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구자전거의 짝사랑

1번 국도 자전거여행③ - "자전거여행은 사람여행"


 


“앞에는 목적지를 찾아 길을 이끌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옆에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모습을 매번 보여준 사람들이 있었다. 뒤에는 안전을 위해 차를 거북이처럼 몰며 길을 지켜준 사람들이 있었다. 4일간 그런 사람들과 더불어 지냈기 때문에 이번 자전거여행은 내겐 ‘사람여행’이라 할 수 있다.”


1.

자전거여행을 마무리하던 6월 10일 저녁에 밝힌 소감이다. 평가회 시간에 ‘자전거 여행은 ○○다’는 방식으로 정리했는데 그때 쓴 글이다. 의미와 재미가 함께한 여행에서 사람까지 만났다는 건 더욱 뜻 깊다. 어쩌면 뜻 깊은 인연들을 만났기에 의미와 재미가 더해졌을 지도 모른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곳은 경기광역 정신보건센터다. 정신보건센터는 병원에서 퇴원한 정신장애인들이 사회로 돌아가는데 필요한 활동을 펼치는 곳이다. 여행단은 주로 경기도와 경기도내 각 시의 정신보건센터 관계자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이들은 센터 직원과 센터의 회원인 정신장애인들로 구성되었다. 여기에 몇몇 자원봉사자들과 지역 단체 활동가들이 합류했다. 이런 연유로 여행 첫날 40여명의 여행단 가운데 내가 아는 이는 서울에서 참여한 우리 직원 두 명이 전부였다.


2.

여행 첫날 참가자들을 대하며 선뜻 이해되지 않은 일들이 발생했다. 참가자들 대부분은 소속이 어디든 서로를 무척 잘 아는 사이 같았다. 평가회 시간이 되면 서로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었고, 여행 중에도 각자의 역할을 나누는 소통이 원활했다. 자전거동호회 회원들마저 센터 직원들과 편하게 어울리는 듯했다. 이렇다보니 아직 여행단의 이름과 얼굴이 연결되지 않는 상황인데 소속까지도 한동안 헷갈렸다.

 

더욱 이해되지 않았던 점은 정신보건센터 직원들의 자전거 타는 능력이었다. 이들은 자전거동호회 회원인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잘

탔다. 이들은 인솔자로 나서 거침없이 제 임무를 수행했다. 정신장애인을 돌보는 센터 회원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자전거타기에 능숙해야 할 이유는 없다
. 그런데도 마치 ‘자전거를 잘 타야 정신보건센터 직원이 될 수 있다’는 것처럼 오해할 만했다.


이런 몇 가지 의문은 여행단과 함께하는 날들이 늘수록 조금씩 해소되었다. 여행단이 서로들 친해보였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들은 이번 여행을 떠나기 두어 달 전부터 나름 준비모임을 해왔다. 4월 말엔 광교산 등산을 다녀왔고, 5월 초와 중순엔 도로대열 정비 훈련을 실시했다. 또한 5월 말엔 제부도로 자전거여행을 떠나는 실전연습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서로를 알게 됐고 각자 역할을 공유했다.

실전 훈련 못지않게 관련 회의도 지속했다. 역할분담이나 일정 등을 논의하는 회의도 수 차례 진행했고, 여행 코스를 미리 확인하는 사전답사도 2박3일 동안 실시하기도 했다. 

이런 훈련과 준비과정 속에서 이들의 친목도 형성됐다. 그런 사전 준비과정을 모른 채 여행 당일에 첫 참가한 나로서는 그런 관계를 이해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3.

자전거여행단에는 자전거 타는 사람만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모임이든 숨은 공신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번 자전거여행에서는 보호차량을 운영하고, 간식을 준비해주던 이들이 공신이었다. 정신보건센터 직원들이 다수였는데, 자원봉사자들과 다산인권연대 등 경기지역 인권단체 활동가들도 함께 했다.


이들은 여행단의 안전을 위해 앞뒤에서 안전차량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여행단이 휴식을 취해야 할 지점에 오면 어느덧 휴식처를 미리 잡아놓고 길가에서 여행단에게 격려 박수를 보내며 맞이해 주었다. 여행단이 자전거를 세워두고 휴식을 취하면 곧바로 물, 이온음료, 오이 등이 가득 든 아이스박스를 가져와 여행단 앞에 풀었다. 자전거를 타는 이들은 그 자체로 즐겁다지만, 이들에게는 오직 봉사만이 즐거움이야 했음에도 마지막 날까지 첫날처럼 여행단을 챙겨 주었다.


수원지역의 자전거동호회가 여행단과 함께 한 점도 특이했다. 첫날은 장안MTB 회원 5명이 여행단의 안전을 위해 함께 이동했다. 이들은 앞쪽에서 차량 등을 통제하기도 하고, 뒤쪽에서 뒤쳐진 일행을 챙기기도 하며 조치원까지 함께 했다. 정신보건센터 관계자에 의하면 “자전거동호회처럼 봉사활동을 하려는 모임들이 적지 않다”며 “지역의 다양한 모임을 이번 같은 정신장애인 관련 활동에 참여하게 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했다.


4.

여행단에 참가한 또다른 수원지역 자전거동호회인 <바람난자전거>는 더욱 인상 깊었다. 평일임에도 5일간이나 여행을

함께한 그 자체도 놀라웠지만, 여행단 내내 제 역할을 착실히 해 내는 모습 또한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바람난자전거>의 이경석씨는 샛길로부터 진입해 들어오는 차량들을 통제했다. 선두와 달리다가 샛길이 나타나면 자전거를 새워 차량을 막고는 일행이 모두 지나면 다시 속도를내면 맨 앞으로 달렸다. 이처럼 앞뒤를 오가는 일이 하루에도 10여 번은 지속되었다.


<바람난자전거>의 김덕훈씨는 여행단의 맨 앞에서 길을 잡고 여행단의 속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맡았다. 앞쪽에서 속도를 내려는 이들의 질주 본능과 뒤처진 일행들이 겪는 고통극복을 서로 조절하며 예정된 일정에 늦지 않게 목적지로 이끌어야 하는 게 그의 역할이었다.   


그런 그에게 반한 때는 마지막 날 해남에서 가진 뒤풀이 자리였다. 이날 뒤풀이에 끝까지 남은 일행들은 숙소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때 김씨는 80년대 대학가에서 유행하던 민중가요를 읊조리듯 불렀다. 비록 가사는 제대로 알 수 없었지만, 그 노래를 아는 이와 4일을 함께 했다는 사실만으로 내게 또다른 감동이 엮어졌다.


5.

여행기간 동안 또다른 인상을 남긴 이는 여행을 준비한 광역보건센터 김수영 팀장이었다. 김 팀장과는 여행을 준비하면서 서너 차례 통화를 했지만, 첫날 자전거를 한

시간 남짓 타고 가면서야 인사를 나눴다.

 

김 팀장은 자전거여행 내내 바빴다. 휴식시간마다 전체 일정을 챙겼다. 도착지마다 만날 약속을 한 후원단체들과의 일정 확인은 기본이었다. 여행이 끝난 저녁엔 평가회를 진행했고, 다음날 인솔 예정인 경찰서에 확인 전화를 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여행단의 어떤 이는 여행 전에 각 지역의 정신보건센터와 연계하고, 후원을 받는 일도 김 팀장의 역할이었다고 얘기했다.


김 팀장은 자전거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바빴다. 자전거여행 때는 인솔자로서 활동했다. 여행단의 앞뒤를 오가며 전체 일행을 격려하기도 했고, 가끔은 뒤쳐진 이와 함께 페달을 밟았다. 그만큼 그는 자전거타기도 능숙했는데, 나중에야 그가 <바람난자전거> 회원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전거를 타지 않을 때는 1종 면허가 필요한 차량을 몰기도 했다. 그런 그의 일인다역은 여행기간 내내 여행단에게 다양한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다. 둘째 날인가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는 “천상 이 행사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는 말을 건네기도 했을 정도였다.


6. 

자전거여행단은 6월 30일에 수원에서 평가회를 갖는다. 마음 같아서는 평가회에 참석해 평가결과도 듣고 싶고, 5일간을 함께 보낸 이들과 맥주라도 한 잔 나누고 싶다. 그러나 지리적 거리도 만만치 않고 밀린 업무도 있어서 평가회엔 함께 할 수 없다.


아마도 이번 여행에 참여한 40여명을 다시 만나긴 쉽지 않을 듯싶다. 인연이 닿으면 자전거로 만나고, 정신장애인 인권향상의 현장에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경험으로 확인한 열정을 기억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인연의 소중함을 아는 이가 장래의 약속에도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0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