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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riting Story

존재하지 않는 신화, '영원한 사랑'(상)

 <My Writing Story> - 글, 인터넷과 놀다③


사무실 앞쪽에 앉은 직원이 지방에서 열리는 친구 결혼식에 가려고 곳곳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전화 통화 내용을 간간이 들으면서 결혼제도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처음엔 축의금을 소재로 삼을까 싶었다. 결혼식과 축의금을 엮어 ‘한 번의 잔치’가 주는 물질적 낭비가 생태적 삶과 어긋나는 지점을 써 볼까 생각했다. 그러나 단지 주장만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면 사례를 찾아야했는데 그 사례가 마땅치 않았다  


그때 권혁범 교수의 홈페이지에 있는 ‘주례사의 조건’이란 글이 떠올랐다. 권 교수는 대전대에서 ‘환경평화정치론’ ‘성과 문화의 정치학’ 등 ‘괴상한’ 정치학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1999년 제주인권학술회의에 참석하여 알게 되었는데, 세상을 읽는 재미있는 시각을 여러모로 갖춘 분이다.


권 교수의 글이라면 ‘결혼(식)’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볼 여지를 줄 수 있을 듯 했다. 예식에 나타난 남녀차별에 대한 지적과 생태적 삶은 물론 ‘평화로운 가정’을 구체화 한 이혼까지도 언급하고 있어 적절한 소재로 보였다. 더욱이 내 주장보다는 ‘취재’가 나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나처럼 평범한 사람의 주장보다는 ‘대학교수’라는 사회적 지위가 갖는 중량감도 고려했다.


글은 가볍게 썼다. 어느 교수가 주례사에 이런 조건을 밝히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글을 쓴 후 권 교수께 이메일을 보내 기사화하겠다는 얘기를 전하고 <오마이뉴스>에 게시했다.


 깨끗이 헤어질 것을 맹세하라?

어느 교수가 밝힌 ‘주례사의 조건

   

금요일 아침, 앞에 앉은 회사 후배의 전화통이 바쁩니다.

“있잖아. 내일 ○○○가 전북 부안에서 결혼을 하는데….”

친구의 결혼 소식을 다른 친구들에게 알리는 전화였습니다. 한 5분 가량 계속된 전화는 다시 서너 군데 더 이어졌습니다. 통화 내용은 대부분 축의금을 얼마나 낼 것인가를 두고 흥정을 하듯 이어졌습니다.

결혼하는 친구가 대학 친구들에게 15만원 정도를 만들어달라고 한 모양이었습니다. 앞에 앉은 직원은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상의했고, 결국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은 5만원씩, 취업이 안 된 친구들은 3만원씩 내기로 결정한 모양이었습니다. 전화 통화 중간에 잠시, 돈을 꾸어 달라는 얘기를 한 모양이었으나 앞에 앉은 직원은 꿔줄 돈은 없다고 이어 받기도 했습니다.


그 후배 직원의 전화 통화를 들으면서, 몇 달 전 어느 교수의 홈페이지에서 읽었던 ‘주례사의 조건’이란 글이 떠올랐습니다. 그 교수는 다름 아닌 현재 한겨레21에 논단을 쓰고 있는 대전대 정외과 권혁범 교수입니다.

권 교수는 50년대에 태어났으니 아직 주례를 설 상황은 아니지만, “제자들 중 일부 몰지각한 자들이 주례를 요청하고 있어 몇 년 후에는 이 역할을 맡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에 미리 그 조건을 홈페이지에 적어 두었습니다. 그 글은 말 그대로 ‘내게 주례를 부탁하려면 이런 조건에 동의해야 한다’는 사전 공지사항이었습니다.


200자 원고지 5매 분량이 채 못 되지만, 이 ‘주례사의 조건’은 결혼을 앞둔, 혹은 결혼을 할 예정인 이들이 반드시 한번쯤 생각해 볼 내용들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즉 결혼(식)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녀남차별적', 환경파괴적, 소비지향적 문제들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더욱이 결혼식에서는 감히 ‘불경’스럽기까지 한 “이혼”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권 교수가 밝힌 주례사의 첫 번째 조건인 “결혼식은 검소하고 진지하게 그리고 창조적으로 준비되고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미 누구나 고개를 끄덕거릴 말이니 넘어가도 무방할 듯 싶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조건 네 번째인 “결혼 후에 되도록 검소하게 독립적으로 살며 생태계와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존중”하라는 얘기를 듣고 보면 단순히 검소함만을 강조한다기보다는 친환경, 친생태적인 삶을 살 것에 대한 주문으로 해석할 만합니다.


북적대는 결혼식과 의례적으로 내는 축의금이 싫어 결혼식을 자주 가진 않지만, 가끔 참석해 들어 본 어느 주례사에서도 “사회적 약자의 권리”, “생태계”를 운운한 적은 없었으니 내 오지랖이 좁아서일까요. 아니면 결혼식이 새로운 삶의 출정식이긴 하지만, ‘좋은 게 좋고, 보편적인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게 주례사여야 한다는 통념적인 습관 때문일까요. 만일 후자라면, 이 통념을 깨는 권 교수의 주례사는 계속 이어집니다.

권 교수의 ‘조건’에서 더욱 눈길을 끄는 대목은 결혼식에서 발생하는 의례적인 '녀남차별'을 없애자는 내용입니다. 이는 신랑은 단독 입장, 신부는 아버지와 입장하는 기존 결혼식의 절차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래서 권 교수의 주례는 “(신랑 신부) 둘 다 단독 입장하거나 아니면 양쪽 다 부모님과 함께 입장”해야 이뤄질 수 있습니다. 폐백 역시 아예 하지 말든가 양가에 모두 올려야 합니다. 


다음 ‘조건’은 결혼식 후의 생활로 이어집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형태의 성차별에 반대하고 서로 평등하고 대등한 인격적 관계를 유지할 것을 맹세”해야만 합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가사노동을 50대 50으로 분담할 것, 딸/아들 구별하지 말 것, 처가와 시가를 차별하지 말 것 등이 제시됩니다.

주례사의 조건은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여기까지도 그런 대로 받아들일 만한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음 조건을 읽다보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집니다. 권 교수는 신랑 신부가 “당연히 평생 사랑하고 백년해로 할 것을 맹세해야”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염두해 두라고 말합니다. 즉 “불행한 결혼생활보다는 이혼이 낫다”는 것.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에 결정적 파경이 왔을 때는 흉기나 주먹을 사용해서 희망 없는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지 말고 서로 재산문제를 공평하게 해결하며 깨끗이 헤어질 것을 맹세해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사랑은 영원해야 하고 결혼은 한번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겐 청첩장 돌리는 마당에 불온한 기운이 가득한  ‘이혼’이란 말이 들어 있으니 기절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권 교수의 답은 간단합니다.

“사랑은 자유다!”


아직 권 교수의 주례사를 들어본 일이 없는 관계로, 이런 권 교수의 ‘조건’이 현실에서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봄, 아직 결혼식을 해보지 못한 이들이나, 다시 한번 결혼식을 해볼 예정인 이들은 결혼 상대방을 고르는 만큼은 아닐지라도 한번쯤 심도 있게 생각해볼 대목이라 생각됩니다.
권 교수가 제안한 ‘주례사의 조건’이 적어도 결혼생활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니까. 아니, 그 조건을 모두 받아들인다 해도 결혼은 충분히 기쁘고 즐겁게 치를 수 있으니까요.

아! 이 글을 쓰고 나니 제게 두 장의 청첩장이 배달되었습니다.(<오마이뉴스>, 2001.4.)

 

그런데…, 글을 올린 날 저녁에 <오마이뉴스>를 보니 내 글이 탑에 올려 있었다. 그것도 옆에 삽화까지 덧붙었다. 원고료를 보니 1만원이 책정됐다. 당시 <오마이뉴스>에서 원고료는 서브가 5천원, 그 밑 단계인 ‘잉걸’로 채택되면 1천원이 적립됐다.

 

그날부터 이틀 정도 내 글이 탑과 서브를 오가며 <오마이뉴스>를 장식했다. 이에 따라 독자들의 반응도 잇따랐다. 그 글에서 핵심논란은 주례사의 조건 중 하나로 내세운 ‘살다가 함께 살기 어려우면 깨끗이 헤어져라’는 것에 대한 의견이 많았다.

조회 수도 첫날 4천명을 넘었다. 이쯤 되니 이참에 연애(사랑, 결혼)론에 대한 본격적인 훈련마당을 마련해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권 교수가 쓴 주례사의 조건은 이미 기사에서 언급했듯이 우리 사회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고정관념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 글은 단지 권 교수의 홈페이지에 묻혀 있었다. 그 묻혀 있던 내용이 <오마이뉴스>의 기사거리가 된다고 판단한 것인데 그 기획이 나름 적중한 것이다. 그 기획이 해볼 만하다고 판단한 데는, <오마이뉴스>라는 매체의 성격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인터넷 매체가 가진 기본 속성이기도 하지만, <오마이뉴스> 편집방향 가운데는 논쟁거리가 되는 기사를 좋아한다는 판단이 있었다. 권 교수의 글은 주장의 주체나 내용 어디를 보아도 충분히 관심 대상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거기에 그 주제가 모든 이들이 관심 갖는 사랑이었으니 이른바 ‘먹혀들’ 수 있다고 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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