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학대다. 주어는 청바지다. 세 벌이니 집단이다. 집단적 자기학대다. 사전모의 혐의도 있다. 학대방식이 비슷하다. 모두 낡아 구멍이 났다. 학대부위도 비슷하다. 모두 샅 부위다. 어쩌면 스트라이크일 수도 있다. 대상은 주인인 나다. 공통점은 또 있다. 모두 구입한지 4~5년 되었다. 할만큼 했다는 반항일 수도 있다.
첫번째 청바지. 지오다노다. 신촌에서 구입했다. 7만원 정도 준 것 같다. 가장 낡았다. 엉덩이 부분이 헤졌다. 뒷주머니 밑부분 도 곧 찢어질 태세다. 샅 부위에는 구멍도 났다. 아예 엄지손가락이 드나들 만하다. 햇빛에 비추면 빛살이 드나든다.
두번째 청바지. 상표미상이다. 홍대앞에서 구입했다. 5~6만원 준 것 같다. 역시 엉덩이 부위가 하예졌다. 성성한 머리털 같다. 샅 부위에도 곧 구멍이 날 태세다. 이대로 두면 당혹스러운 날 이 올 듯 싶다.
세번째 청바지. 캘빈클라인이다. 할인해 10만원쯤 되었던 것 같다. 셋 중 가장 늦게 구입했다. 앞만 보면 멀쩡하다. 엉덩이쪽도 앞과 다르지 않다. 문제는 샅 부위다. 어느날 그곳에 구멍이 났다. 다른 곳은 말짱한데 딱 거기만 그런다. 묘하다.
세 벌 모두 버릴 수 없다. 우선 아깝다. 구멍 한두 개로 '아웃'시킬 수 없다. 정도 쌓였다. 그동안 모두 맘에 들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없다. 새 청바지에서 지금의 만족도를 얻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 새로 장만하는 과정도 귀찮다. 매장을 돌아다니고, 옷을 입어 볼 일이 번거롭다.
버릴 수 없으면 살려야 한다. 방법은 하나다. 떨어진 부위를 꼬매 입기다. 두어 달 망설이다 옷수선 가게에 갔다. 세 벌 수선에 25,000원이다. 곧바로 맡겼다. 가격은 따지지 않았다. 오직 아깝고 정든 마음만 생각했다.
이틀 후, 청바지 세 벌이 거듭났다. 모두 샅 부위를 집중 수술했다. 바지 안쪽 에 천을 댔다. 재봉틀로 박음질했다. 밖으로 드러난 상처는 튀지 않는다. 그것까지가 청바지의 특성이다. 미진한 곳을 좀더 수선했다. 25,000원을 지불했다. 수선가게 주인이 1,000원을 되돌려준다. 두어 차례 수선 날짜를 어겨 미안하단다.
수선한 청바지. 생명이 연장됐다. 기간은 알 수 없다. 첫번 째 것은 워낙 기력이 쇠했다. 본전도 못 찾을 수 있다. 두번 째와 세번 째 것은 다르다. 이제 입을 만하다. 1년은 더 동고동락하겠다.
여전히 수선비의 가치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청바지 세 벌을 산 것 같다. 기분이 좋다. (201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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