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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자전거의 짝사랑

지구자전거2 - 섬진에 내린 우주



도로는 살짝 비에 젖었다. 물기는 머금었지만 물이 고인 곳은 드물다. 밤새 비는 이슬과 가랑을 오락가락했을 듯싶다. 하늘은 아직 비와 이별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흐릿하다. 저 멀리 산자락들엔 구름도 제법 걸려있다.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이 흐린 아침이 특별한 것은 높새와 더불어 만난 강 섬진이 있기 때문이다.


섬진. 음식을 음미하듯 천천히 읊어보면 맛이 절도 도는 말이다. 감싸 안듯 푸근한 맛도 들고, 여유도 묻어난다. 섬진의 유래는 고려 말엽으로 올라간다. 당시 왜구가 출몰했을 때 강기슭에 두꺼비 수만 마리가 나타나 울부짖어 왜구가 달아났다는 구전이다. 두꺼비 섬(蟾)자에 나루 진(津)을 쓰는 섬진의 단어도 그 구전으로부터 물려받았다.


하동읍에서 2번 국도와 861번 지방도로 길을 열어주는 섬진교를 건너서야 섬진을 오른쪽에 두었다. 흐릿한 날씨 탓인지 섬진의 물들도 고즈넉하다. 강 쪽에 무리지어 선 꽃 코스모스는 비로소 제 철을 맞았다. 코스모스는 길의 굴곡에 따라 풀색과 물색을 되풀이하며 배경 삼았다. 그 풍경에 저 혼자 빛을 품었다. 그 옆에 바짝 붙어 높새가 자전한다. 


2차선 도로는 높새를 위해 닦인 길이 되었다. 높새는 곁에 있지만 노을이에게 굳이 관심을 호소하지 않았다. 도로에 약간씩 고인 물과 이곳이 차도임을 각성시키듯 간혹 지나치는 자동차에만 시선을 요구할 뿐이다. 높새는 저대로 불편할 것이 없는 도로다.


문득 이 순간의 모든 풍경이 노을이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이 섞이지 않는 풍경과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는 몸의 존재는 새삼스럽다. 그것을 느끼고 나니 이 시간이 더욱 뿌듯해진다.


그걸 눈치 챘는지 그 무렵 섬진의 몸통이 바뀌었다. 어느새 물가에 든 초록의 풀들은 옅어졌다. 부채를 펼치듯 강폭이 잠시 넓어졌다. 강 상류의 방향은 그 흐름을 가늠할 수 없다. 산 지리를 끼고도는 강답게 이미 양쪽에서 흘러내린 산자락이 병풍처럼 윗물길을 가렸다. 어느 자락을 돌아 섬진이 흘러왔을 것은 분명했지만 짐작이 지형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앞으로 내디딜 발길만이 진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쯤에서 줄곧 힐끔대고 흘끔거렸던 산자락에 눈길이 자주 머물렀다. 멀리 산봉우리에서 구름 조각들이 시나브로 하늘로 올랐다. 이번 여행의 목적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그 곳을 높새가 달리고 있다. 산 주변을 돌며 산을 맛보기. 그것을 이 섬진의 기슭보다 잘 이룰 곳은 없을 듯싶다. 861번 도로는 섬진을 사이에 두고 적당한 원근을 갖췄다.


그럼에도 보이는 산자락이 지리의 어드메인지는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91년 지리에 첫 발을 디딘 지 십수 년에, 매년 한두 차례는 지리에 올랐던 경험과 그때마다 지도를 펼쳐들고 익혔던 주변의 지리도 무색하다. 쌍계사 등을 아우르는 남부능선 자락이라는 것만이 분명할 뿐이다. 


섬진교를 넘어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섬진은 더욱 다채로워진다. 간혹 강변엔 모래장이 군데군데 앉았다. 얼마쯤 달리고 나니 이번엔 강심 한 복판에 섬처럼 모래가 쌓여 초록풀밭을 일궜다. 섬진의 물이 들을 범하는 것을 막은 양 둑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제 멋 대로다. 그만큼이 자연이다. 섬진에 자연이 흐르니 아직까지도 사람들은 재첩을 얻어먹는다.


그 재첩을 화개장터가 열리는 화개면에서 맛보았다. 아침을 먹고 남도대교를 건너 다시 861번 도로로 접어들었다. 흔히 하동에서 구례로 갈 때 지리의 산자락으로 붙은 19번 국도를 이용한다. 아마 그랬다면 그동안 보았던 섬진의 강과 지리의 산 자태를 느끼기엔 어려웠을 것이다. 차선이 섬진을 막고, 오히려 가까운 산자락이 지리를 막기 때문이다. 


하늘은 끝내 품고 있던 비를 내려놓았다. 가랑비다. 잠시 섬진과 거리를 둔 861번 도로엔 나무 벚이 양 옆으로 늘어섰다. 벚이 꽃을 자랑할 온봄에는 섬진의 빛도 덩달아 화사해지기에 그 수가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지금 벚들은 성숙을 준비한다. 길가엔 적지 않은 낙옆이 쌓였다. 나무에도 초록

을 잃어버린 잎들이 제법 많다. 벚은 잎을 모두 털어내야 비로소 온봄이 오면 거듭날 수 있다.


그 무렵에 몸이 먼저 깨닫는다. 강 섬진과 산 지리와 꽃 코스모스와 비 가랑, 나무 벚까지 모두 동시간에 같은 우주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 우주의 이름은 가을이었다. 구월의 끄트머리에 가을우주에서 모두들 조우하고 있었다.


가을섬진, 섬진가을, 가을지리, 지리가을, 가을코스모스, 코스모스가을, 가을가랑, 가랑가을, 가을벚, 벚가을 …. 무엇의 앞뒤든 가을은 이름과도 제법 어울렸다. 어느새 그 우주에 높새도 들었다. 높새가을, 가을높새 오래전부터 861번 도로를 오갔을 법하게 익숙하다. 노을이 역시 가을우주에 들어왔기 때문에 흥겹고 신나는 호흡보다는 고요와 되뇌임 속에 감상에 머물렀다. 높새의 바퀴가 빗물을 머금고 길바닥에 달라붙듯 노을이도 차분한 상태로 한동안 안으로의 대화에 깊이를 더 두었다. 혼자서 홀로 마주하기 그 과정이 이미 우주에 드는 여정이다.   


높새가 구례에 다다라 길이 갈리면서 섬진의 물줄기는 잠시 잊었다. 두어 시간을 달렸던 섬진 변의 가을우주로 돌아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십여 분 후 다시 섬진을 만났다. 이번엔 섬진을 왼쪽에 두었다. 건너편에 구례구역과 이어진 17번 국도를 피했다. 가을지리와는 멀어졌지만 여전히 가을가랑과 가을섬진은 가까이 머물렀다.   

 

섬진은 전북 진안과 장수에서 첫 물줄기를 일궈낸다. 남해로 내려가며 남원을 거쳐 온 요천과 강 보성도 함께 품는다. 지리 자락의 남부능선을 이루는 골짜기들도 섬진에 물을 보탠다. 곡성 구례 하동 광양을 순례하며 오백 삼십리를 흐른다. 높새가 만난 섬진의 가을우주는 백 오십리 남짓이었다. 마을 앞길이라는 이름이 어울릴만한 길이 비포장으로 바뀌면서 부득이 강을 건너 17번 국도로 올라서야 했다.


네 시간 남짓 자전하며 머문 섬진의 가을우주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은 순식간이었다. 여전히 비는 내렸고, 오른쪽으로 섬진도 두었지만 17번 국도에 가을우주는 없었다. 높새 옆으로 수시로 자동차들이 질주했다. 자연이 길을 잃으면 우주도 길을 잃는가 보다. (2007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