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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riting Story

시사와 생활의 1분 데이트


<My Writing Story> - 글, 사람과 놀다



“저 OOO인데요. 소우를 어떻게 찾아가야 해요?”

어느 연말, 라디오 프로그램의 한 구성작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게 위치를 확인한 구성작가는 친구와 함께 물어물어 소우를 찾았다.


예닐곱 명 정도만 들어도 꽉 차는 술집. 그 소우에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 두 남자가 소우의 문을 열고는 안을 들여다보더니 다시 닫고 나가더란다. 잠시 뒤 두 남자는 다시 문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리듯 한 마디 내뱉었다.

“여기가 거기 아니야? 여기 맞는 것 같은데. ‘생방송 오늘’에서 나왔던 데 말이야.”


KBS 라디오 <윤흥길의 생방송 오늘>이란 시사 프로그램에 ‘오늘의 단상’이란 꼭지가 있었다. 약 1분 정도 될까 싶은 꼭지인데 말 그대로 단상에 어울릴 법한 짧은 원고를 성우가 낭독하는 꼭지다. 시사 프로그램이 가진 딱딱하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청취자들이 잠시나마 조금 여유를 갖게 하자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꼭지였다. 
 

처음 지인으로부터 ‘오늘의 단상’ 구성작가를 소개받고는 일단 두 편의 글을 써 보냈다. 그 글이 면접이 돼,  그해 10월 말부터  글을 쓰게 됐다. 카페 소우를 다룬 글 역시 그해 연말에 쓴 원고였다.

서울의 중심가라 할 만한 광화문 사거리 한 켠에

소우(小雨)라는 작은 술집이 있습니다.


그 곳은

따로 술을 마실 탁자가 없을 정도로 공간이 몹시 좁습니다.

다만 기역자 모양의 바가 있는데,

그 곳에 예닐곱 명이 둘러앉으면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죠.

때로는 주인이 있는 주방 쪽에도 의자를 놓아 손님이 앉곤 하지만,

퇴근 후 벗들과 둘 셋씩 짝을 지어 들리는 이들은

종종 아쉬움을 안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좁은 만큼 불편할 것 같은 곳이지만,

그곳엔 늘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고 합니다.


벽을 등받이 삼아 둘러앉아 낯선 이들과도 어깨를 맞댄 채 허물없이 술을 나누곤 합니다.

어떤 이는 통기타를 칩니다. 그러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뒤따라 노래를 부릅니다.

일과에 지친 이들이 서로들 그렇게 가슴을 쓸어주곤 합니다.

화려한 불빛이 없어도, 음량이 좋은 스피커가 없어도 

즐겁게 술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사람을 나눌 수 있는 곳입니다.   


벌써부터 주변에서는 송년회를 한다는 소리가 들리곤 합니다.

대개의 송년회는 큰 음식점이나, 넓은 호프집에서 갖게 마련입니다. 

자리를 옮겨 연이은 술자리를 갖다가, 노래방 정도에서 끝내곤 하죠. 


모이는 장소가 그렇다보니,

한 해를 차분히 정리하기보다는 왁자지껄하게 얘기를 나누고 술을 마시는 일로 송년회가 진행되곤 합니다.


올해엔 

함께 얘기를 나눌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면,

광화문의 그 작은 술집 같은 곳에서 송년회를 치르는 것도 어떨까 싶습니다.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술에 취하지 않아도 벗이 부르는 노래 소리에 취할 수 있는,

그런 곳에서 작은, 그러나 따뜻한 송년회를 만들어 보았으면 합니다.(1130) 


 

일주일에 한 번 쓰지만 소재를 찾는 것은 쉬운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일주일 내내 고민할 수도 없었다. 대개는 기사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얻은 내용을 소재로 삼았다. 신문 기사는 소재를 찾지 못했을 때 마지막 대안으로 뒤적거렸다.


글을 쓰다보니 소재 자체보다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 내는가가 결국 글을 완결시키는데 중요했다. 특히 마지막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항상 고민스러웠다. 그런 면에서 보면 초반의 대부분의 글들은 청취자를 계도하려 했다. ‘이렇게 한 번 해 보세요’하며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글이었다. 그러지 말자고 생각은 했는데도 쉽게 벗어나질 못했다.

처음 글을 쓰던 당시에 대학 선생님을 찾아가 말씀 드렸더니 우리 고전이야기들에서 인용해 보라 하셨다. 그 얘기를 들을 당시에는 그래 뭔가 내 색깔을 갖자하는 생각이 있어 무척 즐거웠는데, 막상 고민을 해보니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용직에 근무하는 어떤 노동자가 있었습니다.

그이는 명함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직장이 안정적이지 못할뿐더러

하는 일도 건설 현장의 막일이라서

그이에겐 명함을 만들어도 새겨 넣을 회사이름이나 직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그이가 명함을 가질 기회가 생겼습니다.

일용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만든 건설회사에서 직책을 맡게 된 것입니다.


건설회사명과 함께 직책을 새긴 평함을 만든 그이는

그 기쁨에 가족들을 모아 파티를 열었답니다.

다음 날엔 고향으로 내려가 고향 사람들에게 일일이 명함을 돌렸답니다.

물론 축 쳐진 어깨가 아니라, 밝은 웃음을 담은 표정으로 였었죠.  

 

직장인들이라면 으레 갖게 되는 명함이지만,

명함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습니다.


“나 명함 하나 만들어줘요.

그럴 듯한 명함 하나 만들어 아이들한테 보여주는 게 내 평생 소원이요."

어느 주민이 최근 선거운동에 나선 한 국회의원 후보에게 한 얘기입니다.


그 작은 명함 한 장을 갖지 못해 평생소원이라고 말하는 이들,

이들은 우리의 이웃입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생활을 하는 이웃들입니다

그 이웃들과 함께 산다면, 
무작정 명함을 건네는 우리네 문화도

명함 없는 이들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 사회도

명함 없는 이들을 위한 여러 정책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 0330.) 


어떤 내용을 쓸것인가를 고민하던 끝에 결국 생활이야기로 돌아왔다. <세상풀이>처럼 편하게 나를 드러내는, 내 주변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그것이 프로그램과 맞지 않다면 그만두더라도 그것이 나을 듯 싶었다.

그래서 <말> 업무국 직원이, 지금은 북송된 장기수 할아버지인 리경구 선생에게 아침마다 컴퓨터를 가르치던 모습을 쓰기도 했다. 책상에 가져다 놓은 화분 이야기, <작은이야기>  편집실에서 본 감나무 이야기 등은 두세 번 쓰기도 했다. 물론 그때마다 각도를 달리 했지만, 단골 소재였다.   
 

며칠 전에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그 편지에는 도서상품권이 두 장 들어 있었습니다.

우선 고마웠습니다.

그러나 도서상품권을 꺼내 들고는 조금 허전했습니다. 


요즘엔 책을 선물할 일이 있으면 대개 도서상품권을 주곤 합니다.

5천원권이나 1만원권 한 두 장을 봉투에 넣어서 건네곤 합니다.

도서상품권은 편리합니다.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우편으로 쉽게 보낼 수 있습니다. 어떤 책을 구입할 지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혹여 선물했던 책을 상대방이 가졌다면, 그것 역시 난처한 일입니다.

도서상품권은 그런 염려를 덜어주기도 합니다.


책을 선물하는 일은 주는 이의 마음을 선물하는 일입니다.

한 번이라도 책을 선물해 본 이라면,

서점에서 서성거렸던 시간을 기억 할 것입니다.

어떤 책이 내 마음을 잘 담을 지, 어떤 내용이 주는 이에게 어울릴 지.

이런 저런 고민에 들었다놓았던 책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마침내 계산대로 들고 나간 책에는 그런 마음까지 담겨 있는 셈입니다. 


책을 선물하는 일은 또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지식이든, 지혜든, 도란거리는 세상 얘기든,

그 어떤 내용을 담은 책이라도 새로운 세상을 담고 있게 마련입니다.

새로운 세상을 건네줄 수 있는 것은, 책을 선물할 때만 가질 수 있는 매력입니다. 


이 가을, 책읽기 좋은 계절에 책을 선물해 보십시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는 이의 마음을 보태고,

새로운 세상의 한 구석을 담아 그것까지 선물하십시오.

때로는 번거로운 게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도 합니다.(1019.) 

‘오늘의 단상’에 차츰 적응할 무렵 <작은이야기>로 옮겼다. 몇 달을 쓰다보니 방송글을 쓰는 일이 어렵지 않게 해결할 길이 있었다. 바로 <작은이야기>에 실린 글을 조금만 정리하면 될 듯했다. 독자글이든 필자글이든 그것을 요약하면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그 생각은 곧바로 접었다.

왠지 내 시각은 빠지고 남의 해석을 그대로 받아 아름답게 꾸미는 게 못마땅했다. 표절 같기도 하고, 내가 취재도 하지 않았는데 남이 취재한 것을 도둑질 하는 듯한, 일종의 글 결벽증인데 그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다시 꾸역꾸역 내 이야기로 밀고 나갔다.

“오늘의 단상, 오늘은 OOO이란 글로 월간 <작은이야기> 노정환 기자가 보내온 글입니다.”

‘오늘의 단상’은 대략 이처럼 필자를 소개하고 글을 낭송한다. 오후 6시 40분 정도에 방송이 되곤 했다. 그런데 그 시간이 퇴근시간이라 공교롭게도 정작 나는 많이 듣지 못했다.


그럼에도 주변 지인들은 그 방송을 들었던 이들이 적지 않았다. <말> 광고부에 있던 한 직원은 자가용으로 출퇴근 하기 때문에 자주 라디오 프로를 듣는 모양이었다. 그는 사무실에서 만나면 “글 잘 들었어요”하곤 했다. 업무국에 있던 이들도 프로를 듣고는 얘기를 하곤 했다.


어느 날엔 아버지께서 “너, 라디오에 나오더라” 하셨다. 처음엔 노정환이란 사람이 나오길래 그런가보다 했는데, 한 주에 한 번 꼴로 나오니 궁금하셨던 모양이었다. 그동안 내 글을 두고 아버지에게 얘기해 본 적이 없으니, 라디오 기고들도 굳이 얘기하지 않았었다.그러던 차에 아버지가 먼저 듣고 말씀을 꺼내신 것이다. 원고지 3매 분량 정도 되는 글이었지만, 아버지께서 평생에  관심을 갖게 된 몇 안 되는 내 글 가운데 하나였다. 
  

'오늘의 단상'은 1년 정도 원고를 쓰다가 개편 과정에서 정리됐다. 그 1년은 일상의 느낌을 원고지 3매라는 짧은 글로 정리하는 훈련의 시간이었다. 그 안에 사람의 이야기를 담는, 일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수행의 시간이기도 했다. (2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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