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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의 의미 며칠 전에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그 편지에는 도서상품권이 두 장 들어 있었습니다. 우선 고마웠습니다. 그러나 도서상품권을 꺼내 들고는 조금 허전했습니다. 요즘엔 책을 선물 할 때면 대개 도서상품권 한두 장을 봉투에 넣어서 건네곤 합니다. 도서상품권은 편리합니다. 직접 만나지 않고도 우편으로 보낼 수 있습니다. 어떤 책을 구입할 지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혹여 선물했던 책을 상대방이 가졌다면, 그것 역시 난처한 일입니다. 도서상품권은 그런 염려까지 덜어줍니다. 책을 선물하는 일은 주는 이의 마음을 선물하는 일입니다. 한 번이라도 책을 선물해 본 이라면, 서점에서 고심했던 시간을 기억 할 것입니다. 어떤 책이 내 마음을 잘 담을 지, 어떤 내용이 주는 이에게 어울릴 지…. 망설임에 들었다 놓았던 책들.. 더보기
보름달 축제 1995년 오키나와에 주둔하던 한 미군 병사가 어린 여자아이를 성폭행했습니다. 오키나와 주민 수만 명은 항의집회를 가졌습니다. 이때 오키나와에 사는 한 사람이 고민에 빠졌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주민들의 이 마음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 어느 날 그는 보름달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예로부터 보름달은 평화, 생산, 에너지 등을 상징했으며, 또한 안녕과 풍요를 비는 기원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보름달 아래 모여서, 자연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고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을 모아 축제를 만들자.’ 그렇게 시작된 것이 평화운동인 보름달 축제입니다. 2000년 7월, 오키나와 나고시(市) 세다케 해변에서 보름달 축제가 열렸습니다. 노인들이 보기 편하게 글자를 크게 썼고,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화를 그렸습니다. .. 더보기
마음 나누는 술집 몇 해 전 일입니다. 서울의 중심가라 할 만한 광화문 사거리 한 켠에 소우(小雨)라는 작은 술집이 있었습니다. 그 곳은 따로 술을 마실 탁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작고 좁은 바에 예닐곱 명이 둘러앉으면 더 이상 들어갈 자리도 없었습니다. 때론 주인이 있는 주방 쪽에도 의자를 놓아 손님이 앉곤 하지만, 퇴근 후 벗들과 둘 셋씩 짝을 지어 찾는 이들은 종종 아쉬움을 안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좁은 만큼 불편할 것 같은 곳이지만, 그곳엔 늘 손님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벽을 등받이 삼아 둘러앉아 낯선 이들과도 어깨를 맞댄 채 허물없이 술을 나누곤 합니다. 어떤 이는 통기타를 칩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뒤따라 노래를 부릅니다. 일과에 지친 이들이 서로들 그렇게 가슴을 쓸어주곤 했습니다. 화려한 불.. 더보기
절망이 희망 들꽃, 가을, 제천에 사는 임향례, 유익형 부부의 또다른 이름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 들꽃과 가을은 모두 국어 교사였습니다. 10여년 남짓 교사 생활을 하는 동안 가르치는 일에 고민이 깊은 이들이었습니다. “수능 공부는 죽은 지식이 참 많죠.” “고3 학생들 담임을 하면서 제 영혼이 메말라갔습니다.” 고민 없는 교육은 ‘총체적 부실에 부분적 땜질’을 하는 꼴이라 생각하니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을 중학교에 보내야 하는가도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결국 6개월의 휴직 끝에 들꽃님은 학교를 떠났습니다. 그동안 이들 부부와의 인연은 가끔씩 보내오는 아주 작은 시집으로 이어졌습니다. 부부는 틈틈이 쓴 시를 모아 손바닥보다 작고, 이십여 쪽을 넘지 않는 시집을 펴내 지인들에게 보내주곤 합니다. ‘삶은 엉터리면서 시만 .. 더보기
백두대간 철쭉 1 5월 다 늦은 봄산입니다. 백두대간 높은 산기슭 길목에 철쭉이 꽃망울을 터트렸습니다. 화사한 봄끝이 대간을 붙잡았습니다. 아름답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때 되면 피고 지는 삶 주변에 선 나무들은 초록을 가꿔 가는데 홀로 봄을 그리는 그 게으름이 예쁩니다. 겨우내 날 세운 바람에 속살을 무던히 긁혔을 터인데도 다 잊었다는 듯이 무척이나 밝습니다. 느낀 만큼만 드러낼 뿐 아직 봄이라고, 이제는 여름이라고 누구를 가르치려 하지도 않습니다. 철쭉은 모를 겁니다. 그 마지막 한 송이에서도 봄의 우주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을. 대간의 더 큰 우주를 만든다는 것을. 그 철쭉이 혁명이 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 대간은 솟은 만큼 고개를 숙여 사람에게 길을 터주고 앉은 김에 마을 하나 들어설 기슭도 내 줍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