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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riting Story

감칠맛 도는 맺음

<My Writing Story> - 글, 글과 놀다①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뒤편에 강변북로와 그 너머로 한강을 둔 7층 짜리 건물. 그 건물에 아침편지문화재단이 있다. 이 재단은 이메일 글 <고도원의 아침편지>가 사회적으로 성공하면서 만들어졌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2001년 8월 1일 시작되었다. ‘좋은 책에서 뽑아 좋은 사람들에게 보내드리는’이란 수식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책에서 찾은 의미 있는 문구를 인용한다. 그 인용문에 고도원의 생각을 짧게 덧붙이는 형식의 글인데, 이를 이메일에 담아 독자들에게 찾아간다. 이런 방식은 이메일이 우리 생활에 자리잡으면서 스팸메일과 비교되면서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더욱이 책을 소개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다. 이런 탓에 아침편지는 점차 독자들이 보낸 글과 생각으로도 꾸려지게 되었다. 


편지를 보내던 당시 고도원은 청와대 대통령연설 담당비서관(1급)이었고, 그전에는 연세대학교 ‘연세춘추’ 편집국장, ‘뿌리깊은나무’ 기자, ‘중앙일보’기자를 지냈다. 아마도 이런 이력이 바탕이 돼 그런 블루오션의 영역을 개척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1.

어느날 잡지 디자인 교정을 보러 합정동에 들렀다. 그런데 디자인 업체가 입주한 건물에 아침편지문화재단이 있었다. 그때 그 건물 1층 입구에 걸린 ‘희망이란’ 이라고 쓰인 큰 간판을 처음 보았다. 그 간판에는 짧은 한 편의 글이 쓰여 있었다.
그때 잠깐 읽은 그 글이 이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노신의 글에 고도원의 생각 역시 여섯 줄로 덧붙어 있었다. 애초 첫 편지로 보낼 때는 시행처럼 나눠쓰지는 않고 한 줄로 늘여썼다. 숫자는 노을이가 임의로 붙였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희망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①

누군가가 길을 열고 만들어가는 것이 희망입니다. ②

희망은 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만 희망입니다. ③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④

희망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⑤

실제로도 희망이 없습니다. ⑥ 

 아침편지 1호의 ‘희망이란’ 글은 이후 수 차례 재발송 됐다. 2003년 8월 1일 첫 번째 발송이 이뤄지고 난 후, 12월 3일 고도원이 런던에 있을 때 두 번째로 발송했다. 2002년 6월 24일과 그 해 10월 22일에는 ‘앵콜 메일’이라는 이름으로 세 번째, 네 번째 발송이 이뤄졌다.

그 후에는 특별한 날에 재발송되곤 했다. 2003년 4월 28일에는 ‘한국일보’에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 기념으로 다섯 번째 발송되었다. 2003년 8월 1일에는 창간 2주년 자축 메일로, 2004년 8월 2일에는 창간 3주년 자축 메일로 발송됐다.


이처럼 ‘희망이란’ 편지는 고도원의 아침편지로서는 각별한 편지다. 또한 첫 출발 첫 마음을 담은 글이니 더욱 깊은 애정이 담긴 글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침재단 사무실 출입구에 걸린 간판에도 등장 할 수 있었을 것이다. 


2.

아침편지가 적힌 간판글을 보며 펼쳐진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생각은 노신의 글에 고도원이 덧붙인 생각글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고도원은 노신의 글에 “누군가가 길을 열고 만들어가는 것이 희망”이라는 점을 덧붙였다. 누구라도 마음속에 희망을 품고 살아가자는 것을 강조했다.


그런데 고도원의 생각글이 이 주제를 극대화 해주는 표현인지가 마음에 걸렸다. 맛있게 식사를 마쳤는데 뭔가 한두 가지 허전한 맛, 그 맛이 간판에 쓰인 글을 읽을 때 가슴에 스며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희망이란’ 글에 덧붙인 고도원의 생각글은 글의 순서만 바꾸어도 그 주제를 좀더 긍정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고도원의 생각글을 다음과 같이 문장 순서를 바꾸어서 쓴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우선 ④번과 ⑤⑥번을 바꿔 본다.


<예시1>

그렇습니다. 희망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①

누군가가 길을 열고 만들어가는 것이 희망입니다. ②

희망은 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만 희망입니다. ③

희망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⑤

실제로도 희망이 없지만,  ⑥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④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 고도원의 생각글을 굳이 이처럼 문장 순서를 바꾼 이유는 마지막 글이 주는 여운을 염두 했기 때문이다. 생각글을 구성하고 있는 ④번 문장은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을, ⑤⑥번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표현했다. 내용상 보면 ④번은 긍정적 어감을, ⑤⑥번은 부정적 어감을 남긴다.
따라서 ④번과 ⑤⑥번의 문장을 바꿔, 생각글이 긍정적 어감을 주는 글로 마무리됨으로써 밝고 희망적인 내용으로 끝맺음 될 수 있도록 했다. 이 경우 애초의 생각글보다는 긍정적 여운이 더 많이 남을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이란’ 아침편지는 읽새들이 희망을 갖고 살게 하자는 의미를 주고 싶은 글이다. 따라서 읽새들은 이 글을 읽고 희망을 갖자는 생각이 좀 더 많이 들어야 편지가 이루고자 한 목적에 좀더 접근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희망이란’ 편지는 지금 상태로도 앵콜 메일로 선정될 정도로 읽새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듯 하다. 따라서 ④번과 ⑤⑥번 문장의 교체는 편지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난 후 좀더 감칠맛 도는 후식을 선택한 경우라고 보면 된다. 한식을 먹은 후에는 커피보다는 수정과 등이 후식으로 어울리듯, 희망을 말하는 글에서는 긍정적인 여운을 주는 마무리가 더욱 어울린다. 


3. 

‘희망이란’ 편지에 긍정적 감칠맛을 돌게 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은 문장배치로도 가능하다. 이번에는 ③번 문장을 맨 끝에 두는 구성이다.



<예시2>

그렇습니다. 희망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①

누군가가 길을 열고 만들어가는 것이 희망입니다. ②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④

희망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⑤

실제로도 희망이 없습니다. ⑥

희망은 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만 희망입니다. ③




‘희망이란’ 편지에 덧붙인 고도원의 생각글 여섯 문장을 펼쳐보면 각각 다음과 역할과 의미가 있다.

①번 문장은 노신 글의 의미를 받아 고도원의 생각을 덧붙이기 위한 다리 역할을 한다. ②번 문장에서 비로소 고도원의 생각이 펼쳐지며 주제가 드러난다. ③번 문장은 그 생각을 심화하고 있다. 생각글이 주장하는 핵심이자 기둥에 해당한다. ④번 문장과 ⑤⑥번 문장은 생각을 보강하는 역할이다.

④⑤⑥번 문장이 없어도 고도원이 노신 글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를 독자들은 알 수 있다. 그러나 ④⑤⑥번 문장이 빠져 버리면 잎새가 모두 진 겨울나무 같은 꼴이 된다. 밥은 먹어 허기는 채웠으나, 반찬이 변변치 않아 뭔가 좀 부족한 듯한 식사를 끝낸 기분과 흡사하다.

 

이와 같이 구성된 고도원의 생각글에서 ③번 문장을 맨 뒤로 빼면 전체 글에서 두 가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한 가지는 앞서 ④번과 ⑤⑥번 문장의 순서를 바꿔 얻은 긍정적 여운을 남길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고도원의 생각을 좀더 확실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이득이 있다. 


 ‘예시1’로 바꾼 글은 비록 긍정적 여운은 주었으나 또다른 아쉬움이 있다. 그것은 첫 번째 문장에서 여섯 번째 문장으로 갈수록, 주제가 부채꼴처럼 펼쳐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짧은 글이기 때문에 주제가 꼬일 정도의 혼란과 흔들림은 없지만, 미약하게나마 주제를 흐트러트리는 여운을 남긴다. 따라서 주제가 흩어지지 않도록 끝에 매듭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 매듭으로 고도원의 생각글에서는 ③번 문장이 제격인 셈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②번 문장과 ③번 문장은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둘 가운데 한 문장이 빠진다고 해도 전체 흐름이 어색하지 않다. 그렇게 보았을 때 이 짧은 글에서 기둥 역할을 하는 ③번 문장을 맨 끝으로 돌리면, ③번 문장 매듭 역할을 해 주제가 흩어지는 것도 막고, 긍정적 여운도 줄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③번 문장을 맨 끝으로 돌릴 때는 ④번과 ⑤⑥을 애써 바꿀 필요는 없다. 이때는 오히려 애초 고도원의 생각글의 문장 순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④번과 ⑤⑥번 문장의 순서 바꾸기는 긍정적 여운과 부정적 여운의 맛을 돋우기 위한 조치였는데, ③번 문장이 충분히 긍정적 여운을 돋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③번 문장 바로 앞에 부정적 의미를 담은 ⑤⑥번 문장이 있어, 서로 비교되는 효과까지 볼 수 있다. 


글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다보니 조금 장황해졌다. ‘희망이란’ 편지에 시시콜콜한 얘기를 풀어놓은 것은 글 자체가 가진 에너지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똑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표현을 쓰느냐에 따라 그 어감과 느낌이 달라지는 것은 말이나 글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지금 이 글을 읽다보면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시 분석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은유법이고, 이것은 수미상관법이고… 시가 주는 감흥을 느끼기도 전에 표현분해법을 배우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교육법 말이다. 그래서 조금 조심스럽다. 다만 지금 이 글이 그런 표현분해법과 다른 점이 없진 않다. 굳이 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혹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두 가지 정도만 느끼면 족할 듯 싶다. 모든 글에는 에너지가 있게 마련인데 그 글에 담긴 에너지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다른 한 가지는 글을 쓸 때 그 구성이 갖는 매력을 조금만이라도 느끼는 것이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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