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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2+33

꿈과 돈의 조화를 찾아 - 서른 둘의 자락①


 

한 고비를 넘긴 사람은 여전히 그 고비 이전에 보았던 방향을 보고 있더라도, 정신적인 자리는 한 단계 올라 서 있다. 흔히 비유하듯 나선을 따라 한 바퀴 돌고 나면 방향은 같지만, 줄이 한 줄 더 올라 나사꼭지에 좀 더 가까워진 것처럼. 그것을 성숙이라 말하여도 좋다. 그 성숙을 위해 서른 둘 첫 달에 가꾼 세 가지 고민이 있다.


98년 11월. <말>에 처음 갔을 때 받았던 급여가 66만원이었다. 70여만의 돈에서 보험료 등 몇 가지 떼고 나니 내 손에 쥐어진 돈이 그만큼이었다.  15일 근무였고 계약직이었다.

당시엔 그 돈으로 생활했다. 수유리에 전세를 얻을 때 꾼 어머니 돈을 매달 갚았고, 그럼에도 얼마간의 돈을 저축했다. 한편으로는 2백만원 정도를 따로 챙겨두었다. 언제 ‘짤릴 지’ 몰라 준비한 비상금이었다. <캠퍼스라이프> 생활 때도 마련했는데, <말> 근무 때도 여전히 필요했다.

비상금은 회사와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언제라도 그만두고, 다음 직장을 알아 볼 동안 살기위한 방편이었다. <말>에서 <작은이야기>로 오면서 그 비상금을 없앴다. 그리고 그런 대비나 고민도 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초 <작은이야기> 편집장이 바뀌고 잡지의 지향점마저 바뀌어 버렸을 때, 다시 비상금을 떠올렸다. 그런데 그보다 앞서 나는 이미 자본에 중독됐다. 적어도 <말>보다는 많은 급여를 주는 이 회사가 가르쳐준 달콤한 ‘돈맛’에 젖어 들었다. 아울러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한동안 잊고 자냈던 외아들이라는, 한 집안에서 아들이 가져야 할 부채도 새롭게 내 앞을 막아섰다. 그만큼 자유롭지 못했다. 김훈 전 시사저널 국장처럼 그만둘 때는 5분이면 짐 싸고 떠나야하는데 그럴 형편들이 아니었다.

며칠 간 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어쩌다 이렇게 약해졌는지. 불과 1~2년 전에 가졌던 ‘자만심’은 어디로 간 건지, 스스로 궁금했다.


그쯤에서 시인 조병준 선배와 소설가 공선옥 누나를 떠올렸다. 둘 다 많지 않은 수입으로 일상을 꾸려 가는 이들이었다. 분명 돈을 쓰자면 나보다 더 쓸 이들인데 적은 돈으로 생활한다. 스스로 택했든 여건의 문제였던 그들은 그렇게 살고 있다. 그 어디쯤에서 해법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모처럼 읽은 책 <새로운 소박함에 대하여>는 그런 사례를 들고 있다. 많이 버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 그것이 곧 행복은 아니라고 말한다. 내용으로 보면 그리 새롭지 않았지만, 한번 더 내 안의 다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나를 찾았다. 그래 처음을 잊지 말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우선에 두자. 지금이 아니면 하지 못하는 일을 먼저 챙기고 그걸 보거든 자본에 미련 두지 말고 떠나자. 그것이야말로 내 꿈을 찾는 것이자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리라. 문제는 돈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아직은.


그렇게 고민은 접힐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작은이야기>로부터 상당히 멀리 떠나와 있었다. 12월 말, 나는 다시 몇 명의 지기들에게 서른 둘의 삶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사실은 그 자문글에 이미 내 의향이 충분히 반영되었음에도 기꺼이 자문에 답변을 보내 주었다. 진지하고 사랑이 가득 담긴 글로. 그 글들과 내 안의 고민을 함께 뒤섞으며 연말 연초를 보냈다.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어느 이는 그의 진심을 담은절절한 글을 보내 주었다. 


“이 땅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돈이 없다는 게 얼마나 많은 서러움을 감내해야 하며 얼마나 많은 기회들을 박탈당하게 만드는 것인지 저는 온몸으로 뼈저리게 느껴 왔습니다. 형의 선택에도 그만큼의 기회비용이 지불되어야 하겠지요.”

역시 그의 진심을 “뼈저리게” 느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어떤 이도 자신의 고백을 풀어주었다.

“화장실에서 두 번 바깥으로 울었습니다. 책상에서 여러 번 속으로 울었습니다. 마음으로 보따리를 쌌습니다. 행동으로 그 보따리를 옮기다가 내가 좋아하는 동료의 얼굴이 아른거려 그만 풀어 헤쳤습니다.”


오히려 내 상황은 행복하고 다행한 경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초까지 이어진 퇴사의 고민은 서른 둘의 시작 역시 ‘지금’ ‘여기’여야 한다는 것으로 맺어졌다. ‘지금, 여기’를 지키기로 하면서 다시 몇 가지 고민이 섰다. 현재 내게 돈에 대한 욕심도 있고, 그 욕심만큼 적당히 벌면 자본주의에서 ‘나름대로’ 혜택받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반면 어느 변호사의 자문처럼 “젊은 시절은 경제를 앞세우기보다 자기 의지와 능력으로 일을 만들어가면서 경제가 따라오게 하는 것이 좋다”는, 그런 삶에 대한 충분한 공감과 모험 의지도 있다.

그 안에서 다시 내 첫 마음을 찾아 다독거렸다. 비록 내가 지향하는 잡지의 방향은 다르지만, <작은이야기>에서 내 몫만큼은 해야겠다. 그럼에도 늘 나를 비울 여지는 마련해 둬야 한다.


그만큼에서 정리했는데 다시 흔들리게 하는 계기가 있었다. 잘 나가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그곳에서 내가 맡아야 할 일 또한 매력적이었다. 그 제안을 받고 며칠 다시 고민했다. 전망대로라면 언젠가 가야할 매체가 웹진쪽이다. 생각보다 기회가 조금 빨리 왔다. 그러나 그 제의는 이전 고민보다 조금 더 쉽게 해결되었다. 내가 ‘올해’ 찾아야 할 꿈을 실현하는데 그곳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신나게 한 그 제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스스로는 ‘인연이 닿는다면 언젠가 다시 할 수 있겠지’하며 조용조용 마음을 정리했다.


2001년을 여는 첫 달에 찾아온 마음의 홍역은 그렇게 치뤄냈다. 대신 올해 내가 할 일을 조금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여러 방면에 욕심을 내기보다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자고. 그래서 내가 에너지를 쏟은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그대로 인정해 주자고. 투자가 적으면 당연히 결실이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 (20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