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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랑 놀랑

더 프로답게, 더 아마추어답게 - 딸랑 한권?④


잡지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원고다. 그러나 잡지는 원고만으로 이뤄진 책이 아니다. 원고 이외의 요소들이 함께 조화를 이뤄야만 잡지다워진다. <동네 한바퀴 더> 창간호도 원고가 아닌 다른 요소들의 힘을 받아 좀더 실해졌다. 편집의 시각에서 그 힘들을 찾아 보았다.


그림 한 장의 힘   


당초 이 그림(왼쪽)은 연남동 골목길 곳곳에 놓인 평상들을 다룬 기사에 쓰일 시각자료였다. 평상들이 어디 있는지를 그림 지도로 나타냈고, 이를 평상 기사에 배치했다. 아줌마 한 명이 그렸다.

이와는 별도로 <동네한바퀴 더>의 기획에는 연남동 곳곳에 있는 가정집을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출판사들 기사와, 연남동 주변에 있는 카페들을 다룬 기사들이 있었다. 이 두 기사는 각각 다른 아줌마들이 취재를 진행했다. 당시만 해도 이 세 기사는 연관성 없이 다른 면들에 배치됐다.    


원고가 마감된 후 배열표를 짜는데, 그림지도를 평상기사에만 사용하기가 아까웠다. 한편으로는 출판사와 카페의 위치를 알려줄 수 있는 지도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세 개의 꼭지에 비슷한 느낌의 그림지도를 각각 배치하게인 또한 부담이었다. 결국 이미 완료된 평상그림지도에 출판사와 카페를 넣어 다시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부탁한 그림지도를 받고 나서는 이제 배열이 고민스러웠다. 한 장의 그림이 세 개의 기사와 연관되게 배치하려면 세 기사를 연속적으로 묶어야 했다. 아울러 이 한 장의 그림은 도비라(속표지) 같은 역할을 해야 했다. 그림지도를 이들 기사들의 맨 앞으로 빼고, 나머지 기사를 ‘동네 놀이터’라는 꼭지로 묶어 순서대로 배치했다.

그럼에도, 80쪽 분량의 잡지에 이미 특집 10쪽과 릴레이에세이 6쪽이 배치된 상황에서 특집처럼 묶음형 기사를 또다시 배치하면서 부담이 생겼다. 이 부담은 끝내 덜어내지 못했는데, 좀 더 고민할 편집요소를 취하지도 못했다. 

  


사진 한 장의 힘 


 <동네한바퀴 더> 창간호 특집은 ‘경계’였다. 기사를 작성한 한 아줌마가 쓴 특집의 편집자주는 그 경계를 다음과 같이 안내했다.

 

경계,

땅따먹기 할 때 돌멩이로 그렸던 금.

넘으면 큰일 나는 찻길 위 노란 중앙 차선.

네가 있을 곳과 내가 있을 곳을 알려주는 약속이 경계다.


어느 순간, 경계는

‘차이’라는 말을 곳곳에 붙인 채

너와 나를 가르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되어 나타났다.

시각차이, 빈부차이, 지역차이, 세대차이…….


연남동 경계에 선다.

연남동을 둘러싼 다른 동네와의 경계를 차곡차곡 밟고,

처지와 환경이 다른 사람들의 경계를 짚고,

세월에 익어 가는 생각의 변화 두런두런 나누며

세 아줌마가 연남동에 있는 경계에 섰다.


경계,

차이,

그리고 다양성.

연남동 경계에는 여러 색깔 꽃이 피어 있었다.


이 편집자주를 표현해 줄 ‘도비리(속표지)’ 이미지가 필요했다. 사진을 담당한 아줌마에게 두어 차례에 걸쳐 사진취재를 부탁했다. 그 중의 한 장이 도비라(오른쪽)로 나왔다. 기와집과 저층 및 고층아파트가 한 눈에 들어오는 이 사진은 연남동의 현재를 잘 잡았다. 아파트는 지은 지 좀 돼 보인데다, 외벽에 연남이라는 글씨까지 드러났다. 연남동의 과거와 현재가 적당히 담겨 있다. 이 정도라면 경계를 말하는데 쓸 만했다. 기와에 내린 햇살은 덤으로 내린 시각요소였다.

  

광고가 주는 힘


<동네한바퀴 더>의 광고는 잡지 제작을 위한 수입원 가운데 하나다. 잡지 인지도는 거의 없고 전문적 광고영업자도 없어 얼마나 많은 광고를 받아 올 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모든 광고를 잡지에 실을 생각은 없었다. 이를테면 학원광고는 잡지 독자층을 고려하면 연관성이 높아 영업에 유리할 듯하지만, 학원광고를 <동네한바퀴 더>에 게재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잡지가 생길 때부터 <줌마네>가 암묵적으로 세운 원칙이었다.


네다섯 분의 아줌마들이 고군분투하여 디자인이 끝나갈 무렵 광고도 마감되었다. 게재하기로 한 광고를 보니 수량뿐만 아니라 내용도 마음에 들었다. 
앞표지 안쪽에 게재한 <노리단> 광고(왼쪽)나, 내지에 게재한 <그들만이 사는 세상>(둘째 사진 왼쪽)의 책 광고 등은 오히려 잡지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까지 했다. 거기에 <민들레>의 현병호 선생님이 직접 제작한 뒷 표지의 광고는 잡지를 살려준 또다른 광고였다. "뒷표지의 광고는 잡지의 전체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잘 선택해야 한다”는 말씀이 적중했던 셈이다.   


아날로그의 힘


명색이 잡지 창간호인데 축사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의견들이 많았다. 자화자찬이라 개인적으로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굳이 그것을 빼자고 강하게 주장할 이유도 없었다. 대신 축하의 글을 싣되, 나름의 방향을 갖고 배열도 통상적으로 배치하는 앞쪽보다는 뒤쪽에 배치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축사원고는 가장 늦게 마감한 원고였다. 시인 신현림, 방송작가 노희경, <한겨레> 기획위원 홍세화, 방송인 김미화 등 유명인부터 연남동 동장, 만두집 주인까지 모두 19명으로부터 원고를 받았다. 그 내용도 나름 기획이 이뤄져 각자 한 문장으로 동네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그 이유와 함께 축하글을 받아, 축사지만 스토리가 있는 글로 만들었다.

이 원고를 디자인할 때는 아날로그적인 기술이 적용됐다. 원고를 받아든 한 아줌마가 집으로 가져가더니 밑그림을 그리고, 원고를 오려서 재배치해 지금의 디자인을 완성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