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입니다.
한 뼘의 목숨일지언정 뭇 생명들이 저마다 깨어나는 봄입니다.
봄은
꽃으로도, 바람으로도 봄입니다.
우리는 꿈을 꾸고 있나 봅니다.
이제 갓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이 꿈은, 봄으로도 깨우지 못할 듯해
우리의 몸마저도 차마 움직이지 못하는 현실이 돼 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고인의
그 힘이 깃든 목소리와, 그 당당하던 몸짓과, 그 잔잔하던 웃음을
생생히 기억하기에
이런 만남은 ‘기억’으로 불리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처럼 서둘러 떠날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우리의 미욱함을 여전히 버리지 못해
지금도 고인이 돌아가는 그 길의 평탄함을 걱정하기보다는
고인이 세상에 남겨 둔
그 많은 숨결과 손길을 어찌 마주할까 싶어
그만 또 한번 고개를 꺾게 되고 맙니다.
평온하십시오
이제 몹쓸 병이 들었던 몸에서 벗어났으니 평온하십시오
평온하십시오
이제 거친 세상을 비껴났으니 평온하십시오
평온하십시오
이제 고단한 일들을 내려 두었으니 부디 평온하십시오
꽃으로도 바람으로도 전하고 싶은,
우리들의 마지막 기원입니다.
직원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 암이었다. 2~3년전 이 직원은 암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한동안 건강해 보였다. 그러다 몇 달 전 병가를 냈었고, 세상을 떠나기 전날 소속 팀에서는 병문안을 갈 계획이라는 글이 올랐다. 그런데 그날 숨지고 말았다. 갓 오십 줄이니 젊은 나이였다. 200명 남짓한 직원인지라 모두들 안타까워했다.
장례를 치루기 전날 저녁에 직원들이 모여 추모식을 갖기로 했다. 어찌어찌하여 추도사를 써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일이 바빠도 그것을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난생 처음 써보는 추도사인지라 조금 막막했다. 고인이 된 직원과 막역한 사이가 아니라 개인적 추억도 그리 많지 않았다.
추도사를 쓰려면 문상을 미리 갔다오는 게 좋을 듯 싶어 점심을 먹고 곧바로 일산병원으로 갔다. 오가는 길에 추도사의 방향을 잡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비가 내릴 듯한
하늘인데, 길가로는 절정기를 지난 벚꽃이 하얗게 늘어졌다. 가수 김광석이 이생을 떠났을 때 쓴 추도사를 떠올렸다. 그만한 추도사를 쓰고 싶은데 마음뿐이다.
문상을 다녀온 후, 짬을 내 추도사를 썼다. 생각보다 더디게 나갔다. 네 시까지 주기로 한 추도사를 다섯 시가 다 돼 마무리했다. 간신히 시간은 맞췄다.
슬프나 슬프지 않게 담백하게 쓰고 싶었다. 고인에 대한 추모를 담되, 거짓까지 끌고와 치창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욕심이었다. 그나마 이 직원의 죽음 이전에 아버지와의 이별을 겪은 게 글쓰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2005**)
* 한 사람을 보내는 글을 두고, '글 사람과 놀다'로 붙인 것이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이 연재에서 '놀다'의 의미를 좀 더 폭넓게 해석하고 있으니 양해가 될 듯 싶다. '아버지에게 글을 바치다'의 글처럼.
<사진설명>
노르웨이 어느 지방 길가에서 만난 공동묘지는 죽음을 삶과 멀리 두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란 걸 깨닫게 한다. 2003년 노르웨이에 연수갔을 때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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