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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riting Story

동물을 국가에 따라 차별할까?

                                                                                              <My Writing Story> - 글, 글과 놀다
 

<한겨레21>801호의 칼럼 ‘노땡큐!’의 제목은 ‘입 없는 것들’이다. 이 칼럼은 필자가 숭례문의 복원공사를 보며 “가끔 그렇게 입 없는 것들의 고초가 마음을 짠하게 울”리는 얘기를 하고 있다. 이 칼럼은 일제시대에 일본과 한국의 동물원에서 벌어진 '살육'으로 시작한다. 


“동물원 이야기부터 하자. 태평양전쟁이 끝날 무렵 일본은 대대적인 적의 공습을 두려워하던 와중에 동물원 걱정까지 한다. 폭탄 투하로 동물원이 파괴되어 동물들이 뛰쳐나가 사람들을 공격할까 걱정된 군은 맹수들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사육사들은 가슴 아파하며 동물들에게 어쩔 수 없이 독이 든 먹이를 준다. 문제는 이 비극적인 상황이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서울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1945년 7월25일, 창경원의 일본인 책임자는 이미 도쿄에서 명령이 시행됐다며 사육사들에게 극비리에 독약을 나눠준다. 그날 밤 창경원에서는 저녁 식사에 섞인 독약을 먹은 150여 마리의 동물들이 밤새 울며 죽어갔다고 한다. 그러니까 순종이 망국의 한을 동물을 키우며 달래던 궁궐에서 그야말로 한낱 구경거리 동물원으로 전락한 창경원, 그 비운의 장소에서 동물들은 해방의 기쁨도 맛보지 못한 채 죽어갔던 것이다. 단지 미군의 공습보다 더 위험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한겨레21>, 801호)


필자는 이어 “경술국치 100주년, 한국전쟁 60주년 등 굵직한 역사적 기념일(?)을 맞는 올해, 역사의 현장에서 희생된 동물들 얘기부터 꺼낸 이유"도 밝힌다. 동물원이 그런 마당에 "인간은 오죽했겠나 싶어서”이자 “가끔 그렇게 입 없는 것들의 고초가 마음을 짠하게 울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며 첫 문단의 밑줄 그은 문장이 덜커덕거렸다.
이 문장은 앞 문단과 뒷 문단을 잇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단순히 이어주는 역할로만 그치지 않는다.

이 문장에서 단어 “문제는”은 강조의 역할도 맡고 있다. “문제는 ~다는 것이다”는 문장은 대체적으로 강조하는데 많이 사용되는 표현이다.  이 때문에 단어 “문제는”은 칼럼을 이해하는데 사소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칼럼에서 이 문장이 강조하는 것은 “서울”이다. 서울의 창경궁에서 일본의 동물원에서 벌어진 일과 똑같은 사건이 벌어진 게 “문제”가 됐다. 이 의미를 달리 읽으면 일본의 동물원에서 발생한 사건은 문제가 아니라는 정도로도 해석될 수 있다.


필자가 이미 밝혔듯이 동물원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인간은 오죽했겠나 싶어서”이자 “가끔 그렇게 입 없는 것들의 고초가 마음을 짠하게 울리기 때문”이라면, 사건이 발생한 곳이 일본인지 서울인지는 별 의미가 없다. 즉 동물을 그렇게 죽인 게 문제이지 동물이 사는 국가는 이 글의 주제를 형성하는데 큰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그럼에도 “문제는”으로 시작되는 한 문장은 ‘그렇다면 일본 동물원에서 죽은 “입 없는 것들의 고초”엔 마음이 짠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답을 찾기 어렵다. 만일 이 질문 앞에서 ‘그렇다’고 답하는 순간, 필자는 동물에게까지 국가중심주의를 덧씌우는 태도를 갖게 된다. 하나의 문장이 단순히 표현의 실수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방향까지를 진단하게 만든 꼴이다.  


이 문장이 국가에 따라 동물마저 차별할 의도가 아니었다면, 밀줄 그은 문장은 간단히 고칠 수 있다. 강조 역할을 해제내고, 연결 역할에만 충실하면 된다. 

“이 비극적인 상황은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서울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다”


단어 두 개와 조사 두 개만 손 보아도, 그런 오해는 피할 수 있다. (201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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