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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0+31

내가 즐거운 모임

 

 

5월 27일. 백두산 모임이 있었다. 최근 두 번 모임을 빠졌으니 아마 올 들어 처음 모임에 나간 것 같다. 참 무거운 자리일 뻔했다. 95년 모임이 제안되고, 96년 첫 산장을 뽑은 이래 4명이 산장을 맡았다. 그런데 연임을 하기로 한 산장이 지난 월초 사퇴의사를 밝혔고, 그 사후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심각하고 어려울 때일수록 처음을 보았으면 싶었다. 왜 백두산이란 모임을 만들었는지. 그러나 그것만으로 지금의 백두산을 온전히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지난 4년의 세월 동안 백두산 사람들의 처지는 많이 바뀌었다. 학교에서 후배를 만나던 이들은 이제 직장에서 업무상 사람들을 만난다. 결혼한 이들은 이제 아이들과 새로운 세상을 가꾸고 있다. 처지가 바뀌면 그 첫 마음에 대한 생각들도 바뀌지 않을까!


그래서 다시 필요한 질문은 ‘나’였다. 나는 백두산에 왜 나오는가. 나는 백두산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백두산은 내게 무엇인가. 그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해체가 얘기되는 마당에 그 동안 4년간의 모임 평가를 하는 일보다 지금 회원들의 마음이 더욱 중요한 일이라고 보았다. 평가가 잘 된다고 해도, 회원들의 마음이 떠나 있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좋은 평가로 회원들의 마음을 잡기에 적절한 시기는 아니다.


그렇다면 얘기는 간단했다. 백두산, 우리 대신에 나를 봐야 한다. 공동체주의네 하면서 정작 스스로 가진 문제는 간과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공동체도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와 실천과 생각이 모인 것인데. 더욱이 ‘사람들’이라고 칭하는 말속에 담긴, 미필적 거만함은 - 나는 이런데 사람들이 못해서 그렇다는 -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즐거워야 남도 즐겁다. 그래서 회원들에게 했던 질문은 간단했다.

“내가 생각하는 백두산은 무엇인가. 해체를 포함해서 백두산이 무엇을 했으면 좋겠는가!”

다행히 어제 모인 11명과 전화로 참석한 은실누나까지 자신의 의견을 솔직히 얘기해 줬다. 그 솔직함이 백두산이란 모임의 생명을 더 이어갈 수 있게 만들어준 셈이다.


95년 백두산 논의가 진행된 이래로 지금까지 네 명의 산장이 있었다. 한현희, 양선화, 권혁년, 강대진. 다들 고생했던 이들이다. 처음 맡았든 네 번째로 맡았든 그때마다 고민은 있었고, - 고민이 없는 모임은 죽은 모임 아닌가. - 그 고민을 두고 어떤 회원들보다 더 많은 생각한 이들이다. - 냉철하게 얘기하면 자리가 만든 고민일 게다. 따라서 누구나 산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다섯 번째 산장으로 내가 뽑혔다. 그동안 산장 선거가 있을 때마다 난 산장 후보로 거론되었다. 그리고 매번 떨어졌다. 그때마다 떨어뜨려 준 것을 고맙게 생각했다. 이번 다섯 번째 산장을 맡게 해준 것도 감사한다. 물론 이번에 떨어졌어도 감사했을 것이다.


대학교 다닐 때 잘 나서고 일 벌이기 좋아했다는 것이 졸업 후에 학과와 관련한 일을 할 때면, 조금은 부담이 되었다. 산장을 맡는 일 역시 그런 우려가 있었다. 따라서 그동안 떨어질 때마다 그 부담을 덜어줬다. 사람들도 그 마음을 읽고 있었던 듯하다. 그럼에도 산장 후보로 나서 후보소감을 얘기 할 때마다 사퇴한다는 얘기를 해 본 적은 없다. 어차피 산장을 뽑는다는 것은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마음으로 이뤄지는 일이다.

그 마음들이 판단하기 전에 내가 그 판단을 막는 것은 옳지 않다. 다행히 이번 산정 선출 즈음해 그런 부담감은 없이 살기로 했다. 그냥 내 길을 가기로 했다. 이해관계 없이 가는 길인데 뭐 어떠랴 싶었고, 더욱이 백두산은 그런 부담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엄밀히 말하면 백두산이 그 부담을 덜어줬다. 


어제 산장 선거가 끝난 후, 곧바로 몇 가지 내용을 밝혔다. 우선 지금까지 산장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해 왔던 방식으로는 산장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백두산에서 벌인 일들을 가능한 나눠야 했다. 그 일은 어제 호심이가 얘기했던 내용과 기왕 해왔던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 우선 총무일은 지난해 선출했으니 호심이가 진행하는 게 옳다. 내가 제대로 이월하지 못해 그동안 총무 일을 하지 못했지만, 어제 호심이가 얘기한 내용을 보자면 나름대로 고민이 있는 듯 했다.


종이소식지 발행은 환국이에게 일임하는 것이 나을 듯 싶었다. 넉 장짜리 소식지를 내더라도 좀 더 많은 사람이 모여 논의를 하면, 좋을 것 같긴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환국이가 혼자서 만드는 소식지가 곧 백두산의 역량이고 현실이다. 어차피 지난해부터 소식지를 만들었으니 그만큼 고민한 사람도 많지 않다. 어제 2차 장소로 가는 길에 환국이와 잠깐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뭔가 나름대로 구상이 있는 듯했다.


호심이가 제안했듯이 서로가 시간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인터넷 상에서 수다를 떨어도 나쁘지 않을 듯 했다. 이 일은 둥글이에게 맡겼다. 역시 혼자 알아서 할 것이다. 지금 생각으로는 활성화시킬 방안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 나로선 쉽지 않은 고민이다. 따라서 둥글이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연락일은 원식이에게 맡겼다. 잡무에 해당하지만, 성실하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산장이 된 이후 즉시 생각나는 내용은 그 정도였다. 여기에 몇 가지가 더 필요할 듯 싶다. 작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사회운동이 무엇이 있을지를 고민하는 일을 맡을 사람과, 학교 후배들과의 관계를 고민할 사람이 필요할 것 같다.


앞으로 백두산은 이들의 역할을 바탕으로 모임을 가꿔갈 것이다. 각자가 맡은 일을 어느 정도 이뤄준다면, 백두산은 보다 풍부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목석처럼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각 일을 맡은 사람들이 모임 때마다 한 가지씩 고민을 가져오면, 적어도 그 고민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다. 주요 관심사를 몇 몇 사람에게 맡겼지만, 그들이 하는 일에 회원이라면 자유롭게 ‘간섭’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모임을 이와 같은 형태로 짠 것은 나로선 실험이다. 이 느슨한 모임에서 일을 분담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있다. 서로들 각자 바쁘고, 그럼에도 백두산을 원한다. 그 현실을 푸는 방법으로 현재 내 머릿속에 든 것은 이 정도다.   


백두산 모임의 내용에도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 우선 백두산을 만들 당시엔 회비를 모아 백두산에 간다는 계모임 성격이었다. 따라서 백두산의 최대 목표는 백두산에 가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그 첫 시도는 좌절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각기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한날 한 시에 적어도 4~5일을 함께 한다는 것은 불가능이다.

아마 올해 역시 그런 모습일 게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의 백두산이 가진 최대 목표는 더 이상 현실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이 목표는 수정되어야 한다. 다만 그 첫 마음이 훼손되어서는 안된다. 이런 점을 고려한 대안은 단체가 집단적으로 가는 백두산기행은 잠정 유보하고, 개인의 백두산 기행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백두산을 가는 사람들에게는 회비에서 얼마 정도를 지원하면 된다. 


문제는 그 이후 백두산의 모임을 어떻게 가져 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아직 뚜렷한 대안은 없다. 일단은 그냥 계모임에서 출발하는 선이 될 듯하다. 이에 호심이가 지난 모임에서 제안했던 내용을 함께 엮는 것은 어떨까 싶다. 은실누나는 모임의 회원 모집도 공개하는 게 어떤가 하는 의견을 제기했다.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들어볼 생각이다.


다시, 이전처럼 어설픈 생각을 토해 놓았다. 그러나, 이 모든 백두산 운영을 당위성에 묶여 두지 말자는 생각이 있다. 내가 즐겁고, 우리가 즐거운 일을 찾자. 물론 나는 끊임없이 ‘의미’를 찾을 것이다. 그것이 산장이 해야 할 역할이다. 다른 회원들보다 더욱 고민해야 할 것이 그것이다. - 여기에 쓴 글은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고민의 처음일 뿐이다. (2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