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봄날입니다.
오늘 드디어 겨울외투를 벗었습니다.
며칠 전 어떤 이로부터 선물 받은 봄 남방을 입고 기분 좋게 출근했습니다. 날씨가 좋더군요. 자연이란 사람에게 참 가까이 있습니다. 이렇게 기분 좋게 만드니 말이에요.
뭐 꼭 날씨 탓만은 아니겠죠.
어찌되었든 책을 한 권 끝내고 나니, 개운한 맛도 있겠죠.
그래서 오후엔 데이트나 할까 생각중입니다.
어제는 일요인데도 오후 5시까지 노동을 했지요.
뭐, 기자 팔자가 그렇지요.(신세 한탄은 아닙니다. 그냥 그것마저도 즐거울 수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다행히 월요일인 오늘 이렇게 책을 받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달에 책을 펴내는 데 힘이 되어 주신 OOO님께
월간 <말> 4월호를 한 부 보내 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인연으로 <말>과 만나길 바랍니다.
즐거운 세상 만드십시오.
<말>이 발행되면, 필자나 취재원에게 책을 발송한다. 주소와 우편번호를 적고 발송하는데, 올 초부터 안에 쪽지를 넣었다. 예전에 ‘작아’ 편집장에게 배운 것인데, 그 쪽지에 쓰인 글맛이 남달랐다.
쪽지는 주로 내 생활 얘기를 쓴다. 그냥 그때 쪽지 쓰는 날의 내 마음 상태를 말한다. 받는 이에게 짧게 사적인 얘기도 곁들인다. 3월 20일에 쓴 윗 쪽지는 4월호를 만들면서 도움을 받았던 모든 필자들에게 보내는 글이다.
이 글을 쓰고 남은 여백엔 각 발송자에게 따로 글을 썼다. 우선 영화감독 김기덕님께 글을 썼다. 김기덕님은 아버지를 소재로 ‘가슴속에 묻어 둔 이야기’를 썼다. 청탁할 때 전화통화만 하고 말았는데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며칠 전까지 제 책상 위에 4월 개봉예정인 단편영화 <섬>의 스틸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습니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 사내는 허망한 눈빛으로, 아니 눈빛을 잃은 모습으로 앉아 있고, 그 옆에서 여인이 소주병을 들이키는 그 장면.
처연했습니다. 제가 한 봄 타는데 한 몫 했습니다. (지금은 누가 치웠나봐요)
김기덕님 글 읽고 나서야 파란대문을 보았습니다.(저는 티비가 없거든요. 비디오도 한 달 전에야 구입했습니다.) 영화는…. 그거 참 연애 안 하면 좀처럼 보기 힘들더군요.
파란대문을 보고는 누군가에게 권했더니, 어젯밤에 보았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글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영화 많이 만드시길 바랍니다.
만화가 박흥용님께도 쪽지를 썼다.<내파란세이버> 등 만화계에서 한몫 한다고 해서 누군가 추천한 이였다. 박흥용님의 만화는 한 편도 읽지 못했지만, 이번 달에 ‘문화인물탐험’ 꼭지를 내가 담당했다. 외고로 진행되는 꼭지기 때문에 내가 직접 글을 쓰지는 않지만 세 단계 정도의 일이 뒤따른다.
외부 필자를 섭외하고, 취재할 대상을 섭외해 두 사람의 일정을 맞추고 거기에 사진기자 일정을 맞추는 것까지가 첫 번째 일이다. 이후엔 외부필자가 쓴 원고가 들어오면 검토하는 것이 두 번째 일이다. 잡지가 발간되고 나면 필자들에게 보내는 일이 세 번째 일이다.
박흥용님 만화를 거의 못 보았습니다. 아니, 만화가게를 잘 가지 않습니다. 그냥 집에서 글 쓰는 것이 좋으니까요. 다른 소일거리를 찾지 않거든요. 만화를 읽은 기억이라곤 어릴 때 서울에서(제가 촌놈입니다.) 미싱 일하던 누이가 명절 때면 사 자기고 내려오던 소년중앙이었던가요. 그게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그 안에 들었던 로봇찌빠를 재미있게 읽은 정도죠.
지난 8월까지 수유리에 살았었습니다. 빨래골 입구에요.
그곳에 3층집에서 살았는데, 그때는 창문으로 빛이 들어 화분에 나무들이 잘 자랐죠. 지금은 혜화동에 사는데 1층이어서 창문을 열어두기도 그렇고, 동향이라 빛이 잘 들지 않아요. 그래서 제 방에는 낙엽이 쌓여 있습니다.
제가 헛소리만 하는 군요. 아무튼, 취재에 응해주시고, 사진 촬영하려고 4․19탑까지 가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원하시는 만화 많이 그리시길 바랍니다.
수유리에 살고 있는 박흥용님은 이 쪽지와 <말>을 받아보고는 수고했노라고 전화를 걸어왔다. 나야 별로 한 일이 없으니 그 칭찬은 내 몫이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글을 쓰는 게 쉬운 게 아니다. 글쓰는 일이 어려운 게 아니라, 이 쪽지글 역시 시간에 쫓기기 때문이다. 책이 사무실에 도착하면 한 시간 정도 있다가 발송한다. 업무국에서 우체국에 갈 때 한꺼번에 주는 게 편리하고, 발송비도 절감할 수 있다.
대개 책이 발간되는 날, 그때서야 사람들의 주소를 파악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는 그때부터 쪽지글을 쓴다. 그러니 다듬고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이렇다보니 글은 사적인 내용을 자주 쓰게 된다. 글 쓸 당시의 내 심정. 몇 번의 전화통화에서, 취재를 하면서, 글을 통해서 느꼈던 내용을 글로 옮기게 된다. 마감이 끝나고 잡지가 발간될 때까지 조금 여유는 그때 써도 될텐데, 참 습성이란… 그게 잘 안 된다.
제주인권학술회의를 진행한 조용환님께도 책을 한 부 보냈다. 짤막하게 인터뷰를 실었다.
뒤늦은 인사드립니다. 제주도 학술회의에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학술회의에 참석하면서, 동료기자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모른 척하고 욕심을 냈습니다. 제주도가 아니더라도, 그런 학술회의가 열린다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기사를 쓰면서 저한테 제가 치였습니다. 스스로 지쳐버린 것이죠. 취재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이번 글은 취재보다도 관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거기에서 있었던 모든 토론과 주장을 즐겁게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기사에 대한 평가는 열어둘 생각입니다.(반론이 들어오면 <말>지에 실어야죠.) 학술회의를 정면에서 다룬 기사가 아니라서 자칫 학술회의의 목적과 의미를 비껴나지 않았을까 걱정도 했습니다만, 아무튼 기자는 기사로 얘기를 해야 하니까. 이번 기사는 학술회의에서 느꼈던 것들 중 부분입니다.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박미희 간사님께도 안부 전해 주십시오.
이처럼 번갯불에 콩구워 먹을 듯 글을 쓰고서 책 사이에 끼우고는 책을 발송한다.
서둘러 글을 쓰는 게 재미있는 일이긴 하다. 가장 따끈따끈한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다. 물론 이메
일을 쓴다면 좋겠지만, 아직까지는 종이 위에 쓰여진 글이 주는 맛은 화면에 나타난 글하고는 다른 맛이 있다. 라면에도 여러 맛이 있듯이, 글도 그렇다.
혹자들은 이 쪽지글을 받고 뭐라 할 지 모르겠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나’싶은. 그래도 좋다. 이 쪽지글이 적어도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면, 내 마음을 그렇게라도 표현하고 살 수 있으니 말이다. (20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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