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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2+33

몸에게 묻다


 

줌마네 취재기행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오며 고민했다. 학교에 들러 학과 선후배 체육대회에 참여할 것인가, 아님 그냥 집으로 가서 쉴 것인가. 어제 가평으로 출발할 때 축구화와 운동복을 챙겼지만, 1박2일간의 취재기행을 끝낸 몸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고심하다가 기차가 성북역에 도착하자 내렸다. 체육대회에 사람들이 많이 올 것 같지 않은데, 그래도 얼굴이라도 보이는 게 준비한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마음 보탬이 될 듯 했다.


체육대회가 시작되는 오후 2시까지는 두어 시간 쯤 남았다. 무엇보다도 잠을 좀 자야겠다 생각했다. 취재기행 전날까지 며칠 동안 잠을 푹 자지 못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잘 곳은 마땅치 않았다. 학생회실은 청소 중이었고, 그나마 있는 쇼파도 낡았다.


잠시 서성이다가 청소를 마친 후배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하고 나서도 여전히 잠이 그리웠다. 잠을 좀 자야 최소한 축구라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학생회실로 왔다. 2시가 돼 사람들이 농구장으로 몰려갔을 때, 그제서야 빈 학생회실에서 선잠을 두어 시간 잤다.

4시 무렵 후배의연락이 왔다. 이제 농구랑 족구 끝났으니 축구 할 거란다. 그때서야 운동복을 입고 축구화로 갈아 신고 밖으로 나갔다. 운동장에선 다른 팀의 축구경기가 진행 중이라, 끝나길 기다리면서 한쪽 귀퉁이에서 공 주고받기로 몸을 풀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몸이 깨어났다. 그런데 한 5분 뛰었을까. 이대로 뛰다간 정말 다시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깨어났으나 기력은 방전된 듯 했다. 그때마다 골키퍼로 돌아와 몸을 추스렸다. 그렇게 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 비로소 축구경기가 시작되었다.

뛸 수 있을까? 그래, 뛰다가 쓰러져도 한번 해보자. 왠지 이번에는 쓰러져도 미리 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시간 정도 축구를 했는데 쓰러지지는 않았다. 대신 뒤풀이 가자는 선후배들의 제안을 간곡히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몸으로 맥주를 마셨다가는 정말 쓰러질 것 같았다. 


이번 체육대회에서는 ‘축구를 하자’는 한 가지 목표가 있었다. 지난 6월 졸도 때, 다친 치아는 여전히 치료중이다. 이 상황에서 몸싸움이 심한 축구경기를 뛸 수 있을까가 염려됐다. 지금까지 축구동호회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다행히 체육대회에서 한 축구경기에서 자신감을 찾았다. 몸싸움을 공격적으로 할 수 없어서 그렇지 웬만한 정도는 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보호한다고 자꾸 감싸고 돌면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 그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당분간 몸을 자주 놀려야 한다. 이게 내가 사는 법이다. (20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