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야기는 2009년 10월 1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으로 교육훈련을 떠나던 비행기에서 40대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구상했다. 그때 생각나는 대로 낙서처럼, 메모처럼 몇 글자 적었다. 미국에 도착한 첫날 시차적응이 되지 않았다. 현지시각으로 새벽 3시 무렵에 잠에서 깼다. 그때 노트북을 켜고는 다시 40대의 꿈들을 적었다.
연말이 되면 습관처럼 한 해 계획을 세운다. ‘무엇을 하자’는 정도보다는 좀 더 촘촘하다. 예산도 짜 보고, 일정도 잡아본다. 성과관리 업무를 맡아 본 후에는 성과지표도 세웠다. 2009년 성과지표 중의 하나는 ‘월평균 자전거 출근 횟수’였다. 목표치는 10일이었다.
그동안 연초 계획들은 1년 단위였다. 2010년의 계획은 달랐다. 미국행 비행기에서 싹 튼 생각은 10년 설계로 이어졌다. 2010부터 2020까지, 내 나이 40대를 엮어놓은 기간이다.
2.
대통령 노무현은 참여정부 시절 정책과제로 ‘비전2030’을 제시했다. 대통령직을 마치고 구상했던 회고록에는 ‘비전2030’이 잠시 언급된다. 대통령 노무현의 유고집 <성공과 좌절>을 읽다가 그와 관련해 작성한 문구를 읽었다.
“목표는 2020년까지 극우의 나라에서 보수의 나라로,
2030까지 중도진보의 나라로 가자는 것”
책을 읽다가 이 대목에서 생각이 한참 머물렀다. 한 나라에서 최고 권력자가 세운 비전을 10년 동안 잘 해나가면 이룰 수 있는 정치지형이 “보수의 나라”였다. 10년을 노력해도 '고작' ‘그것뿐’이라니. 내 나이 예순이 되면 잘해봤자 “중도진보의 나라”정도 된다니.
문구 앞에서 생각은 깊었지만, 좌절은 없었다. 오히려 나를 둘러싼 일련의 현실에 비춰보니 마음이 평안해졌다. 그 마음이 내게 속삭였다.
‘긴 호흡이 필요하다.’
습관이 된 1년 단위를, 10년 단위의 계획으로 바꾼 데는 그 호흡도 한몫 했다.
2009년 마흔 살의 365일은 부유( 浮游)했다. 가장 큰 부유는 신념이었다. 특히 직장에서는 신념의 재확인이 수시로 필요했다. 머뭇거리는 스스로의 행동들이 자꾸 거슬렸다. 방향과 속도까지도 예상했던 퇴보라 차분함은 잃지 않았지만, 즐겁지 않았다.
동네슈퍼보다는 대형마트를 이용하던 습성은 SSM반대를 거슬렀고, 시골생활을 하려면 자동차를 사야 할 것 같다는 예감도 반환경적이었다. 그대로 의식의 부유였다.
어느 날 눈에 띄게 빠져가는 머리카락도 몸을 돌아보게 했다. 머리숱이 많아 전혀 걱정하지 않았던 일이다. 겪고 보니 몸은 예측불허의 시간이 흐른다는 걸 새삼 느꼈다. 건강의 부유였다.
책을 펴내고, 자전거 여행을 떠나고, 인권 공부를 하려던 다짐도 모두 계획에서 그쳤다. 실천의 부유였다.
이런 부유 말고 다른 즐거움들이 있었지만, 영역이 달랐다. 대체될 수 없는, 대체해서는 곧 나태해지고 말 영역이라 그런 즐거움은 허기를 면하게는 하지만 속을 든든하게 채워 줄 수 없었다.
습관이 된 1년 단위를, 10년 단위의 계획으로 바꾼 데는 그런 부유도 한몫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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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0월 초입에 둥지를 튼 생각들을 틈틈이 굴렸다. 서울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자전거로 출근하는 길에. 그 과정에 생각들이 몇 가지 단어로 윤곽을 드러냈다.
출판, 글, 르포, 아동, 즐거움, 자전거, 나눔….
단어들이 머릿속에 자리 잡자, 땅에 뿌려진 씨앗처럼 싹이 돋으며 구상들이 구체화 되었다. 때론 합종과 연횡을 하며 모양새를 가다듬었다. 마침내 12월 초, 10년 계획을 아우르는 한 개의 문장을 찾았다.
‘생활 - 놀이가 글로, 글이 책으로, 책이 사람으로 순환하는 강’
여기에 프로젝트의 이름은‘생강40’으로 정했다. 이 생강에서 뛰어 놀 물고기들은 2010년과 더불어 뼈대에 살까지 붙었다. 씨줄로 엮은 놀이 영역은 강의, 여행, 지적 탐구로 세 가지다. 이 세 놀이 영역에 흐름을 주는 순환 통로로 블로그(글), 출판(책), 네트워크(사람)를 날줄처럼 엮었다.
이제 이 생강의 물고기들에게 아가미와 지느러미를 만드는 일이 남았다.
그것으로부터 노을이의 마흔이 비로소 시작된다.
그것으로부터 2009년의 주변 현실에 대한 나의 반격이 시작된다. (2009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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