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서른 살의 생태계>를 기획하며
서른아홉의 마지막 날을 며칠 앞둔 12월 어느 날. 겨울은 모든 상상까지도 얼게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감정선이 서서히 도드라졌다. 그 감정선이 며칠 쌓이고 쌓여 연말의 바쁜 나날 사이에 나만을 위한 틈을 만들었다. 그 틈은 다른 어떤 일을 허락하지 않았다. 업무가 바빠도, 지인들과 만남이 잦아도 그 틈을 쓰지 않았다. 그 틈은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아껴 두었다.
그 틈을 이용해 30대의 들머리에서 만났던 날들을 찾아갔다. 서른 살의 1월, 서른 살의 2월, 서른 살의 3월…. 되새김은 어느 새 해를 넘어 서른한 살의 날들, 서른두 살의 날들, 서른세 살의 날들로 이어졌다. 결국 서른 살과 그 후 3년까지의 시간을 한데 묶었다.
<서른의 생태계>는 아주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투자의 귀재도 아니며, 자서전을 엮을 유명 연예인도 아니며, 사회개혁에 앞장서서 명성을 높인 이도 아니다. 그저 마흔을 맞은 한 사람이 서른 언저리에서 겪은 삶을 옮겨 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세상에 평범한 삶은 없다. 길거리에서 어느 한 사람을 붙잡고 물어도 숱한 사연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사연들은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다. 다만, 유명하지 않은 이들의 삶이 가진 그 가치에 관심이 적을 뿐이다.
타인들의 관심사와 관계없이 모든 개인은 스스로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필요하다. 삶의 가치와 행복에는 사회적 기준이 있을 수 없다. 삶의 가치는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춰가는 과정에서 얻을 수 없다. 각자 자기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곧 가치며 행복이다. 그것은 경제적․사회적 성공보다 삶을 더욱 가치 있게 하는 것들이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삶이 타인들로부터 관심을 받는다고 행복까지 자연스레 생기는 것은 아니다.
<서른의 생태계>는 서른의 들머리에서 겪은 서툰 일(노동)과, 시린 사랑과, 거친 꿈을 담았다. 그러나 경험을 열거하는 방식으로 풀어놓지 않았다. 이야기 자체보다는 그 이야기가 주는 삶의 변화와 가치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내용이 많다. 그런 점에서 <서른의 생태계>는 서른 살 사춘기를 성찰할 재료다.
2
30대의 들머리를 장식한 4년 동안, 일(노동)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무엇보다 세 곳의 직장을 거쳤다. 그럼에도 노동의 종류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서른 살에 하던 일은 월간 <말> 기자였다. <말>로 옮길 당시엔 한 달에 보름만 근무하는 이른바 반상근, 비정규직이었다. 근무 형태는 6개월 정도 지나 상근, 정규직으로 바뀌었다. 월간 <말>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한 제3의 언론이다. <말>이 창간되던 1988년 당시 우리 사회는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때였다. 기사를 쓰는 일이 곧 운동이 되던 때를 <말>은 겪었다. 그러나 내가 <말>에 입사했던 때는 그런 시절이 세월 속에 묻혀가던 때였다.
<말> 기자는 스물아홉 늦가을에 시작했다. 그 전에 주간신문사인 <캠퍼스라이프>에서 기자로 18개월 근무했다. 그러니 서른 살에 맞이한 <말> 기자 생활은 기자로서는 초보였다. 이른바 ‘<말>이 잘 나가던’ 시절의 선배기자들에 비하면 기자로서의 자질 또한 부족했다. 그럼에도 훗날 사회와 인연을 맺는데 <말>의 경험은 내게 과분할 만큼 많은 역할을 해 주었다.
<말>에 적응해 갈 무렵, 직장을 옮겼다. 서른한 살이던 해 5월, 월간 <작은이야기> 기자가 되었다. <말>의 가치와 지향에 이의가 없었지만, 내가 좀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그럼에도 <말>이 어려운 때 떠나게 돼 진보적 사회를 위해 싸워온 선배들과, 함께 일했던 입사 동기들에겐 미안했다.
<작은이야기>는 <샘터>나 <좋은 생각>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교양잡지였다. 스스로는 <좋은 생각>의 소소함과 <샘터>의 깔끔함 사이쯤에 자리잡은 월간지라고 평가했다. 내가 입사했을 때 <작은이야기>는 창간한 지 1년쯤 되었다. 아직 뿌리를 튼튼하게 내리지 못한 탓에 잡지 운영이 안정적이지 않았다. 그런 상황은 사람들과의 관계들에서 많이 꼬인 형태로 드러났다.
<작은이야기>에서도 기자생활은 이어졌다. 그러나 <말>처럼 현장을 중심으로 움직이기보다는 청탁과 글 다듬는 일이 잦았다. 자연스레 답답함도 생겼다. 그러나 소득도 있었다. <작은이야기> 생활 동안 글의 형태를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다. 생활글에도 기획이 필요하다는 것도 거기서 새삼 깨달았다. 덕분에 <말> 때 싹을 돋우었던 ‘만들고 싶은 잡지’에 대한 생각들이 무럭무럭 자랐다.
그러나 첫 직장 때부터 이어오던 ‘18개월 인생’은 <작은이야기>에서도 이어졌다. 대학졸업 후, 학원강사 18개월, <캠퍼스라이프> 18개월, <말> 생활 18개월에 이어 <작은이야기> 생활은 19개월로 마감했다. 휴간과 함께 <작은이야기>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서른두 살의 11월, <작은이야기>를 떠나자마자 곧바로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났다. 국가인권위와 첫 인연은 ‘자원봉사’ 개념이었다. 단지 국가인권위의 지향이 좋아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급한 요청에 응했다. 그로부터 4개월여 후, 그동안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공무원이 되었다. 그로부터 현재까지 내 일은 인권과 관련돼, ‘18개월 인생’의 순환 고리도 끊게 되었다.
3.
30대에의 들머리에서는 고운 연애도 두어 차례 이뤄졌다.
서른에 오르던 때, 그 곁에는 두어 해 전에 만난 한 여인이 있었다. 한 살 연상인 그 여인을 여친이라 불렀다. - 지금은 여친이 흔하게 쓰인 말이지만, 당시엔 내가 만든 말이라 믿을 만큼 낯설였다. 그러나 여친과는 서른 살을 온전히 채우지 못하고 헤어졌다. 남녀가 헤어지는데 단 한 가지 이유만을 찾긴 쉽지 않지만, ‘모든 연애가 결혼이어야 한다’는 시류가 옳지 않다고 생각했던 내 가치관이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니었나 싶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고찰은 여친을 만나기 전부터 가졌던 관심사였다. ‘서로 사랑하면 결혼하는 건 당연하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는 게 당연하다.’ ‘한번 결혼하면 당연히 그 사람과 백년해로 해야 한다.’ ‘부부가 맞지 않더라도 아이가 있으면 당연히 이혼할 수 없다.’
이처럼 사랑과 결혼을 둘러싼 ‘당연’들을 모두 비웃었다. 그런 류의 책을 20대부터 틈틈이 찾아 읽기도 했다. 그 무렵부터 ‘당연’ 그 바깥의 세상을 옹호하는 일은 내 몫이 되었다.
‘결혼제도가 가진 구속을 생각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는 게 낫다.’ ‘결혼은 사랑하지 않은 사람끼리도 조건이 맞다면 충분히 성사될 수 있다.’ ‘결혼한 후에도 다른 사랑이 찾아올 수 있다.’ ‘아이가 있더라도 부부가 정말로 맞지 않는다면 헤어지는 게 낫다.’
여친과 헤어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비록 헤어지더라도 서로 상처를 덜 주는 방식을 찾지 못한 것은 서른 살이 빚은 과오다.
여친이 떠나고 난 빈 자리에 곧바로 새로운 사랑이 찾아들었다. 어쩌면 새로 돋은 싹이 옛 화초를 밀어낸 지도 모를 일이다. 새로 온 사랑은 갈매였다.
갈매와의 사랑은 빛깔이 묘했고 관계가 묘했다. 갈매에겐 마음을 정갈하게 해 주는 녹차 같은 느낌이 풍겼다. 그러나 그 느낌에 취해 가까이 다가서면 거기엔 얼음같은 냉기만 가득했다. 좋아하는 듯했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금세 또 멀어지곤 하는 시간이 오래 반복되었다. “대관령 고개에서 겨울바람을 맞으며 얼었다가 햇살에 녹아드는, 그처럼 헤아릴 수 없는 며칠을 녹았다 얼었다 하는 황태”같은 존재가 되곤 했다.
그런 관계는 3년여 간 이어지다 청산되었다. 사귀고 싶다는 말과 헤어지겠다는 말의 주어는 모두 나였다. 사랑에도 때가 있는 법이다. 그 때가 서로 맞지 않으면 사랑하더라도 헤어지게 마련이다. 그것을 갈매에게서 배웠다. 사랑하기 때문에 받는 상처도 맛보았고, 그 상처를 덧나지 않게 아물게 하는 방법도 배울 기회를 얻었다. 그쯤 되고 보니 사랑을 사랑으로 분리하지 않고 그냥 ‘관계’로 불려도 괜찮았다.
사랑은 계절에 관계없이 새 싹을 돋운다. 서른셋의 끝 무렵에 새로운 사람이 내 곁에 섰다.
4.
30대의 들머리에서도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기대와 관심을 잃지 않고 살아온 것은 지금 생각해도 대견스러울 뿐이다. 세상과 교감하고 사회와 대화하는 생활은 내 존재의 한 영역이기도 하다. 그 영역에 한 선배가 있었다. 정작 1년 남짓 함께 생활한 <말> 때보다 선배가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구속되고 난 후 관계가 더욱 긴밀해졌다. 선배에겐 고통스러운 때였지만, 석방운동을 하면서 그나마 세상에 큰 빚은 지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인권이 내 삶에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은 계기는 한국인권재단이 주최한 제주인권학술대회 참가였다. 거기에서 다양한 인권 담론을 접했고, 글로써 행동으로써 세상에 인권의 정신을 실현하는 많은 이들을 만났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오랜 시간 동안 내 삶에 의미있는 존재들로 남았다.
<말>에 쓴 기사로 비롯된 피고인 생활도 30대의 독특한 이력이 되었다. 2년이 조금 못되는 기간동안 받은 재판은 견고하게 짜여진 낯선 링에서 룰도 모른 채 싸우는 듯 이어졌다. 다행히 강금실 변호사의 도움으로 좋은 결과를 얻었다.
사회에 대한 관심은 투쟁이 전부가 아니다는 것을 깨달은 점도 서른의 들머리였다. 생태에 관심 갖게 되고, 그 관심만큼 실천하고자 몇 가지 소소한 일을 꾸미면서 삶의 즐거움도 함께 느꼈다.
서른 살부터 서른세 살까지의 4년 동안, 의식은 충분히 즐거웠지만 몸은 그렇지 못했다. 서른 줄에 오르자 건강하던 몸이 반란을 꾀했다. 첫 반란은 서른 살의 8월이었다. 오른쪽 얼굴이 마비되는 구안와사가 찾아왔다. 그 전까지 병원 신세를 한 번도 진 적이 없어서 더욱 당혹스러웠다. 다행히 구안와사는 두 달 정도 지나자 상흔을 찾을 길이 없이 회복되었다.
두 번째 반란은 서른세 살에 발생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출근길에 갑자기 숨이 가팠고, 쉬려고 길가로 걷던 사이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 두 번째 몸의 반란은 얼굴 왼쪽에 작은 흉터와, 앞니 한 개에 이상 증세를 남기고 사라졌다.
서른한 살부터는 부모님에 대한 관심을 조금씩 표출했다. 이전 같으면 창피한 가족사라고 깊숙이 숨겼을 법한 부모님의 이혼 등을 사람들과 얘기하기 시작했다. 부모님 가운데 아버지에게 첫 관심이 쏠린 것은 그만큼 연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럴 듯한 답은 서른네 살에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서른 둘에 만난 줌마네는 이후 매년 삶에 색다른 형태의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무엇보다 글 써서 밥 먹고 살았던 그동안의 삶을 다른 각도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계기가 됐다. 또한 아줌마라는 우리 사회의 한 구성체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5.
서른 살의 과거로 떠난 여행길의 안내자는 기억이 아닌 기록이다. 그 기록은 세상풀이(세풀)다. 세풀은 1995년부터 내가 만들어온 1인 잡지 이름이다. 삶의 소소한 일들을 기록한 기록장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기자로 생활할 때는 취재 뒷이야기를 담았고, 연애 할 때는 마음속에 이는 밀물과 썰물의 흐름을 담았다. 1995년 11월부터 매달 세풀을 만들어 100여명의 지인들에게 발송했다.
<서른의 생태계>는 바로 그 세풀에서 가져온 글 모음이다. 서른 살에, 서른한 살에, 서른두 살에, 서른세 살에, 세풀에 쓴 삶의 이야기를 옮겨두었다. 다행히 세풀 덕에 서른의 들머리에서 품었던 생각과 경험들을 생생하게 엮어내는 게 가능했다. 그 생생함을 유지하고자 세풀에 실렸던 글 형태를 그대로 살렸다. 시를 흉내 낸 글도 그대로 두었고, 마음을 토해 낸 편지글도 그대로 옮겼으며, 토막글처럼 남긴 생활의 자락도 굳이 손보지 않았다. 세풀에 실었던 셀프인터뷰도 당시의 나를 알 수 있는 글이라 모양을 그대로 유지했다.
6.
스무살 이후 지난 20년 동안 지나온 삶의 여정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꿈꿔 왔던 사회적 지향과 가치가 여전히 올바르다고 믿고 있다. 누군가 행복하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행복하다”고 답한다.
이번에 <서른의 생태계>를 정리하면서 그런 나를 더욱 사랑하게 됐다. 고민도 많았고, 아픔도 있었지만 서른을 잘 건너온 게 대견하기도 했다.
과거의 정리는 단지 과거를 박제하는 행위로 끝나지 않았다. 내가 나를 더욱 사랑하게 되니, 내 품도 그만큼 넓어진 느낌이고, 세상을 사람을 좀더 유연하게 품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것이 이 책을 엮으면서 얻은 에너지다.
이런 에너지를 준, 서른의 언저리에서 만난 이들에게 고마움과 감사를 전한다. 아울러 그동안 내 삶의 어느 자락도 깊게 공유하지 못한 내 어머니에게 이렇게 글로나마 털어놓을 수 있게 돼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이제 하나 둘 서른을 맞이할 나의 조카들이자 친구들인 지운, 예슬, 지수, 송이, 진성, 동연에게 건넨다. 그것이 이 책이 태어난 첫 번째 이유다. (200903)
<서른의 생태계 30+31>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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