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2+33

노란 첫 눈 11월 17일 일요일 아침 8시. 핸드폰 알람소리에 눈이 뜨였다. 후배들과 술을 마시고 새벽 2시쯤에 들어왔으니 6시간 정도 잔 모양이다. 알람을 끄고 난 순간, 왠지 창문을 열고 싶었다. 어쩌면 밤새 창밖을 바라보던 꿈을 꾸다 깬 사람처럼. 손을 뻗어 창문을 연 순간, 창밖엔 눈이 내린다. 올 가을 지나 첫눈이다. 더욱이 함박눈이다. ‘아! 또다시 이 계절이 왔구나.’ 아직 몸에 피로가 풀리지 않은 탓에 잠을 좀 더 청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안쪽 창문은 열어두었다. 내리는 눈을 보고 싶었다. 그로부터 한 시간여 동안, 잠에 취했다 깼다 하며 내리는 눈을 보았다. 그러나 다시 잠에서 깨었을 때는 눈은 없었다. 다만 뒷집 기와지붕에서 흘러내린 눈 녹은 물이 떨어지는 소리만이 빗소리처럼 들렸다. 그리고 한 .. 더보기
비껴간 이연 1. 한 사람이 천일이 넘는 동안 키워온 믿음 없는 사랑을 놓아버렸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주변에서 서성거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헤아릴 수도 없이 한 끝이다. 혹시나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미련에 끌려 그토록 질기게 두었던 마음을 거둬 버렸다. 그 무렵, 또 다른 사람은 3년여 간 망설여온 사랑 없는 믿음에서 비로소 사랑을 싹틔웠다. 돌이키고 돌이켜, 주춤거리고 방황하던 마음이 비로소 집을 찾았다. 한 사람이 간절한 것을 찾아 나선 무렵에, 또 다른 사람은 간절한 것을 발견한 것이다. 두 사람은 그렇게 엇갈렸다. 또 한 사람이 사랑을 깨달은 날은, 한 사람이 사랑을 놓아버린 날로부터 스무날 정도가 흐른 후였다. 그러나 그 스무날은, 무척 긴 시간이었다. “대관령 고개에서 겨울바람을 맞으며 얼었다가 햇살.. 더보기
소란이 아닌 소통 한의사 이유명호님을 인터뷰 한 일이 있다. 세 살 손자가 할머니보다 우월하다고 인정하는 호주제의 폐지운동을 벌이는 이유님. 그에게 ‘내 인생을 바꿔준 사람’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이유님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꼽았다. 이유님이 중고생 시절, 그의 아버지는 이유님과 함께 이름부터 야한 ‘내시’ 영화를 보러 갔다. 미성년자인 이유님이 입장불가 판정을 받은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부모랑 함께 보러 왔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극장주인과 맞섰다. 그날 이들 부녀는 되돌아왔지만, 그 목적은 훗날 단속이 덜한 동네극장에서 이뤄졌다. 이유님의 아버지는 우리 일상에 스며든 획일적인 권위와 질서에 딴지를 건 어른이었다. 학교에 가야 할 평일에 딸의 손을 붙잡고 광릉으로 놀러 간 일, 교장선생이 훌륭하다는 이유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