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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2+33

어느 ‘간첩’의 사면을 위한 감성시위


 

우리 일상엔 기도라는 게 있습니다. 무엇이 이뤄지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염원하는 것. 그 행위가 굳이 종교인들만의 의식일 이유는 없습니다. 사랑이 이뤄지길 바라는 연인들의 마음, 정화수 떠놓고 자식이 잘 되길 기리는 어머니의 마음, 투쟁에 나간 동지들이 무사하길 비는 마음… 그 마음 안에 각자 믿음의 신들이 살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마음 마음에서 기도는 피어나고 도심이 쌓여 그 간절함이 현실이 되곤 합니다.  

기도는 또한 기도하는 이의 마음 안에 평안을 깃들이게 하는 행위입니다. 감히 누구를 저주하고자 하는 마음은 이미 기도 밖에 있습니다. 저주나 증오는 기도 안으로 들 수 없는 마음입니다.  


2월 한 달간 <비노바 바베>를 읽었습니다. 비노바 바베는 '인도가 독립하게 되면 인도의 국기를 처음으로 게양할 사람'이라고 간디가 칭송했을 정도로, 비폭력에 근거한 사회 활동을 두루 펼친 인물입니다. 그의 업적으로, 폭력이 아닌 사랑과 감동으로써 지주들의 토지를 빈민들과 나눈 토지 헌납운동을 들죠. 그러나 이런 모든 운동보다도 그를 그답게 한 것은 모든 일을 직접 행동에 옮겨가면서 좋고 나쁨을 판단한다는 점입니다. 음식은 어떤 게 몸에 좋은지 부터 노동자들의 임금은, 물건의 가격은 얼마가 적당한 지까지. 비노바 바베는 인생의 황혼에 접어들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악과 선을 공유하도록 만드신 것이다. 선은 창문이며 악은 벽이다.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도 그의 집에는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다. 선한 것은 문이다. 그 문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의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저는 오늘부터 한 달 간 감성시위를 펼칩니다.

감성 시위란 인터넷 상에서 어떤 사안에 대한 각 개인들의 크고 작은 경험을 감성적인 글로 풀어내는 것입니다. 그 글은 감정적인 비난의 글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깊숙이 담아둔 순결한 진실을 내 보이는 글을 말합니다. 이 감성시위는 동감, 공동의 투쟁 정서로 맺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감성시위는 곧 감성 연대로 마음의 연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프로야구 선수협에 대한 지지의사를 나타내는데, 구단과 KBO를 비난하는 글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억 안에 가진 프로야구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집단적으로 드러내 이를 공유함으로서 선수협을 지지하는 마음의 연대를 이룰 수도 있습니다. 악을 악으로 굴복시키는 게 아니라, 악을 선으로 포위하는 방식입니다. 정의가 부정을 큰 힘으로 감쌀 때 부정의 에너지는 정의 안에 굴복할 것입니다.


정글에서 침팬지와의 함께 살면서 동물과 사람을 이해하고 환경운동가로 나선 제인 구달. 그는 동물을 학대하는 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고 부드럽게 대하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합니다. 

“(동물을 학대하는) 그러한 태도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나의 임무인데 소리를 높이거나 비난하는 조로 말을 한다면 그들은 듣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화를 내거나 적대적으로 대응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대화가 끊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변화는 오직 내면, 마음으로부터 가능하며 법률과 규제는 유용하기는 하지만, 무시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화가 나기는 하지만 그것을 최대한 감추고 통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나는 부드러운 방법으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


사회 변혁의 길에, 몸의 자유를 걸고 구속을 불사하며 부딪힐 때도 있고, 차디찬 거리에서 구호로 맞설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자보나 유인물을 통해 호소할 때도 있고, 서명으로 연대를 이어갈 때도 있습니다. 감성시위는 그런 다양한 투쟁의 길 중 한 샛길입니다.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투쟁에 온전히 몸을 바치기는 어렵습니다. 마음을 울리지 않는 싸움은 자칫 무엇을 위한 수단으로 끝나고 말 수도 있습니다.

91년 정권의 폭력진압에 사망한 명지대생 강경대의 장례행렬이 제 앞으로 지날 때, 저는 아스팔트 위에 주저앉은 시위대열에 끼여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때의 눈물이 그 후 간혹 망월동에 가면 그의 무덤에 장미꽃 한 송이 바칠 마음을 만들었고, 지금까지 세상을 바꾸는 싸움을 해야 한다고 믿는 힘이 되었습니다.   

어느 사회 활동가는 말합니다. 매향리나 노근리에 대해 사람들이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그곳의 진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남이 당하는 폭력에 무관심해하고 무의식적인 우리 안의 폭력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이는 곧 투쟁에 있어 우리의 감성이 열리지 않고서는 보다 큰 물살로 흘러갈 수 없음을 깨닫게 해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제 그 첫 감성 시위를 시작합니다. 어느덧 인터넷 이메일로 연말 인사를 주고받기에 익숙한 제가 올 연초에 엽서를 한 장 받았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연하우편엽서였습니다. 남녘에 있는 교도소에서 날아온 그 엽서에는 몇 줄 되지 않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소주 한 잔 나누고 싶구나. 너와의 만남을 생각하면 왠지 가슴 한 구석이 뜨거워 오는구나. 인연이란 얼마나 기기묘묘한 것인지. 나는 삶에 감사한다. 올 한해 어떻게 지냈는지. 정말 불길 같은 세상을 헤치고 이기고 돌아온 우리 모두를 위해 잔을 높이 들고 싶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날마다 새롭고 나아지는 한해 만들기를. 사랑한다.” 


감성시위의 첫 주제는 바로 이 엽서를 보낸 이에 대한 조기 사면입니다.

‘간첩’ 김경환.

김경환은 지난 99년 9월 이른바 민혁당 사건에 연루돼, 남파간첩 '진운방'을 만나 기관지를 전달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상 간첩방조 및 국가기밀누설죄 등이 적용돼 지난해 가을 징역과 자격정지 각각 4년 6월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김경환에 대한 판결은 같은 사건의 핵심 인물들이 99년 10월 검찰에 의해 공소보류 조처를 받아 자연스레 형평성 시비를 낳았습니다. 더욱이 김경환은 주체사상의 잘못된 점을 깨닫고 92년 이후 사실상 민혁당에서 손을 뗐으며, 오히려 언론활동 등을 통해 남한의 변화된 실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런 저간의 형평성 문제로 인해 지난해 9월엔 <와이티엔> 홍상표 편성운영부장, <서울방송> 김강석 편집부 차장, <문화방송> 정길화 피디(전 피디연합회장), <한겨레> 이인우, <신동아> 김당, <세계일보> 김영권, <연합뉴스> 안수훈 등 현직 언론인들이 그의 구명을 위해 서명을 벌였습니다. 당시 이들의 주장은 “무죄를 선고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납득할 수 있는 조처를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김경환과는 약 1년 여간 같은 잡지에서 함께 생활했던, 말하자면 김경환은 언론사의 선배입니다. 현재 김경환 선배는 경북 안동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습니다.

이 감성시위는 우선 제 기억 속의 김경환 선배를 찾아 나서는 일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2월 한 달 간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아침에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릴 것입니다. 이 감성시위는 김경환 선배가 이른 시일 내에 자유의 몸이 되어 사랑하는 이들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기도입니다. 그의 두 아이 일지와 민지에게 따뜻한 아빠로, 형수에게는 삶의 새로운 동료인 남편으로 돌아갈 수 있기 위한 기도입니다. 또한 분단 시대의 상처를 안고 젊은 시절 고통스러웠을 한 영혼이 맑은 마음을 찾아 평안의 길로 나서길 바라는 기원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8천여 뉴스게릴라들이 활동하는 <오마이뉴스>야말로 이 감성시위 장소로 가장 적합한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곳에 둥지를 틀 생각입니다. 오마이뉴스 편집진의 시각에 따라 이 연재글은 생나무기사로 있다가 몇 시간만에 사라질 지도 모릅니다. 그렇더라도 이 감성시위는 검색어 ‘감성시위’로 되살아 날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김경환 선배의 사면을 위한 감성시위의 여는 글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1월 한달간 나름대로는 치밀하게 감성시위를 준비했다. 한 달간 이뤄진 감성시위는 예상보다 힘들었다. 기왕에 썼던 글을 재정리하는 것이긴 해도 그것을 어떻게 <오마이뉴스>에 맞게 맞추는가는 또 다른 문제였다.

그렇게라도 선배를 위해 할 수 있는 찾고 싶었다. (20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