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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0+31

다시, 만들고 싶은 잡지를 위하여


 

어제는 월차라 오후까지 부모님 일을 돕고는 저녁 8시 무렵에 외출했습니다. 강남에 있는 변호사를 찾아갔는데, 그곳에서는 내년 제주에서 열릴 인권학술회의 준비모임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회의가 끝나고 있을 뒤풀이에 참석하기로 약속했었습니다.
9시 30분쯤에 도착해, 20여분 혼자서 신문을 뒤적이다 그 모임이 끝나지 않았는데 자리를 참석했습니다.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다들 아는 분들이라 서먹하진 않았습니다. 제가 참석한 후에도 회의는 계속돼 11시 무렵에 끝났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몇몇은 귀가하고 10명 정도가 뒤풀이를 갔습니다. 술을 가볍게 마시면서, 학술회의를 준비하는 이들답게 인권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고 나오니… 2시가 되었습니다. 다들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는지 2차 제의에 근처 포장마차로 이동했습니다.

뒤풀이를 하기 전, 회의 때 나온 얘기들 중에 한 가지가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간에 어떻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이었습니다. 레크레이션을 할까, 자기소개를 어떻게 근사하게 할까, 장소는 어떨까, 1백명이 되는 사람들을 다 소개할 수 있을까…. 그런 얘기를 하는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람들을 좀 더 잘 알 수 있는, 사람 소개하는 작은 책자를 만들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출신, 생년월일을 열거하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사람냄새가 나는 그런 내용의 소개글을 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어차피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발표하고 토론하는 동안 학술적 소개는 이뤄질 테니 말입니다. 결국 사람들의 관계란 그런 크고 작은 감성들의 나눔 속에서 맺어지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포장마차 뒤풀이에서 그런 얘기를 꺼냈더니 다들 좋다고 하더군요.

그리곤 곧 뒤풀이 분위기가 자기 소개하는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걸어다니면서 수영을 한다는 이, 교통사고로 죽음 직전까지 갔으나 그야말로 구사일생한 이, 버스 아저씨가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변호사, 사랑을 이루기 위해 바닷가에서 하루종일 촛불을 지키며 주문을 외웠던 이…. 한 시간 여 동안, 덕분에 좋은 분들을 좀 더 따뜻한 느낌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느 새 <세상풀이>를 펴낸 지 예순 번째가 되었습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창간 5주년인 셈입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시작할 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죠. 그저 주변의 지기들에게 저의 소소한 일상이나 알려줄까 싶었는데, 그동안 스스로 자기 최면을 걸면서, 혹은 읽새들이 한두 마디 던지는 농담칭찬에 으쓱하며 밀고 왔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안에서 스스로 즐거움이 많았습니다.

이제 <세상풀이>는 저에게 있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좋은 성찰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잘 난 것도 없고 훌륭한 사람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냇가의 갯돌 하나에도 존재의 의미가 있듯이, 저 역시 이 생에서 이 땅에서의 존재 의미를 묻는 이 작업이 즐겁습니다. 때론 투정도 부리고 때론 화도 내고,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글까지 저 좋은 대로 늘어놓았습니다.   


여전히 제게는 제가 만들고 싶은 잡지가 있습니다. 어제 그 포장마차를 나서며 그 잡지에 대한 고민 역시 참 즐거운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짜 술 마시고 큰 수확을 건진 셈이지요. 앞으로 <세상풀이>는 그런 고민을 풀어놓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이제까지는 ‘진실성’으로 밀고 나갔다면, 그 진실에 내용을 담고 싶습니다.
 그런 시작이 뒤표지에 대한 개편입니다. 앞으로 뒤표지는 사회를 밝게 만드는 단체나 행사를 소개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그런 단체나 행사에 후원하고 참여함으로써 1%나눔 운동에 <세상풀이> 읽새들이 함께 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가 바로 <세상풀이>만의 색깔을 들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밖의 다른 꼭지들도 차근차근 ‘내용’을 담을 것입니다.


올 2000년 하반기처럼 발행이 늦어지고 끌고 가는 게 아닌 밀려가는 분위기를 조만간 바꾸면 다시 또 그런 방식을 시작할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그 내용을 포장하는 포장재는 감성이 될 것입니다.

이 글과 시를 마지막으로 10월호 마감을 하는데 가편집 상태로 보니 분량이 꽤 많아 졌습니다. 슬슬 제작이 걱정되긴 하는데… 달리 해결책을 생각해 두었으니 뭐 잘 되겠죠? 이번 <세상풀이> 개편 편집을 하면서 편집형식을 고민하고 직접 만들어준 세풀 독자인 갈매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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