 청바지도 사 버렸으니.  

근데 사무실에 들어왔는데 사람들이 모두 자기일 하느라고 나 새 옷 입은 건 거들떠도 안 보는 거야. 그래서 냉큼 이전 옷으로 갈아입었지….


하긴 미술부는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데 술 냄새 풍기면 기분이 좋지 않을 꺼야. 갈매는 행복한 사람 같아. 주변에 당신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 그런데 가끔 밤에 전화하면 갈매 안에 있는, 다른 것을 느끼지. 그걸 발견하면 참 내 기분이 묘해지지. (2002. 3.) 


남방과 하얀 면티를 선물로 받았다. 생일도 아니었고, 시험 합격일 같은 특별함이 없는 날이었다. 말지 마감으로 바쁜 어느 하루 저녁이었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날 받은 선물이 그 날은 특별한 날로 만들었다. 그 특별한 날, 감사의 마음을 이메일로 보냈다.


#4 - 고백 

당신을 만나면서 흥미로운 점을 많이 발견합니다. 당신이 가진 독특한 생각이며, 행동이며, 주변에 많은 남자들에게 ‘실연’을 준 것이며…. 더욱이 당신의 생각을 듣고 있노라면, 참 비슷한 점이 많구나 싶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신기합니다.


다행히 그 흥미로움이나 신기함을 조금은 떨어져서 볼 기회가 제겐 많았습니다. 제 마음 스스로가 그것에 조금 거리를 두고자 했습니다. 당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길이기도 했고, 자칫 나란 존재가 당신 안에 갇혀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런 저런 생각으로 6개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씁니다.

사람 관계를 규정하는 게 ‘편리’ 이외에 어떤 목적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언뜻 듭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과의 관계에 아무런 규정이 없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이 글에서 어떤 규정을 지으려 합니다.


연애하고 싶습니다. 당신과…. 

지금의 제 마음입니다. 구애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은 구애한다고 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 마음을 밝히는 것으로 만족하려 합니다. 답변은 당신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면 되는 겁니다. 어떤 마음을 보인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새로운 마음들이 생길 것입니다. 결론에 관계없이 제 마음이 어떨 것인지 짐작은 갑니다. 

마음이 편합니다. 이제 글을 접으려 합니다. 토요일 오전이면 이 글을 볼 수 있을 겁니다. (2000. 4. 8.) 


취재차 광주에 내려갔다가, 새벽 무렵 PC방에 들렀다. 그동안 6개월간 비교적 많은 만남을 가졌다. 술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그런 과정에 힘입어 이른바 고백이란 것을 하게 되었다. 이메일을 보냈다.


#5 - 혼자 사랑

누구도 나를 따라 내려오진 않았습니다. 그맘쯤 골목길을 돌아서 내려올 때.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민 그 나무들의 초록 향기도 그 골목에서는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전봇대에 매달린 가로등마저도 허투로라도 한 마디 건네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두고 마지못해 나를 따라나선 내 그 마음을, 그런 마음을 사람들은 허전하다고 말하던가요!

내 가슴에 담았던 당신의 온기를 고스란히 안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내 욕심은, 그 허전함에 잠시 길을 잃습니다. 그 미열의 어지럼증에 취해 계단을 내려설 때 쯤 나는 질문 한 개를 내 안에 던집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당신의 고마움을 압니다. 온전하지 못한, 서툴기 그지없는 내 마음을 고이 받아주는 당신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 안의 당신에게 힘들어하면서도 끝내 나를 내치지 않는 당신. 그 고마움의 빛깔이 보입니다. 투정부리듯 매달리는 나를 타이르듯 안아주는 당신의 고마움, 가슴에 고이 간직하고픈 것입니다.

그 모든 고마움들이 제 삶에 힘이 되어주는 것, 그래서 더욱 당신의 존재가 주는 깊은 고마움에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당신을 안고 있으면 내 마음이 고와집니다. 당신을 안고 있으면 내 가슴에 세상 모든 게 들어와 있음을 느낍니다. 당신을 안고 있으면 내 안에 당신의 모든 것이 들어와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만큼 행복합니다. 그것만큼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뿐이던가요. 골목을 돌아 택시를 타는 길가로 나설 때쯤, 그쯤 당신의 마음은 무엇을 담고 있을지 몰라, 적잖이 스스로를 꾸짖습니다. 오늘도 욕심만, 내 마음에만 충실한 삶을 던지진 않았는지…  당신의 마음이 많이 아팠을 것 같습니다. 마음이 무척 상했을 것도 같습니다.    

그럼에도 진실로 알지 못하는 것은 당신의 고통과 내 마음의 욕심이 충돌할 때, 무엇을 따라야 할지… 나로선 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나는 깨닫습니다. 내 힘이 미약하다는 것을. 당신을 위해 무엇 하나 제대로 해 줄 게 없다는 것을. 어떻게 사랑을 전하고, 어떻게 가꿔가야 하는지, 때론 사랑의 그림자가 만든 그 어둠에서 어떻게 참아내야 하는지. 그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그래서 더욱 조급스러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보잘것없고 서툰 표현을 숨기려고 간혹 당신의 마음을 훔쳐보려 합니다.

‘지금 나를 보면서 당신은 무엇을 생각할까. 이미 이 만남의 결론을 내려두고 있지는 않을까.’


이것 역시 바른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엔 어렵지 않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일 역시 한 정신이 필요한 일 같습니다. 혹여 당신 안에 어떤 결론이 있다면 그것을 계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 마음이 얼마나 상처를 받을 지….’

언젠가 한번은 긴 기다림이 올 것 같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좀 더 평안해지는 그 동안, 내가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끝에 무엇이 놓여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래서 간혹 나는 내 안에 슬픔을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학하듯이.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습니다. 내 안의 나에게 충실하자고. 그 안에서 당신을 만나자고. 더디 가더라도 나를 잃지 않고, 당신 역시 당신을 잃지 않고 만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마라톤 같은 이 길을 가능하면 즐겁게 가자고. 서로가 규정하지 않는 인연을 갖자고.


그러나 이 모든 말에 앞서,

오늘도 난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2000. 6.)


최소한 둘이 만드는 삶인 연애는, 그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결국 주변에서 서성거리고 맴돌고 하던 어느 날 팩스를 보냈다. 지금 나 이렇게 살고 있노라고.


#6 - 틈새

정환씨 정환씨 잘해주지 못한 거 잘 알아요.

얼마나 내 맘대로 였는 지도요. 미안해요. (2002. 2. 27.)


2년여의 시간. 그동안의 인연을 연애라 불러도 좋고, 그냥 만남이라 불러도 좋다. 다만, 그 2년여의 시간 중에 함께 있었던 시간이 적진 않았다. 그럼에도 갈매의 마음은 더디었다. 어느 날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어쩌면 만나는 기간 동안 남은 것은 미안함뿐이지 않은지….


#7 - 이별선언

헤어지자. 

… …

여…전…히…

내 마음엔 (사랑은 있으나)  너에 대한 믿음이 없고 

네 마음엔 (믿음은 있으나) 나에 대한 사랑이 없다


한 사람이라도 간절하지 않는 만남은

이쯤에서 스쳐 지나는 게 게 좋을 것 같다.

서로에게 다른 간절한 것들이 싹틀 수 있도록… 


안녕… (2002. 5. 24.)


내 마음이 어지간히 지쳤다. 그만큼 담담해지기고 했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해 불쑥 이메일을 보냈다. 그럼에도 잊는다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8 - 미련 

많이 좋아졌는데도 이만큼밖에 못해주는구나.

미안해. 고맙다. (2002. 8. 20.)


밤늦게 헤어지자는 얘기를 하고 돌아왔을 때, 문자메시지가 뒤따라 왔다.

누구에게나 미련과 집착은 있는 것. 헤어짐이 잦으면 그 헤어짐마저도 아무런 느낌 없이 다가온다. 이게 갈매와의 마지막 이별일까?

대관령 고개에서 겨울바람을 맞으며 얼었다가 햇살에 녹아드는, 그처럼 헤아릴 수 없는 며칠을 녹았다 얼었다 하는 황태가 떠오른다. 결국은 무디어져 버릴 황태의 속살같은 그 무엇이 되고 있다. (2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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