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동녘에서 솟지만 봄은 남녘에서 돋는다.
3월의 주말, 꽃들을 만났다.
강 영산의 둑에선 꽃망울을 두어 개 터뜨린 매화가 봄이다. 올 들어 처음 만나는 꽃봄이다. 반갑다. 주변엔 아직 봄이라 부를 만한 무엇도 없는데 겁없이 저 혼자 봄이다.
어느 들판의 밭둑엔 손톱만한 꽃망울들이 풀들 틈에 봄을 그려냈다. 이름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반갑다. 무리지어 피지 않았다면 조용히 잊혀 질 봄이 될 뻔 했다.
어느 마을의 집 입구에 선 나뭇가지에도 매화가 봄으로 서 있다. 꽃망울이 제법 많아 외롭진 않겠다. 영산의 둑보다 남녘에 조금 더 가까이 있다는 이
유로 그만큼 호사다.
저 꽃들 앞에선 사흘 전에 세상 가득 눈이 내렸다는 사실을 누구도 고할 수 없다. 혹여 용기 있는 자가 나서 그 사실을 말하더라도, 이미 그 사실은 진실이 아니다. 그 용기 또한 미련이 되고 만다.
꽃들은 계절을 잊어버리지 않고, 남녘 또한 봄을 포기하지 않는다. 봄이 꽃을 기억하고, 꽃이 봄을 기다려 만나는 날, 해는 동녘에서 솟지만 봄은 남녘에서 돋는다.
하여 3월에 피는 꽃들은 그저 봄이다. 꽃이 아니라 그대로가 봄이다. 3월에 오는 계절은 그저 꽃이다. 봄이 아니라 그대로가 꽃이다. (201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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