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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내 사람네

숲은 내밀했다 프롤로그 숲은 내밀했다. 그저 저희들끼리 연두빛 언어를 주고받으면서도 소란 떨지 않았다. 가끔씩 말 걸어오는 바람에 슬쩍 존재를 나타낼 뿐이었다. 그때마다 땅에 내린 그림자를 그만큼 옮겨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루 그루로 만나 숲을 이뤘음에도 그 공을 뽐내는 이도 없었다. 어느 귀퉁이에 초록이 부족하다 싶으면 이내 양 옆에서 무성한 잎으로 빈 하늘을 감싸 안았다. 그런 내밀한 언어들마저도 단지 숲이었다. 애초 인간이 숲에 길을 낸 것은 어쩌면 숲의 내밀한 언어를 배우고자 함이었을지 모른다. 그 첫 길은 나무 나무가 슬쩍 자리를 비워둔 틈과 틈으로 이어졌다. 숲의 언어를 듣고자 온 이가 차마 나무를 꺾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길은 때로 바위를 넘고, 나무들을 에둘러 뻗었다. 첫 길에 들어선 인간은 자.. 더보기
백두산6 - 그로부터 한 달 그 날로부터 한 달이 됐다. 그럼에도 한 달이란 시간적 거리는 큰 의미가 없다. 지난주에도 그 날은 어제였고, 오늘도 그 날은 어제다. 오히려 요즘엔 그 날이 오늘이 돼 버렸다. 그 날, 백두산을 걸었다. 이틀간의 백두산 여행 여정 중 첫날은 그야말로 ‘관광’이었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인 5호 경계비 근처에 올라 백두산 천지와 주변 봉우리를 조망했다. 평원에서 만난 수천 수만 송이의 야생화, 허리를 깊게 밴 듯 좁고 깊은 금강대협곡을 들러보았다. 그쯤에서 백두산 여행이 끝났다면, 한 달이 지난 지금 그날이 어제가 되고 오늘이 될 까닭이 없었다. 백두산의 진미는 둘째 날 비롯됐다. 둘째 날 우리 일행은 서파에서 북파까지 천지 주변의 능선을 따라 트레킹에 나섰다. 서파 주차장에서 시작해, 마천우(2459),.. 더보기
백두산5 - 산, 백두가 된다 나무는 산에 올라 산이 된다 꽃은 산에 올라 산이 된다 사람은 산에 올라 산이 된다 산은 나무에게 숲을 내준다 산은 꽃에게 향기를 내준다 산은 사람에게 길을 내준다 산은 산에 오르는 무엇이든 경계 짓지 않는다 산에 오른 그 무엇도 아름다운 이유다 산에 오른 그 누구도 존귀한 이유다 그래서 산은 생명이고 평등이며, 또한 평화다 오늘, 또 한 사람이 산이 된다 나무와 꽃과 물과 더불어 생명이 되고, 평등이 되고, 평화가 된다 산, 백두가 된다 (20060731)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