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뛰는 삶. 그런 삶을 살라고 한다. 그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이 세상에 온 이유이자 목적이라는 것이다. 뉴에이지 명상가인 미국의 다릴앙카는 채널링을 - 인간보다 좀더 진화된 우주의 어느 생명체와 인간이 나누는 대화 - 기록한 책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에서 그렇게 말한다. 채널링 자체를 신비롭게 여기든 실체로 인정하든 여부에 상관없이 그 책에서 귀 기울일 대목 가운데 한 구절이 가슴 뛰는 삶이다.
그 채널링에서 말하길, 어떤 일을 할 때 가슴이 뛴다는 것은 그 일이야말로 나를 위한 일이고, 내가 그 일을 쉽게(잘) 할 수 있는 일이고, 내 삶이 무척 풍요로워 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난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나를 위하고 내가 잘 할 수 있고 나를 풍요롭게 하는 일은 무엇일까. 모든 현실을 떠나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보자면 잡지를 만들고 싶다. 내가 만들고 싶은 잡지….
우선은 지금 이런 세풀처럼 내가 쓰고 싶은 글 쓰며 사는 게 가슴 뛰는 삶이다. 그러니 세풀은 지속적으로 쓸 수 있다. <작은이야기>로 올 때의 삶이 그랬다. 내가 하고 싶은 일하고 내가 좀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요즘엔 잠시 <작은이야기>에서 무엇을 배울 것이 있을까 고민하고 손익계산도 따져본다. 크게 보아선 <작은이야기>라는 ‘잡지’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작은이야기>가 가슴 뛰는 잡지는 아니다. 가슴 뛰는 일이란 형식상 잡지가 아니라 내용까지 맞아야 한다.
삼십대 중반 어느 무렵 쯤에 시작할 내용으로 생각하는 게 ‘인권과 평화 운동’이다. 이 안에 ‘환경’ 역시 필연적으로 포함된다. 내용만 보자면 어느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면 될 듯싶으나, 잡지로 수단을 삼았으니 글로써 대중을 만나고 글로써 운동을 말하고 싶다. 이 대목에서는 <작은이야기>에 올 때 꿈꾸었던 “운동을 말하되, 운동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울러 운동 밖에서 전문적인 기술과 능력을 익혀 운동 안에 들어가 그 외연을 확대하고 내부를 보다 튼튼히 가꾸는 일이 내가 할 일이라고 본다.
‘정치적 386’의 시대는 갔을지라도 ‘사회적 386’의 시대는 충분히 부활의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을 종종 발견한다. 물론 386은 시간적 개념이 아닌 그 정신을 말한다. 사회적 386은 분명히 다른 무엇이 있다. 그 물꼬를, 그 디딤돌을 내가 만들고 싶은 잡지가 맡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자면 몇 가지 사전 정지 작업이 필요하긴 하지만.
지금도 운동성을 지닌 류의 잡지들은 있다. <삶이 보이는 창>이나 <사람이 사람에게>,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작은책> 정도가 조금씩 빛깔을 달리 한 채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래서 조만간 이들 잡지를 연구해보고 싶다. 이들 잡지들이 가진 특성은 무엇이고, 어떤 한계들을 담고 있는지.
지난 해 말 잡지에 대한 꿈을 슬쩍 꾸어본 적이 있다. 그렇다고 회사를 차릴 만한 처지는 못 되니 위에서 거론한 잡지들처럼 ‘거창하게’ 만들 생각은 없다. 독자가 있는 만큼 부수를 찍고, 들어오는 돈만큼 잡지를 꾸미면 된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 정도다. - 요즘 대부분의 잡지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돼있어서 그 잡지를 읽는 일이 간절하지 않는 이들에게마저 호객을 하려 하니 힘들다. 그렇다면 돈을 벌지 않고 잡지를 꾸려 갈 수 있을까? 한편으로 자급자족할 삶의 방편을 만들어간다면 가능할 듯 싶다.
여전히 고민이지만, 만들고 싶은 잡지는 시작은 <인물과 사상>같은 방식이고, 운영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같은 류로 진행되며, 내용은 <사람이 사람에게>에서, 글 스타일은 <작은이야기>에서 도움을 받을 것이다.
잡지 준비를 5년이란 긴 세월을 잡은 것도 그 때문이다. - 엄밀히 말하면 5년이란 세월은 준비기간이 아니라 발행기간이다. 그쯤 되면 잡지가 네트워크를 유지하며 스스로 굴러갈 수 있다. 그것이 손익분기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손익분기점이란 애초부터 없다.
이 꿈은 잠시 접어 두었다. 그 일은 올해 우선해야 할 일이 아니다. 또한 다른 방식 역시 열어두어야 한다. 조급할 이유도 없다. 그 잡지가 잘 된다면 아마 40대에는 어느 조그만 마을로 내려가 삶을 가꿔가지 않을까 싶다. 역시 그곳에서도 ‘우리 동네’를 다룬 잡지를 만들고 싶다. 그러나 이 꿈은 너무 멀다. 지금 거론하기엔. (2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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