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Writing Story> - 글, 일터에서 놀다①
3초. 그동안. 그는 말이 없었다. 시선은 땅에 떨어졌다. 크지 않은 체구에선 미동도 사라졌다. 옆산엔 신록이 차올랐다. 하늘은 맑았다. 햇살은 봄볕이었다. 바람은 잠잠했다. 그 모든 자연도, 자연에 둘러싸인 그도 한순간 정지였다.
그 3초를 만든 이도, 그 3초를 무너뜨린 이도 그였다. 그는 땅에 떨군 시선을 거둬 옆산의 신록을 쓸었다. 잠시였다. 이내 시선은 마당가에 핀 계절꽃에도 잠시 머물렀다. 그가 가꾸었을지도 모를 꽃이었다. 그리고는 가만히 입을 열었다.
“엄마도 불쌍하죠!”
“……”
“저도 불쌍하고요….”
그가 3초의 침묵을 깨며 자조하듯 흘린 말은 그 두 마디였다. 그 두 마디를 넘어오던 목소리는 울컥거렸다. 아무런 기운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 3초를 만난 건 4월 말, 전북에 있는 어느 정신요양원이었다. 그 며칠 전 그는 인권위에 편지 한 통을 보냈다. 연필로 십여 줄 가량 쓴 글은 문장이라 할 수 없었다. 맞춤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미치겠다’, ‘답답하다’는 단어만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다’는 마음을 짐작케 했을 뿐이다.
그 3초 직전. 그와 나눈 대화는 길지 않았다. 그는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저 좀) 내보내 달라고 하니까 엄마는 뭐라고 해요?”
답은 짧았다.
“안 된다고 하죠….”
그를 만나기 앞서 통화한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그냥 그곳에 두라”고 했다. 주변의 시끌벅적한 잡음에 섞여 들리는 목소리엔 고단함이 묻어났다. 정신요양시설에 입원한 이들이 퇴원하려면 의사와 보호자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는 퇴원의 필요조건 두 가지 중 적어도 한 가지를 충족하지 못했다.
정신보건시설 생활인들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정신의료기관이든, 정신질환자 사회복귀시설이든, 정신요양시설이든 모든 정신보건시설의 목적은 그곳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사회복귀를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한번 정신의료기관이나 정신용양시설에 들어온 후 퇴원(소)하려면 두 가지 문턱을 넘어야 한다. 첫 번째는 정신과 전문의의 소견이다. ‘이 사람은 어느 정도 치료가 되었으니 퇴원(소)해도 좋다’는 의견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설은 생활인을 많이 둘수록 정부보조금 등 수입도 늘어난다. 따라서 의사가 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알면서 생활인의 퇴원 소견서를 작성하려면 ‘돈의 유혹’을 극복해야 한다.
두 번째는 보호자의 동의서다. 시설에 입원(소)할 때와 마찬가지로 퇴원(소)할 때도 보호자 2인의 동의서가 필요하다. 그런데 시설 생활인이 집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그를 돌볼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차라리 시설에 있는 게 나은 환경이라면 보호자가 이 동의서에 서명하기가 쉽지 않다.
이 두 가지 전제에 대해 혹자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와 가족애를 들어, 그런 문턱이 사회복귀를 가로막기야 하겠느냐고 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시설에서의 인권침해는 이 두 가지 문턱을 넘어서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곧잘 증명해 주곤 한다.
그 3초 후. 그와 나눈 대화는 길지 않았다. 그는 원했던 일이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알고는 말 수를 줄였다. 그가 입은 옷은 요양원의 단체복이었다. ‘패션’ 이전에 ‘편리’마저도 고려하지 않는 단체복은 그의 처지와 흡사했다. 그는 ‘그 이상’이 아닌 ‘그것만’을 원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신체의 자유'는 기본적 권리이지만, 지금 그에겐 ‘그 이상’이다. 잠시 후 그는 숙소로 되돌아갔다.
3층 건물인 숙소의 창문엔 쇠창살이 설치돼 있었다. 그와 같은 이들을 ‘보호’하겠다는 장치지만, 그 바깥 사람들의 안전을 더 고려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를 만나기 전 둘러본 요양원의 방들은 싸늘했다.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며칠간 비운 민박집처럼 썰렁했다. 펼쳐진 이불과 한쪽 벽면을 차지한 사물함만으로 싸늘함을 거둘 수는 없었다.
빈 라면봉지라도 굴러다닌다면 그나마 온기를 느낄 법했다. 방마다 한두 명씩 넋 놓고 앉아있는 이들은 사람이 아닌 풍경일 뿐이었다. 숙소로 되돌아간 그도 이제 그런 풍경이 되거나 싸늘함의 또다른 이유가 될 것이다.
옆산엔 여전히 신록이 차올랐다. 하늘은 여전히 맑았다. 햇살은 여전히 봄볕이었다. 바람은 여전히 잠잠했다. 세상 모든 것이 정지상태였다고 해도 인정할 수 있는 그 짧은 순간에 적어도 한 사람은 희망을 잃었다. 자유로운 세상의 뜰에서, 애정담긴 사람의 품에서 그만큼 더 멀어졌다.
2009년 4월 전북에 있는 한 정신요양원을 방문하고 쓴 글이다. 오랜만에 이런 시설을 방문해 감수성이 되살아났는지, 그 날 만나고 온 한 정신장애인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글을 쓰고 난 후, 다른 용도로 쓰기 위해 글을 줄여야 했다. 12매가 넘는 글을 5매가 안되는 분량으로 줄이자니, 쉽지는 않았지만 세상에 못 줄이는 글은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3초. 그동안 그는 말이 없었다. 시선은 땅에 떨어졌다.
옆산엔 신록이 차올랐다. 하늘은 맑았다. 햇살은 봄볕이었다. 바람은 잠잠했다.
그 3초를 무너뜨린 이는 그였다.
“엄마도 불쌍하죠!”
“……”
“저도 불쌍하고요….”
자조하듯 흘린 말은 그뿐이었다. 그 말을 만들던 목소리는 울컥거렸다.
그 3초를 만난 건 어느 정신요양원이었다.
며칠 전 그는 편지 한 통을 보냈다.
맞춤법이 맞지 않았지만 ‘미치겠다’, ‘답답하다’는 단어만은 눈에 띄었다.
그 3초전에 그는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저 좀) 내보내 달라니까 엄마는 뭐라고 해요?”
답은 짧았다.
“안 된다고 하죠….”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그냥 그곳에 두라”고 했다. 주변의 시끌벅적한 잡음이 섞인 목소리엔 고단함이 묻어났다.
그와 나눈 대화는 길지 않았다. 원을 이룰 수 없는 걸 알고 말 수를 줄였다. 잠시 후 그는 요양원으로 되돌아갔다.
옆산엔 여전히 신록이 차올랐다. 하늘은 여전히 맑았다. 햇살은 여전히 봄볕이었다. 바람은 여전히 잠잠했다. 세상 모든 것은 정지상태였지만 그 짧은 순간에 적어도 한 사람은 희망을 잃었다. 자유로운 세상의 뜰에서, 애정담긴 사람의 품에서 그만큼 더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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