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온날

사진은 노을을 놓치다



유혹만큼 고민이 깊지 않았다.
6월 21일 하지날 저녁, 야근을 가겹게 마치고 7시 30분쯤 사무실을 나왔다. 모처럼 자출한 날이라 퇴근도 '자퇴'다.  그 자퇴길에서 노을의 유혹에 빠져들었다. 유혹은 도심에서 시작됐다. 금남로 길을 건너 광주천변으로 향하는데 골목길로 비치는 노을이 색달랐다. 건물에 가려 제대로 볼 수 없음에도 예사롭지 않다. 잠시 머뭇, 망설이다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다.

그런 사정은 광주천변에 와서 달라졌다. 천변에 나오는 순간, 서쪽 하늘에 노을이 가득했다. 붉은 빛 가득한 다색의 노을은 도시와 색다르게 어울렸다. 낮은 건물들, 광주천에 비친 빛, 그 위로 딱 트인 하늘과의 조화가 낯설였다. 그 낯설음이 자전거의 바퀴를 멈추게 했다. 

광주천변에 자전거를 세우고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자리를 옮겨 다리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위치가 잘못되었는지 광주에서 제일 높다는  금호빌딩은 약간씩 기운 채로 렌즈에 잡혔다. 5분 가량 이리저리 각도를 조절해가며 사진을 찍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저녁 기운이 가기 전에 집으로 가려던 계획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을 담아서 아쉽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사진을 다운받고 나니 딱히 마음에 드는 사진이 없다. 차라리 건물을 역광으로 잡았으면 어땠을까 싶긴 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비록 사진은 아쉽지만, 내 기억은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되새김할 것이다. 유혹에 부응하지 못한 고민의 증거로도 오래 남을 듯 싶다. (20100622) 

'하루온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빠진 그릇, 퇴출하다  (1) 2010.06.27
전화없이 전화걸어 전화찾기  (2) 2010.06.17
떠남은 준비다  (0) 2010.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