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계절을 만들어가는 텃밭이 있습니다
봄 끝에…
살며시 뿌리를 뻗어 땅을 깨웠습니다
파릇한 싹을 돋아내 하늘을 만들었습니다
어린 잎들이 가지를 놓아 바람을 부릅니다
한 생명 저 혼자서도
오롯이 한 우주인데,
주위에 빈 자리를 내어 또 다른 싹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우주와 우주가 만나 텃밭을 이룹니다
파릇한 줄기는 하늘과 땅을 잇겠다며 제 키를 자랑합니다
여름 끝에….
튼실한 알맹이는 이제 우주를 풍요롭게 합니다
햇초록으로 물든 바람은 텃밭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텃밭이 우주가 되니, 달리 꿈이랄 게 없습니다
텃밭이 꿈이고 우주가 꿈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텃밭이자 꿈이자 우주입니다
생명입니다 무엇인가를 거둬들일 수 있는…
마음 안에 그런 텃밭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인을 반길 수 있는 텃밭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훌쩍 떠나버린 데도 머무는 동안만이라도
밝은 웃음 쏟아내 생명을 가꾸고 우주를 가꾸는
그런 여인을 반길 수 있는 텃밭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인이 떠난 빈 자리를 눈물로 채우더라도…
그것마저 꿈이고 우주이고 내 마음인
텃밭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마음의 텃밭엔 잡초들만 무성합니다
어느 한 순간, 뿌리 채 뽑혀진대도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내 계절은 그런 빛깔입니다. (2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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