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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버지와 이별 7주년, 글로 추모하다 8월 31일.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7주년이 되는 날이다. 한 해 한 해 보낼 때는 몰랐는데 어느새 7년이 돼 버렸다. 평상시엔 잊고 살다가 간혹 아버지가 떠오르면 존재를 기억하곤 했던 7년의 세월이었다. 아버지와의 이별 7주년을 앞두고 블로그에 관련 글을 모으려 한다. '서른의 생태계' 꼭지에 그동안 에 썼던 아버지에 대해 쓴 글을 연재할 예정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두어해 전부터 이해의 시간을 가졌는데, 2003년 8월 이전에 쓴 글들은 그런 내용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보름간의 기록은 2003년 9월에 작성한 내용이다. 음력 기일까지 한 달 정도 게재 될 듯싶다. 이별 7주년쯤 지나고 나니 이제 슬픔이란 감정으로 회상되지는 않는다. 간혹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그 또한 오래 남지 않는다. 이제 산.. 더보기
“미안해요. 아프게 해서…” 단 한 번뿐인 이별이야기 1 15. 사망일시 : 2003년 8월 31일 08시 10분 직접 사인 : 패혈증 중간선행사인 : 패혈증 선행사인 : 간경화 14.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온 때는 8월 31일 일요일 아침 7시쯤이었다. 아버지가 상황이 좋지 않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는 곧바로 상계동에 있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바로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나 역시 옷을 챙겨 입었다. 지하철을 탔다. 마음엔 여유가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기다려줄 것이다. 이생을 끝내시기 전에 나를 기다려줄 것이다. 만일 아버지가 무슨 일이 있다면 전날 내게 올 것 같았다. 내 꿈에라도 나타나 내게 뭔가를 얘기해 줄 것이다. 지하철 2호선은 지상으로 나왔다. 성수역 부근 하늘엔 구름이 깔려 있었다. 일요일이라 지하철 안이 한.. 더보기
쪽길의 끝 상계역.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지하철의 4호선 북쪽 종착역은 상계역이었다. 상계역이 세워진 지는 15~6년 남짓 되었다. 서울로 이사 오고 나서 몇 년 지나지 않을 무렵이었다. 우리 가족의 첫 정착지는 상계3동 170번지 였다. 그 무렵 지하철 4호선이 운행됐다. 당시 시험운행을 할 때는 공짜로 태워준다는 얘기도 들렸다. 상계역은 단지 한 개의 역에 불과했지만, 그 후 상계동은 상계역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이른바 상계3동 170번지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철거민들의 생존권 투쟁인 ‘상계동 올림픽’도 상계역의 탄생과 무관하지 않다. 겨울이면 골목길에 연탄재가 놓이고, 동네 개들이 서로 교미를 하던 풍경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던 곳, 오후만 되면 아이들의 축구장으로 변하던 골목길 공터, 한 사람 정도 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