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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2+33

내 안에, 나로 서 있는 당신


“고마워. 안 가고 있어줘서 고마워. 오면서 생각했어. 가지만 말아라. 그 자리에 있어라. 제발. 그럼 네가 시키는 대로 다 한다.”

“왜 따라 해?”

“뭐!”

“나도 여기 서서 생각했어. 서인우 다시 와라. 다시 돌아오기만 하면 앞으로 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한다.”


혹 그렇게 해서 떠나보낸 사랑이 있습니까. 작은 말다툼 하나로 서로 안에 벽을 세우고, 그 사람 앞에서만 강해졌던 자존심으로 서로의 발길 아래 강을 내던 사랑이 있습니까? 그 벽에 스스로 돌을 얹어 벽을 높이고 그 강에 스스로 물을 부어 강심을 키워, 그 사람과 내 앞에 영원히 건너지 못할 절벽을 깎아 만들던 그런 사랑이 있습니까.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겨울비를 맞으며 인우(이병헌)와 태희(이은주)는 잠시 벽을 세우고 강을 냈습니다. 서로 얘기하진 않지만, 이유는 당신도 알고 있을 법합니다. 약속시간 10분 늦어 짜증냈던 일, 아끼는 마음 몰라줘 토라졌던 일, 미처 챙기지 못한 생일로 서운했던 일, 핸드폰 전원이 꺼져 있다는 이유로 투덜거렸던 일, 그 모든 소소한 일들이 당신 앞에 벽을 쌓고 강을 내던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인우와 태희는 그들 사이에 놓였던 강을 계곡으로 만들지 않았고 벽을 깎아지르며 솟아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 모든 이유들이 소소하다는 것을 깨달아서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다만 인우는 태희가 필요했고, 태희는 인우가 절실했을 뿐입니다. 태희는 비속에서 인우를 기다렸고 인우는 비속을 달려 태희에게 돌아갔습니다.   

인우는 태희에게 막무가내로 달려만 간 건 아닙니다. 인우는 태희를 처음 만났을 때 가졌던 그 설레는 마음으로 태희를 기다렸습니다. 태희 또한 인우를 무작정 기다리기 않았습니다. 태희는 겨울비 우산 속으로 뛰어들어 인우와의 인연을 만들 당시의 마음으로 달려갔습니다.    


“왜 아는 척 안 했나면요. 조심하고 싶었어요. 아는 척 하는 순간 아무 것도 아닌 게 될까봐요.”


막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꽃봉오리를 본 듯이 하십시오.

하마 잠시라도 눈을 팔면 그 사이에 터져 버릴 지도 모를 것 같은,

숨을 조금이라도 크게 내 쉬면

그 숨결에 터져 버릴 지도 모를 꽃봉오리를 본 듯이 하십시오.


그런 당신의 마음이

간곡해지고 

간곡해지고 

또 간곡해져서

마침내 그 꽃봉오리가 닫힌 꽃잎들을 밀치고 하늘을 담으려 할 때

필요한 그 마지막 힘이 되어 주십시오.


포개고 포갠 당신의 마음이 밖에서 당겨주고

쌓이고 쌓인 당신의 마음이 안에서 밀어주십시오.

그렇지 않고 핀 꽃이 어디 당신을 위한 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제 아무리 빛이 곱고 향이 진하다 해도 그 꽃은 당신의 꽃이 아닙니다.

마음이 간곡하지 않는 사랑이,

그런 사랑으로 만나는 사람에게


어디 당신의 마음 한 자락 무심결로라도 맡길 수 있겠습니까. 

막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꽃봉오리를 본 듯이 하십시오.

지금 당신 앞에 서 있는 그 사람을.

그래서 지금 당신은 꽃봉오리의 마지막 개화 때보다 더 떨고 있습니다. 

 

“난 다시 태어나면 너만을 찾아다닐 거야. 악착같이 찾아서 너를 사랑할거야.”

“근데 그 사람이 전생에 나라는 걸 어떻게 알죠?”

“그거야 알 수 있지. 알 수 있어.”

“어떻게?”

“내가 누군가를 다시 사랑할 것 아냐?”

“응”

“응 그럼 그게 바로 너야.”

“그럼 아무나 사랑하고 나서 나라고 우기면 되겠다.”

“아니야. 알 수 있어 너 아니면 누구하고도 다시 사랑할 수 없을 거니까.”


지난 날 누군가를 사랑했다면, 그리고 지금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지금 사랑은 지난 사랑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심지어 첫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그 사랑까지도 실은 어느 시간을 타고 떠나버린 어떤 만남 안에서 싹이 텄습니다. 다만,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이 그때의 사람이 아닐 뿐, 그때의 사랑이나 지금 사랑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때만큼 지금도 간절하고 지금만큼 그때도 영원하길 바랐습니다. 지난 사랑이 지금 사랑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해도 그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 사랑도 없었습니다.


사랑으로 행한 모든 것엔 시행착오가 없습니다. 그저 지난 사랑도 계단이
고 지금 사랑도 계단일 뿐입니다. 왼발이 딛었던 계단이 없다면 오른발 역시 계단을 디딜 수 없습니다. 허공에서 휘젓는 오른발은 지금의 미욱함이 아니라 지난 사랑의 씁쓸한 그림자를 내처 떨구지 못한 탓일 뿐입니다.

계단이 계단을 만들 듯, 계단이 꿈을 키우듯, 모든 사랑은 지난 사랑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계단을 한 계단 오른 만큼 변화를 모색하고 시야도 넓어집니다. 사랑 역시 한 계단 오른 만큼 원숙해지고 사랑을 배려하는 마음도 깊어집니다. 그러나 당신도 나도 역시 꿈꿉니다. 지금 사랑이 마지막 계단이길. 그리고 이제는 평지를 걷길. 태희를 만난 인우도 그런 사랑을 꿈꾸었습니다. 


“태희야. 왜, 어째서, 너는 날 조금도 기억하지 못하니? 난 널 이렇게 알아보는데…. 흐흐흑.”


인우만이 현빈(여현수)이로 태어난 태희를 알아본 것은 아닙니다. 태희 역시 현빈이로 태어나 인우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 영혼의 외출은 물건을 잡을 때 태희처럼 새끼손가락을 펴거나, 미술에 재능을 보이는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태희처럼 “손이 찬 이유는 마음이 뜨겁기 때문이다”고 말하며, 태희처럼 “왜 숟가락은 숫가락이 아니고 숟가락인가”를 묻는 것은 현빈이의 의식까지 태희로 가득 차 있는 걸 보여 줍니다. 어딘가에 있을 인우를 향해 텔레파시를 보내는 행위입니다. 그만큼 태희 역시 인우에 대한 절실함이 있었습니다.


다만, 태희는 현빈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낼 재간은 있었으나 자신을, 그리고 인우를 알아볼 여력이 없었습니다. 인우를 주려고 들고오다 지난 생의 마지막 선물이 되어버렸던 용산역 횡단보도 위를 흐르던 그 커피의 진한 향만큼, 사랑은 깊었으되 너무나 날카롭고 예민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 영혼이 누구에게 향해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부족한 부분을, 인우가 채워 줍니다. 인우는 현빈이가 보내는 말과 행동이 태희의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인우는 지난 사랑이란 이름으로 사랑했던 한 영혼을 떠나보냈던 아픈 영혼일 뿐이었습니다. 태희보다 인우가 먼저 태희의 신호를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그 아픈 영혼의 상처가 덜 아물었기 때문입니다. 아물지 않은 상처로 태희의 신호를 받기 때문에 신호가 닿을 때마다 상처를 건들게 됩니다. 헤질 녘 바닷가에서 추던 춤처럼 날아온 태희의 텔레파시는 인우에겐 아픔입니다. 그러니 인우는 눈물을 떨굴 수밖에 없습니다. 현빈이가 자신을 알아볼 때까지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일 뿐입니다. 인우는 남자를 사랑한 동성애자가 아니라, 태희의 영혼을 사랑한 아물지 않은 상처로 산 한 영혼일 뿐입니다.


“미안해. (여보) 정말 미안해. 근데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영화를 본 후 한 느낌이 남아 있으면 글을 쓰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망설여집니다. ‘평’을 쓸만한 재주는 아니니, 그냥 감상문을 쓴다고 하더라도 영화만이 갖는 기법을 주제와 녹여내는 안목과 재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빈민이자 장애인인 한 여성이 아들에게 사랑을 베풀다 억울한 죄로 인해 사형까지 당하는 ‘어둠 속의 댄서’에서, 마치 아마추어의 숨소리처럼 흔들리는 카메라 기법은 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한껏 살려 주었습니다. 이럴 때 ‘어둠 속의 댄서’는 카메라 기법까지를 함께 논해야 합니다. 영화의 주제를 어떻게 영화적인 기법으로 살려 주고 있는가를 말하지 못한다면, 대중가요를 평할 때 곡은 빼고 노래가사만으로 평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역시 그 고민이 들었습니다. 비디오를 보고 난 후, 뭔가 마음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구성의 치밀함, 대사의 아름다움 등을 설명할 수는 있으되, 말처럼 글로 푸는 게 아닌 다른 무엇이 있을 듯한 느낌 때문에 지금도 마찬가지로 망설이고 있습니다. 다만 <번지점프를 하다>를 보고 느끼는 몇 가지를 적어두는 것은 나도 어쩔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끝은 이렇게 번지점프 합니다.


“지구상의 어느 한곳에 요만한 바늘 하나를 꽂고 하늘 꼭대기에서 밀씨를 꼭 하나 떨어뜨리는데, 그 밀씨가 나풀나풀 떨어져 바늘 위에 꽂힐 확률. 그 계산도 안 되는 기가 막히는 확률 그걸 인연이라고 해.”


당신을 위해 바늘 한 개 꽂은 적 없고

밀씨 한 톨 떨어뜨린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내 안에,

나로 서 있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20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