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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온날

귀한 사람 김미화, 10년 전 이야기


요즘 부쩍 '귀한 사람'을 생각한다. 한 분야에서 나름 경지를 이루면서, 생각까지 건강한 사람. 때론 자신의 이해를 따지지 않고 양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 그런 이들과 동시대를 보내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뿌듯해진다.  
최근엔 방송인 김제동씨와 김미화씨가 '귀한 사람'에 든다. 
얼마전 종영한 <환상의 짝궁>에서 아이들 눈높이를 위해 무릎꿇고 얘기하는 남자, 그가 김제동이다. 그 정도면 '귀한 사람'을 얘기하는 어떤 말이든, 그 시작으로 충분하다.
김미화. 그 역시 다르지 않다. 10년 전 그를 인터뷰한 기사가 있어 옮겨 적는다. 그후 10년의 역사를 담진 못했지만, 1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은 품성들은 담겨 있는 듯하다. 이 인터뷰는 2000년 9월 진행했으며,  당시 한 월간지에 게재됐다. 

 

“봉사활동은 연예인으로서 누리는 영광을 돌려주는 것”



“여자 선배급 중에서 활동을 많이 하는 개그우먼은 미화씨 밖에 없잖아.”

“한번 봐주라. 그날은 일정이 다 잡혀 있다니까.”

KBS 2TV ‘개그콘서트’ 50회 녹화를 앞두고 대기실에 앉아 있는 개그우먼 김미화씨(36). 출연 섭외를 하러 온 방송사 관계자와 대화가 오고 갔다. 한 십여 분 얘기를 나눴지만 뚜렷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마음은 들어주고 싶었지만, ‘체험 삶의 현장’ ‘뷰티플 라이프’ 등 고정 방송과 인터넷 방송사 출연 등의 바쁜 일정에 쫓기다 보니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김미화 씨와의 인터뷰 역시 그런 바쁜 일정중에 이어졌다. 월요일 오후 2시 30분. 녹화 4시간여를 앞두고 KBS 공개홀 무대에서는 대본을 든 개그맨들이 연습에 한창이다. 방청석에는 벌써부터 관람객들이 20여 명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새삼 개그콘서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지난해 김씨가 직접 기획자로 나선 ‘개그콘서트’는 코미디 르네상스 시대를 열며 일 년여가 지닌 지금도 여전히 장안의 화제다. 이미 심현섭과 김영철을 신인 개그맨에서 인기 개그맨으로 만들었다.

방청석 앞머리에 김미화 씨와 나란히 앉았다. 아직 분장을 하지 않은 얼굴에, 편안한 반팔 차림이었다.

관광회사를 다니다, 1983년 KBS 개그맨 시험에서 은상을 받고 개그계에 발을 디딘 지 올해로 만 17년. 1986년 ‘음매 기살어’를 유행시켰던 ‘쓰리랑 부부’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그. 그러나 그는 여느 연예인들과 다른 데가 있다. 대부분 시청자들이 김미화 씨가 풀어낼 웃음 보따리를 기대하고 있을 때, 그는 조금은 다른, 그러나 그로서는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일에 몰두해왔다. 바로 사회봉사활동이다.


“제가 연예인으로서 과분한 영광을 누리고 있잖아요. 그 영광을 남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아요?”

그가 사회봉사활동을 시작한 때는 십여 년 전. 당시 KBS ‘100세 퀴즈’ 프로그램에 사랑의 삼각끈이란 코너가 있었다. 불우한 노인들과 가난한 어린이들을 연결시켜주는 후견인으로 출연한 것. 애초에 연예인이 되면 봉사활동을 해볼 생각이었는데, 그렇다고 혼자 양로원을 찾기도 쑥스러워 잘 됐다 싶은 기회였다. 당시 코너는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후원이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뒤에 보니 백 명의 후견인 중 혼자만이 지속적으로 후원했다. 이 일을 계기로 아나운서 이계진 씨, 산악인 허영호 씨 등과 함께 ‘사랑의 삼각끈 운동본부’를 만들어 본부장을 맡고 있다. 지금도 한 달에 한두 번씩은 지속적으로 후원 행사를 펼치고 있다.

그는 유니세프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카드 후견인으로 본래 일 년만 하는 건데, 여전히 매여 있다. 그럼에도 그는 즐겁다. 봉사활동을 기꺼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저야 제 몸만 가지고 찾아가 한두 마디 해주지만,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은 제 말에 큰 힘을 얻는다고 해요. 그러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누군가에게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무척 감사해 하죠.”

이른바 인기 있는 연예인이기 때문에 일반인들보다 더 큰 힘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사실 연예인들이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찾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이벤트성이 강하다. 따라서 그것은 마음속 진심보다는 인기를 유지하려는 민심에 의존하게 된다. 김씨의 봉사활동이 남다른 점은 거기에 있다. 민심보다는 진심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 그래서 그는 봉사활동을 하며 여러 감정을 느낀다.


어느 할머니를 도와드린 적이 있는데 그 할머니가 김씨를 위해 기도를 드린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당신 용돈도 궁할 텐데 어느 날 반지를 만들어 보내왔을 때, 김씨는 오히려 자신은 베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베푼 만큼 그렇게 무엇인가 돌아온다는 그 사실에서 더 큰 힘을 얻기도 하고 때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바쁜 방송활동 때문에, 그를 보고 싶어하는 고아원의 아이들에게 달려가지 못하는 게 미안하기도 하단다.
그럼에도 1천 명의 제소자들과 함께 뮤지컬 심리극 ‘춤추는 별들’에 참여하거나, 한부모 가족을 위한 행사에도 참여해 돈벌이는 안 되지만, 마음을 풍족하게 가꾸고 있다.


인터뷰는 간간이 끊어졌다. 대본을 손에 든 그는 시선을 간혹 무대로 돌리다가는 자신의 차례가 오면 무대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곧 연기에 몰두했다.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던 모습은 간데 없고 후배 연기자의 팔뚝에 안긴 신혼 부부 역할을 하기도 하고, 바뀐 각본을 바로잡아주기도 했다. 잠깐의 연기가 끝나면 이내 방청석으로 돌아와 인터뷰를 했다.


김씨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연예인의 꿈을 키워왔다. 빈민촌이나 다름없었던 서울의 수유리, 미아리 근처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었고, 어머니는 노점상을 해야 했다. 또래의 아이들은 아버지가 안 계시다는 이유로 자꾸 놀려댔다.

“본래 내성적이었는데, 성격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때부터 아이들 앞에 더 나서고 더 웃기려 노력했죠. 까불이란 별명까지 듣게 됐으니까요. 아이들이 무시 못하게 하려고 했던 건데, 저에겐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되었어요.”


그런 우스운, 그러나 씁쓸한 기억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는 지금도 가끔씩 새벽에 남대문 시장을 찾는다. 이른 새벽부터 북적거리며 열심히 사는 그네들의 모습에서 ‘사람 사는 냄새’를 느낀단다.

그는 그간 펼쳐온 봉사활동을 좀더 체계적으로 해보고 싶어, 내년에는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할 계획이다. 그의 생활에서 개그가 밖으로 드러난 한 축이라면, 사회봉사는 안으로 가려진 또 다른 축임을 짐작케 한다.

장래에 대한 꿈 역시 그 두 축에 맞추고 있다. 봉사활동을 통해 덕을 쌓게 되면 재단을 만들어 좀더 많은 이들에게 나누며 살 생각이다. 한편으로는 후배들을 양성하면서 코미디 방송사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버리지 않고 있다. “못해도 착실하게 해나가고 있다”는 게 스스로 진단한 그의 현실이다.


요즘엔 봉사활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민사회에 걸맞은 시민의 역할에도 충실하려 한다. 지난 4.13총선 때 이른바 낙선운동에 앞장섰고, 여성단체에서 모금하는 여성 기금 마련에 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를 후원하고 있다. 지난 8월 22일 새로운 기부문화를 가꾸기 위해 발족한 ‘아름다운 재단’에도 힘을 보탠다.

“기부금을 내면 그것이 어디에 쓰여지는지 투명하게 알려지는, 또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그런 문화들이 활성화돼야죠.”


간단치 않은 이런 ‘즐거운 외도’를 밀고 오는 힘을 그는 스스로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방송가에서 개그우먼이라면 장래를 걱정해야 할 나이임에도 그리 걱정하는 기색이 없다. 이미 개그콘서트에서 검증받은 기획력을 토대로 그에 걸맞은 프로그램을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는 나름대로의 계산 때문이다.


스스로 게을러진다 싶으면 자신을 추스를 줄 알고 때론 ‘깡다구’로 일하는, 성실한 모습 덕분에 그가 펼치는 오늘의 개그는 내일은 유행으로 피어난다.

김미화 씨를 두고 어느 피디는 “닥쳐올 미래의 ‘개그버그’ 문제를 벌써 내다보는 현명한 연기자”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는 단지 현명한 연기자만은 아닌 듯싶다. 건강한 웃음은 건강한 사람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그 평범한 진리를 착실하게 가꿔가는 아름다운 연기자이기도 하다. (200009)


<사진설명>
김미화씨가 2008년 열린 한 기념행사장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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