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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랑 놀랑

줌마네 열번째 수업을 열다

6월 20일, 줌마네 10기 첫 강의를 마쳤다. 지난해 말 동네잡지를 마치고 난 후, 6개월 만에 다시 줌마네와 마주했다. 서너 주 전에 특강 형식으로 잠시 만나긴 했지만, 잠깐의 끼여들기였으니 오늘이 제대로 된 시작이었다.  
밖엔 비가 내렸고, 안엔 20여명의 아줌마들이 빈 공간에 저마다 편한 대로 앉았다. 이미 1학기 수업에서 서로 얼굴을 익힌 사이니 첫 시간에 어울리지 않게 수다꽃이 피었다. 그리고 30여분이 흐른 후 첫 수업을 시작했다.  
 
1.
첫 시간의 강의 목표는 명확하다.

'글은 내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고자 쓰는 것이다. 일기마저도 자신의 생각을 자신에게 전달하기 위해 쓰는 글이며, 그 밖의 모든 글은 타인과 소통을 위해 쓴다. 따라서 잘 쓴 글이란 내가 쓴 글을 읽고 타인이 내 뜻을 제대로 이해한 글이다. 그것이 바로 좋은 글이다.'

'글쓰기가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개 표현이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글쓰기는 표현만의 문제가 아니다. 거기엔 기획이 필요하고 취재가 덧붙으며 표현으로 나타나야 비로소 한 편의 글이 된다. 아울러 기획, 취재, 표현의 각 영역들마다 개인의 의식이 빠질 수 없다. 기획, 취재, 표현, 의식이 골고루 성장해야만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다.'

 '이제 글을 쓰겠다고 모였다면 독자의 입장에서 필자의 입장으로 돌아서야 한다. 동일한 사물을 두고도 서로 존재하는 처지에 따라 사물을 다르게 보듯, 글 또한 마찬가지다. 독자의 입장은 한 편의 글을 읽고 정보를 전달받거나 감동을 받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필자의 입장에서 한 편의 글을 보면 시각이 달라진다. 이 글은 어떤 의도로 기획되었으며 왜 이곳은 이런 방식으로 썼을까? 이 글을 쓰는데 어떻게 자료들이 모아졌을까. 이 글의 구조는, 문장은 이러저러한 특징이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이 글 주제에 부합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뽑아내고 그 답을 유추해 보는게 필자의 입장이다.' 

2. 
첫 강의 시간엔 간단한 놀이를 준비했다. 내가 미리 작성한 글과 신문 조각을 나눠주고는 글에 따라 신문을 접는 놀이였다. 내가 적은 글은 내용은 같지만, 설명의 정도가 다른 두 가지 글이었다. 두 글엔 모두 "아래 글을 읽으며 지시하는 대로 직접 해 보세요. 문장이 이해되지 않아도 질문하지 말고 떠오르는 대로 실행하시면 됩니다."라는 안내글이 붙었다.   

<글 따라하기1>

나는 신문접기에 빠져들었다.

먼저, 신문을 읽다가 반으로 접었다. 접힌 신문을 한번 더 반으로 접었다. 이제 신문은 처음보다 1/4로 줄었다. 접힌 신문을 대각선 모양으로 접었다. 그리고 대각선을 따라 약간 잘랐다. 이번엔 신문의 한쪽 끝을 오렸다. 마지막으로 다른쪽 끝을 오렸다.   


<글 따라하기2>

우리는 신문의 위와 아래를 구분할 때 흔히 글자를 읽을 수 있도록 펼쳐져 있으면 위쪽이라 하고, 글자가 거꾸로 보이면 아래라고 한다. 이건 통념이다.

어느 날, 나는 신문접기에 빠져들었다. 먼저, 신문을 읽다가 그대로 좌우가 맞닿도록 안으로 반을 접었다. 접힌 신문을 이번엔 상하가 맞닿도록 반으로 접었다. 이제 신문은 처음보다 1/4로 줄었지만, 여전히 신문의 위쪽은 위쪽이었다. 접힌 신문을 이번엔 위 오른쪽 모서리 부분에서 아래 왼쪽 모서리 부분까지 선을 내 대각선으로 접었다. 이때는 안으로 접었다. 이렇게 난 대각선을 따라 위쪽에서부터 1/3정도를 자르고 대각선을 접기이전의 사각형을 유지했다. 이번엔 처음 크기에서 1/4로  접힌 신문의 오른쪽 아랫 모서리를 손가락 한 마디쯤 되게 부채골 모양으로 오렸다. 마지막으로 왼쪽 윗 부분 모서리를 역시 손가락 한 마디쯤 되게 부채골 모양으로 오렸다. 


수강생들은 이 글에 따라 신문을 접거나 찢었다. 그리고 모두 지시대로 끝났을 때 자신이 접거나 찢은 신문을 펼치게 했다.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가혹했다. 최소한 7~8명은 동일한 지시문대로 신문을 접었는데 모양이 같은 게 하나도 없었다. 그 결과에 내 답은 이랬다.   
"글은 읽는 사람에게 글을 쓰는 사람의 의도를 잘 전달하는게 제일 중요하다. 그런데 두 개의 지시문을 통해 글쓴이가 그리고자 한 신문 모양이 있었을 텐데, 지시문을 읽은 사람들이 모두 다른 모양을 접었다면 그건 지시문을 쓴 사람이 글을 읽는 이들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따라서 좋은 글이 아니다."   
  
물론 이 결론엔 몇 가지 '변명'들이 붙을 수 있다. 읽는 이들의 다른 경험이 주는 해석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긴 하다. 다양한 해석이 많음에도 수업진행상 약간 간결하게 표현한 점도 들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런 것은 그저 '변명'이다. 

3. 
' 나의 이러저러한 열일곱가지 이야기'
줌마네 10기 첫 강의를 시작하기 일주일 전에 카페에 낸 과제다. 열 일곱가지의 질문을 내고 그 질문에 각자 답을 적어서 올리는 과제다. 이 과제는 지난해 진행한 9기 수업에서부터 내고 있다.  


1. 나는 이번 강좌를 이러저러한 과정을 통해 알게 되었다.

2. 나는 줌마네가 이러저러한 모임/단체라고 생각하고 있다.
 

3. 나는 평소에 이러저러한 것을 통해 세상사를 알게 된다.

4. 나는 평소에 이러저러한 것에 관심이 많다.

5. 나는 평소에 이러저러한 사람들과 만난다.

6. 나는 사람들과 만나면 주로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눈다.


7. 나는 그동안 글과 이러저러한 인연을 맺어왔다.

8. 나는 그동안 글을 잘 쓰려고 이러저러한 공부/학습/교육을 해 왔다. 

9. 나는 최근에 읽은 글 가운데 이러저러한  글이 기억에 남는다/감동 깊었다.

10. 나는 가장 최근에 이러저러한 글을 쓴 적이 있다.(줌마네에서 쓴 글 제외)

11. 나는 평소에 글을 쓰면서 이러저러한 것이 힘들었다/부족했다.(줌마네 1학기 수업 경험을 살려서)     

12.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거에 대해 글을 쓴다면  이러저러하게 쓰겠다.


13. 나는 이번 강좌를 통해 글쓰기에서 이러저러한 것을 배우고 싶다.

14. 나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글을 쓰고 싶다.

15. 나는 장차 이러저러한 글을 쓰고 싶다.

16. 나는 이 강좌를 듣는데 최대의 걸림돌은 이러저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17. 나는 내 삶에 이러저러한 비전을 갖고 있으며, 이러저러한 일을 하고 있다/했었다.

이제 몇 년을 해온 강의이라서 강의를 진행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따라서 좀더 신결 쓸 일은 강의 밖의 환경을 다듬고 이끌어가는 것이다. 강의 밖이란 다름 아닌 수강생 개개인의 상황이다. 
글쓰기는 그냥 강사의얘기를 듣고 감동을 받은 채 끝나는 강의가 아니다. 글쓰기는 실행, 즉 습행으로 이어져야 비로소 강의의 목표가 실현된다. 따라서 수강생 개개인의 처지와 글쓰기에 대한 준비 정도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개별 상담들이 이뤄져야 보다 효과를 볼 수 있다.  

' 나의 이러저러한 열일곱가지 이야기'는 바로 그런 강의 밖의 상황에 대해 상담하기 위한 기본 자료인 셈이다. 
열일곱 가지 이야기는 크게 내 가지 영역으로 나눠져 있다. 첫째는 강좌를 알게된 계기다. 둘째는 세상정보를 얻는 경로와 관심 영역을 알고자 하는 내용이다. 셋째는 글 경력이나 글 인연 등을 확인하는 내용이다.  네번째는 강좌에 대한 기대와 향후 바람 등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이들 영역에 대해 각자 편하게 답을 적으면 되는 것이다.  

매일 두세 개의 과제들이 게시판에 올라오면서 과제마감이 시나브로 이뤄졌다. 어떤 이는 각 질문마다 한 문장으로 답변을 적어냈다. 반면 어떤 이는 에이포용지 4~5장에 달하는 분량으로 삶의 이력을 훑어내듯이 답변을 적기도 했다. 

과제를 모두 모아서 출력했다. 과제가 올라올 때마다 즉시 읽고 싶었지만 참았다. 모두 모았다가 한꺼번에 읽고 싶었다. 과제에 어떤 내용이 있어도 즐거울 듯 했다. 또한 전체를 모아놓으면 에이포 용지 30여 쪽에 달하는 글을 차분히 읽을 만한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았다. 

출력한 과제물은 서올로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비로소 넘겼다.  예상대로 과제 내용이 재미있었다. 어떤 이의 글은 삶의 파노라마를 보는 듯한 단편영화 같기도 했다. 과제글을 읽을 때마다 제출한 이의 이력과 서로 연관지었다. 글을 어느 정도 쓰고 온 이와 이제 이곳에서 글을 쓰겠노라고 시작한 사람의 기대치는 서로 달랐다. 소박하게는 나의 삶을 다룬 자서전을 한 권 쓰는 게 소원인 이도 있었고, 당장 돈 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이도 있었다. 

열일곱 가지에 쓴 모든 내용에 따라 맞춤형 수업을 진행하기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열일곱 가지의 이야기는 필요하다. 이를 통해 얻은 정보를 토대로 틈틈이 개별적으로 그 관심사를 얘기할 것이다. 뒷풀이라도 있게 되면 한두 명 에게 좀더 집중하여  일대일 코디를 해 나갈 것이다. 자서전을 쓰겠다는 이에게는, 글을 쓰기 전에 먼저 목차를 짜 보라고 권할 것이다. 그 목차에 따라 글 내용이며, 분량, 형식 등이 충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개별 수강생들의 처지에 맞게 코디를 해 나가는 것, 그것이 그동안 줌마네에서 이뤄온 강의 방식이며, 그렇기 때문에 줌마네와 다른 어느 글쓰기 강좌와 차이를 보일 수 있다. 

 

4.
또 다른 시작이다. 얼마나 많은 변수들이 발생할 지, 스스로 얼마나 많은 재미를 느끼며 강의를 진행할 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평상심이 있다. 그 위에 새로운 시간들이 펼쳐질 것이다. 약 3개월 정도. (200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