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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2+33

졸업 이후, ‘운동’을 찾아 - 서른 둘의 자락③

 


지난해 12월 초 이메일과 백두산 동호회 게시판을 통해 대학교 후배들인 지기에게 이메일을 받았다. 이 이메일 덕분에 오랜만에 이른바 ‘운동’을 다시 생각했다. 내 과거의 삶에 운동이란 이름으로 부를 만한 게 있었을까 싶지만, 운동이란 곧 일상에서 수없이 부딪히고 그것을 풀어 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과학생회장을 맡아 후배 양성에 한 몫 했던, 또한 내가 사랑하는 어느 지기는 다음과 같은 글이 담긴 이메일을 보냈다.  

“개인적인 욕심이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학교의 인연들을 이어갈 수 있겠구나. 그 안에서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겠구나. 그리고 한때 옳게 살자고 했던 운동이라 불렸던 과거의 삶을 잊지는 않겠구나.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보면 개인적으로 그 이상을 아니 그 이하도 기대하기 힘든 형편입니다. 변명을 하자면, 제가 느끼는 의미 상실의 부분이 가장 큰 거 같습니다. 만남과 관계의 공간이라고 두었던 부분이 이제 부담으로 이제 목적을 중심으로 한 관계를 만들어 갑니다.”

그가 말하는 ‘그 안’이란 대학교 학과 졸업생들의 모임인 백두산을 말한다. 


지기는 이 글에서 자신의 ‘욕심’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그는 운동을 말하면서 정작 중요한 현실에는 눈을 감아버리고 있다. 백두산은 ‘그만한’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라는, 너무나도 명백한 현실을 외면했다. 


이전에 어느 청년회를 취재했다. 그들은 직장에서 퇴근하고는 청년회 사무실에 모여 분과 활동을 벌였다. 퇴근 후 새로운 일을 하는 그 모습을 보고는 적지 않게 놀랐다. 어느 시민단체 역시 상근자는 단 한 명뿐이고 일반 회원들은 직장인인 것을 알고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부러워하기도 했다. ‘백두산도 저렇게 될 수는 없을까.’


그러나 그런 부러움을 곧 접었다. 어떤 모임의 가능성을 미리 예단할 필요는 없지만, 백두산은 시작이 그러했듯 청년회나 시민단체의 회원들처럼 그렇게 열성적이지 않았다. 심지어 두 달에 한 번 모이는 모임 역시 전체 회원들이 모이기 힘들다. 그러니 그런 부러움은 곧 욕심과 다르지 않았다.  

이럴 때 지기처럼 모임회원인 개인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첫째는 이보다 더 단결력 있는 모임을 만들면 된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단결력이 요구되는 큰 활동을 펼치면 된다. 그 지기가 이 방식을 택한다면, 부지런히 찾아야 한다. 또한 스스로 그런 모임을 만들 생각도 해볼 만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학과 안에서 아직 그럴만한 모임을 꾸릴 사람은 없어 보인다. 학과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니 시각을 좀더 밖으로 돌려 아예 사회단체에 가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그 지기 역시 일요일도 없이 야근하는 사무노동자로 살고 있다. 그가 그 현실에서 큰 결심을 하지 않는다면 일상의 영역을 바꾸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 지기가 상실했던 그 큰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지금이라도 사회단체에 발을 담가야 한다.


둘째는 그가 좀 더 현실을 현실로써 받아들여야 한다. 학원강사로, 야근을 몰아서 하는 사무직 출판노동자로, 한 가정의 아빠로 혹은 엄마로 사는 이들이 회원으로 있는 백두산의 현실을 인정할 수 있다면, 그런 회원들의 진정이 어떠한 지 진심으로 살필 수 있다면, “그 이상을 아니 그 이하도 기대하기 힘든 형편”은 아니라고 느낄 수 있다. “한때 옳게 살자고 했던 운동이라 불렸던 과거의 삶을 잊지” 않고 살 수 있는 방안들은 그 안에서 차곡차곡 마련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런 현실에 맞는 대안을 스스로 찾지 못하는 것은 혹시 운동이 심어준 오만 아닐까. 아직도 학생운동하던 시절을 동경하는 향수병이 남은 것은 아닐까. 그 지기와 십 년이나 터울 진 지기들이 대학에 들어오는 마당에 여전히 후배로만 남으려는 미성숙은 아닐까? 


백두산 회원들이 대부분 대학에서 크고 작은 운동이란 이름으로 친해진 이들이지만, 이제는 그런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학교 때의 일은 그것으로 끝이다. 다만 같은 공간에서 삶과 사회를 고민하던 기억으로, 그런 공감이 없는 이들보다는 좀 더 쉽게  좀더 끈끈하게 묶을 수 있다는 그 점만을 토대로 삼고자 한다.

그리고 백두산은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부지런히 찾는, 그 모든 일이 백두산 그 자체라고 믿는다. 잘못 찍어낸 소식지 한 장도 백두산이고, 직장 때문에 모임에 오지 못한 회원의 마음도 백두산이다.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회원들 소식을 클릭하는 것까지도 백두산이다.


그 지기가 다시 한번 자신의 안을 들여다보았으면 좋겠다. 왜 지금 그처럼 마음이 불편해 졌는지. 왜 의미를 상실했는지. 왜 스스로 부담을 느껴야 하는지. 누가 그 지기에게 무엇을 요구한 것도 아닌데. 백두산을 턱없이 높이 잡아 놓고 그렇게 활동하지 못하니까 부담스러워 하는 것은 아닌지. 남들이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하니까 의미 상실한 것은 아닌지. 만일 그렇다면 그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것 아닌가. 씁쓸하게도 내가 사랑하는 그 지기의 글에서, 오만과 자살의 가능성을 엿본다.


이 사회의 냉혹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 지금처럼 무기력하게 백두산을 떠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모르겠다. 내게 그런 자격이 있다면 난 이해하지 않을 생각이다. - 이 지기에게 이메일을 받고 난 후 그와 술자리가 있었다. 지기가 내게 서운했을 일들을 그 자리에서 조금이나마 나누었다. 그럼에도 이 글은 그냥 둔다. 그 지기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감히’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니, 짐작하기 때문에.


사회생활 만 5년인 지금. 대학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라면 그렇게 말하고 싶다. 학교 때의 시위는 신변의 위험은 있었지만 잘 싸우고 돌아오면 막걸리라고 마시며 어설픈 무용담이라도 나눌 뒤풀이가 있었다. 집회에서 어느 정도 인원수가 채워지면 그런 대로 만족감도 들고 웃음도 담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에서 겪는 일상의 싸움은 끝도 없는 싸움이면서 또한 자본이 주는 그 최루성이 몇 배는 강하다. 더욱이 무용담을 나눌 동지도 찾기 어려울뿐더러 자족적이나마 승리했다고 말할 무엇도 없다. 이 현실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지기에게 묻고 싶은, 혹은 나 역시 여전히 고민해야 할 문제다.


올 초 받은 편지 중에 이 지기도 알고 있는 또다른 지기가 보낸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을 끝맺을까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무척 기뻤고 ‘이 지기가 어찌 이런 예쁜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하는 감탄이 들었다. 아울러 이런 지기를 내 인연의 한 가닥으로 두고 있다는 게 너무 즐거워 ‘나’라는 존재에게 감사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뭔가 일을 해 보자는 얘기는 3년 전 쯤에 백두산에서 거론되었던 얘기였고, 당시 백두산 회원들은 시간이 나지 않아 이 일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 이 지기는 몸소 자원봉사에 뛰어들어, 노동자와 작은 연대를 가꿔가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지기는 “과에서 ‘운동’이라는 것으로 나뉘는 사람 관계가 참 싫었”던 기억을 가진 이다. 이런 생각과 이런 실천을 하는 지기까지가 백두산에서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는 이번에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공부에 뜻이 있어서라기보다 꼭 하고 싶은 일을 찾았거든요. … 한국어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지금 성남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서 한국어 자원봉사를 하고 있어요. 제가 가르치는 학생은 미얀마 학생인데…
사실 이곳에서는 한국어 교육에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랍니다. 이를테면 노동자라는 문제도 고민해봐야 한다는 거죠. 처음엔 괴리감이 좀 있었지만, 전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운동을 안 한다고 해서 토론할 자격도 생각을 말하고 지지하거나 반론을 펼 자격도 없는 것은 아니라고 그런 것처럼 적극적으로 뭔가를 실천하고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있고 비록 한국어교육이라는 부차적인 차원에서 시작하지만, 결론적으로 노동자들의 문제 해결을 위한 같은 길목에 서 있노라고….”
(20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