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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온날

이 빠진 그릇, 퇴출하다


집에서 사용하는 그릇 가운데 네다섯 개는 깨졌다.  살림할 때 어딘가에 부딪혀서 생긴 자국이다. 그처럼 이가 나간
그릇을 버리지 않고 사용했다. 음식을 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아이들이 없으니 깨진 부분에 다칠 일도 없었다. 새그릇을 사용한데도 언제 또 이가 빠질 지도 알 수 없었다. 

지난 주 둘째 누이가 새 그릇 한 묶음을 주었다. 밥그릇과 국그릇, 접시2종이 각각 다섯 개 씩이다. 누이의 큰 딸이 다니는 회사에서 줬다는데 당장 쓸모가 없다며 내게 주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보탰다.
"집에 있는 깨진 그릇들은 모두 버려라."    
몇 달 전에 큰 누이가 광주집에 왔었는데, 그때 깨진 그릇을 보고 얘기를 전한 모양이었다.  

몇 년전 중국의 음식점에서 식사할 때 테이블엔 이가 빠진 그릇들이 많았다. 중국에서는 그처럼 깨진 그릇을 버리지 않고 사용한다고 했다. 그러니 손님을 맞이하는 음식점이라도 꺠진 그릇은 흠이 되지 않았다. 

중국에서 본 경험도 있고, 음식을 담기에도 충분해서 이가 빠진 그릇을 사용하는데  이게 누이들에겐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둘째 누이는 새 그릇들은 좀처럼 깨지지 않으니 걱정말고 사용하라 했다.
 
새 그릇 묶음을 받아들고 집에 가져왔다. 이 빠진 그릇은 한데 모아두고  새 그릇을 꺼냈다. 그런데 막상 사용하려니 쉽지 않다. 무엇보다 이가 빠진 그릇들에 쌓인 정이 쉽게 떼이질 않았다. 그래서인지 쓸모도 이 빠진 그릇들이 더 편리해보인다. 

한편으로는 새 그릇을 사용하는게 꼭 필요한 소비인가 싶은 의문에 답이 쉽게
내려지지 않았다. 
'필요가 절실하지 않으면 구입하지 말라! '
새 그릇으로 바꾸는 일은 이 명제에 부합한 일이 아니었다. 그게 마음에 걸렸다. 

절충과 타협은 부실했다. 이 빠진 그릇은 버리지 않고 모아 두기, 새 그릇 가운데 질실하지 않은 접시는 사용하지 않기, 정도였다. 이번 그릇 바꾸기는 아마도 설거지에 좀더 게을러지는 일 말고 무엇을 얻었을까 싶긴 하다. (201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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