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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내 사람네

두번 째 유럽 4 - 거기 에이튼성이 있다



 

훈련 일정을 아는 우리 일행에게 목요일은 깔딱 고개였다. 마스트리히트에 도착 후 연속 이틀간 이어진 종일 수업(오전 9시 ~ 오후 5시)이 목요일에 정점을 맞이했다. 일정상으로는 오늘을 끝으로 종일 수업이 이뤄지는 날은 없다. 그러니 목요일만 잘 넘으면 조금 여유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손에 닿을 듯 말 듯한 희망 잡기가 더 어렵듯, 목요일은 그런 날이었다.


이제 첫날처럼 호텔로비에 모여 EIPA로 ‘등교’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각자 아침식사를
마치고는 9시까지 EIPA로 모였다. 수업은 9시 정시에 이뤄졌다. 매일 EIPA에서 강의를 담당하는 강사는 5분 정도 일찍 와서 우리 일행을 기다렸다.


목요일 수업은 모두 4가지 주제로 나눠 진행됐다. 오전에는 전자정부 행정분야의 신기술 사용,
민관 파트너쉽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다. 강의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운다기보다는, 유럽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한국의 제도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비교하는 정도가 적당한 눈높이가 아닌가 싶었다.

 

점심시간은 한 시간이었다. 12시를 기점으로 오전 수업 일정에 따라 점심시간은 약간씩 변동이 있었다. 일행들은 식사를 마치고는 대부분 마스트리히트의 거리로 나섰다. 조금이라도 더 이 낯선 도시를 구경하기 위한 일념이었다. 그러나 나는 목요일엔 그 일념을 포기했다. 몸이 피곤해 더 이상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몸이 피곤한 원인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성과업무를 3년 가까이 하다보니 성과관리에 대한
럽의 흐름을 알고 싶은 학습 욕구가 발현되었다. 언제 이 도시에 와 보겠나 싶어 가능한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자는 관광 욕심도 불끈했다. 타 직장 직원을 만나기가 쉽지 않으니 이참에 서로 이름이라도 알고 지내자는 마음도 한몫을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세 가지의 욕구는 모두 시간이 기본 자원이고, 체력은 필수조건이었다. 그렇다고 단기간에 체력을 보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유럽에 도착한 후 날이 더할수록 체력은 욕구에 반비례하며 하루 이틀 소진돼 갔다.


결국 저녁의 여흥을 위해 점심의 한 시간을 포기한 차선책이 낮잠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나는
강의실로 들어와 의자에 앉아 잠을 청했다. 잠시 후 일행 중 다른 한 명도 나처럼 낮잠을 택했다.


어느새 잠들었나 싶었는데, 두런거리는 소리에 깨보니 일행들 서너 명이 되돌아왔다. 잠시 후 일행들이 돌아와 자리를 잡자 오후 강의가 시작되었다. 오후에는 재무관리에서의 새로운 흐름, 성과관리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다. 재무관리는 한국에서 국가재정법에 따른 성과관리시행계획을 작성하는 업무를 하면서 보았던 내용들이 도움이 됐다. 성과관리는 하고 있는 업무이니 어려운 점은 없었다.

다만, 한국에서 성과관리 하면서 문제점으로 제기되는 사항들이 - 피평가팀의 목
표점 하양 조정, outcome에 도달하지 못하고 정령화 경향으로 빠지는 성과지표 - 유럽에서도 역시 문제이자 극복해야 할 과제로 드러나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번 국외훈련을 떠나올 때 나는 노트북을 챙겨왔다. 첫째 목적은 디지털카메라 사진 저장용이었다. 용량이 큰 메모리카드를 몇 개 챙겨오긴 했지만 아무래도 컴퓨터에 저장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둘째 목적은 훈련 내용을 정리해보자 싶었다. 5년 전 국외훈련을 다녀왔을 때 훈련 내용을 개인적인 기록으로라도 남기고 싶었는데 메모 정도로는 기록이 쉽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이번 국외훈련에서는 노트북으로 정리해보자 싶었다.


다행히 목요일까지 진행한 강의는 모두 기록했다. 정리목표는 적어도 순차통역을 해 주는 분이 하는 얘기는 빠짐없이 기록해보자는 것. 자판 두드리는 속도가 빠르진 않지만 순차통역이 주는 시간적 여유를 활용하면 그런대로 통역사가 하는 말들은 빠트리지 않고 적었다. 다만, 오타를 수정할 겨를은 없어 오타는 오타대로, 영문도 한글로 적어나갔다.


강의 내용을 정리한 후, 질문 시간이 이어지면 그때는 카메라를 들었다. 목표는 함께 참여한 20명의 공무원 모두의 개인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가끔 사진을 찍다보면 포즈를 취하고 찍힌 사진보다 자신도 모르는 상태로 찍힌 사진이 더 멋있을 때가 있다. 그것을 해보자 싶었다. 특히 각자가 학습에 열심인 모습을 담고 싶었다. 평상시 쓰던 줌렌즈와 별개로 50mm렌즈를 한 개 더 가져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50mm 렌즈는 실내에서 셔터속도를 좀더 빨리 가져갈 수 있다. 그 덕에 가급적 실내에서는 50mm 렌즈를 사용했다. 그러나 거리가 맞지 않은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줌렌즈로 교체했다. 


노트북으로 강의 내용을 기록하고, 사진을 찍는 일은 그냥 하고 싶어서 한 일이었다. 만약에 이 기록이 역할이나 임무로써 주어졌다면 그것 또한 곤혹한 일이 됐을 듯싶었다. 훗날 알았지만 이 기록은 수업시간에 쏟아지는 졸음을 쫒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오후 5시, 목요일의 모든 수업이 끝났다. 이제 남은 일정은 일행들이 자유롭게 짤 수 있다. 일단 일행은 전체가 움직이는 방식은 선호하지 않았다. 단장은 자유롭게 움직이되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만 삼가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2조는 별도로 일정을 잡았다.

2조는 모두 네 명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목요일 일정엔 조원중 한 명의 룸메이트인 이와 네델란드에서 교육연수를 맡고 있어 이번에 순차통역을 맡아 준 이까지 함께 했다.

이 가운데 한 분이 자발적으로 나서 여행가이드로서 손색없는 역할을 해 주었다. 마스트리히트의 안내도는 기본으로 섭렵했다. 여기에 현지인들에게 수시로 물었다. 훈련을 떠나오기 전에 지난해 이곳을 다녀간 직원에게 얻어온 정보도 쏠쏠했다. 그 모든 것을 종합해 여행가이드로 나섰다. 자연스레 여행과 관련하여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다 알려준다는 의미로 네이버 강이라는 별명이 생겨났다.


2조는 우선 어제 구경하지 못한 신시가지 쪽을 둘러보았다. 이곳에 온 지 처음으로 대형매장을 발견했다. 이참에 네델란드의 물가를 알아보자며 모두들 매장으로 들어갔다. 십여 분 후 나온 일행은 가격이 무척 싸다며 한마디씩 보탰다. 어제 저녁에 호텔근처 가게에서 싸다며 구입했던 하이네켄이 60%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이참에 먹어보자며 체리도 두 통 구입했다.


다음 코스는 도서관 도서관 건물입구에는 고대 유물 전시장이 있었으나 이미 문을 닫아 제대로 구경하지는 못했다. 도서관은 책이 진열된 서재까지 가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도서관 구경을 마치고 나온 네이버강의 발길이 다시 바빠졌다. 잠시 지도를 들고 현지인에게 묻더니 일행을 마스트리히트역 앞 버스정류장으로 끌고 갔다. 저녁 7시가 다 될 무렵이었다.
나를 포함해 일행 가운데 몇몇이 식사를 먼저 하고 이동하자고 했다. 그러나 네이버강은 이 근처에 옛 성이 있으니 그곳을 먼저 봐야한다며 일행을 이끌었다. 정보와 의지를 가진 자를 따르지 않는다면, 장차 마스트리히트에서의 여생이 불행해 지리라. 더 이상 누구도 군말 없이 정류장으로 향했다. 


네이버강은 버스정류장에서 운전기사에게 한참을 물어 버스 노선을 알아냈다. 5분여 후, 우리 일행은 10번 버스에 올랐다. 버스표는 왕복용으로 구입했다. 순차통역을 해 주던 황병은 선생은 피곤했는지 호텔에서 쉬겠다고 했다. 일행은 다섯 명이 되었다. 조촐했다. 

네이버강은 운전기사에게 다가가 우리가 내릴 곳을 듣고는 자리에 앉았다. 버스는 5분쯤 달리자 시내를 벗어났다. 시외는 고즈넉했다. 여전히 도로 옆으로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함께 펼쳐졌다. 자전거 타기엔 더 없이 좋은 나라라는 것을 가는 곳곳마다 실감했다.


버스에 오른 지 20여분 쯤 되었을 때, 운전기사는 우리에게 내리라고 했다. 주택전용 전원도시
같은 풍취가 느껴지는 어느 마을이었다. 그곳에서 6번 버스로 갈아타라고 했다. 한 5분 가량 기다렸을 무렵, 벤 승용차 한 대가 버스 정류장에 섰다. 처음엔 무심히 보던 일행 가운데 누군가가 6번 버스라고 소리쳤다. 우리를 본 버스 기사는 벤 승용차 뒤로 가더니 접혀 있던 의자를 펼쳤다. 버스표를 보여주니 추가요금 없이 환승이 이뤄졌다. 그야말로 소형 마을버스였다. 마을버스는 두어 정거장을 간 후 우리를 내려줬다. 이 정도였다면 굳이 마을버스를 타지 않아도 될 거리였다.


몇 걸음 걷자 수십 년은 자랐을 거대한 플라타너스가 옆으로 늘어선 길이 나타났다. 누구랄 것도
없이 감탄사를 토해냈다. 그러나 그 감탄사는 조금 이른 감이 있었다. 플라타너스 길을 지나고 나자 오른편으로 성곽이 나타났다. 지명을 따서 붙이자면 에이튼성이다. 그 성곽 가운데 난 문으로 들어서자 옛 성 한 채가 나타났다. 감탄사는 이쯤해서 토해냈다면 제격이었을 법했다.

  

통상 한국에서 성(城)이라고 하면 북한산성처럼 성곽과 성문 정도를 떠올릴 법하다. 그러나 이곳의 성은 달랐다. 성문을 통과하자 4~5층 쯤 되는 집 한 채가 나타났다. 그게 성이었다. 이 성 둘레로는 해자를 파 놓았다. 주변으로는 큰 정원이 꾸며졌다. 앞쪽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그 뒤편엔 잔디밭이 있고, 잔디밭은 수백 수십 년은 자랐을 나무숲으로 이어졌다. 주변경관에서 으뜸은 약 2백여 미터 가랑 이어진 나무터널이었다. 나무들이 서로 엉킨 채 하늘을 가려 낮인데도 어둑한 기운이 돌았다. 넝쿨류가 아닌데도 엉키듯 자란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성에 들어서자 우리 조의 조장이 농담을 던졌다. 전생에 이곳 성주였을 거라며 당시가 희미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한 순간 일행은 웃음꽃을 피웠다. 일행은 배고픔도 잊고 환한 얼굴을 한 채 성 주변을 돌았다.

성을 나올 무렵 트럭 한 대와 한 무리의 현지인들이 성안으로 들어왔다. 그 중 한 명이 우리일행에게 말을 걸었다. 조원 중 영어가 되는 한 명이 받아 한참 얘기를 나누었다.‘이 성에 사람이 살고 있다. 임대 형태로 살 수 있다. 7월 17일~19일까지 이곳에서 축제가 열린다’는 정도의 얘기였다. 네델란드인의 적극성을 엿볼 수 있는 한 대목이었다.


에이튼 성을 빠져 나온 일행은 발걸음이 조금 급해졌다. 마스트리히트로 돌아가는 버스가 매시 50분에 도착하는데 시간이 5분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에 마을버스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할 수 없이 10번 버스에서 내린 그 정류장까지 걸어가야 했다. 조장과 나는 서둘렀다.  이 버스를 놓치면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버스는 우리 일행보다 늦게 나타났다. 버스운전사를 보니 우리를 에이튼까지 태워왔던 이였다. 운전기사는 “you, back?"하며 알은 체를 했다.


저녁식사 메뉴는 마스트리히트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정해졌다. 전날 민경미 선생이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맛이 괜찮았다는 거였다. 조장이 잠시 중국집을 얘기했지만 여론은 이미 스테이크 가게로 대세가 굳었다.


9시 무렵에 찾아간 스테이크 가게에서 우리는 두 종류를 주문했다. 모두들 충분히 배가 고팠다.  음식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누군가가 와인을 사 숙소에서 마시자고 했다. 잠시 후 조장과 내가 낮에 들렀던 대형마트까지 갔다. 와인과 체리, 치즈를 구입했다. 음식점에 도착해
보니 음식은 이미 나와 있었다. 그래도 남아 있던 일행은 음식을 먹지 않은 채 의리를 지켜주었다. 스테이크는 모두들 입맛에 맞다고 했다. 더불어 음식을 잘 선택했다며 자화자찬도 이어졌다. 한 사흘 함께 생활하면서 어느새 노는 데는 죽이 착착 맞았다.


식사를 마친 일행은 11시 무렵에 호텔로 들어갔다. 객실에서는 황병은 선생과, 옆 호실에 묵고
있던 다른 두 명을 불러 모두 8명이 함께 했다. 옆 방에서 온 이들은 소주 서너 팩과 양파 조림, 마른 멸치 등 안주를 가져왔다. 전체 일행이 20명이라 모두 함께 보이기 어려워, 이처럼 조촐하게 모이는 게 나은 듯 싶었다. 이 술자리는 도중에 한두 명씩 먼저 일이나긴 했지만 밤 2시 가까이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