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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2+33

가을의 빛깔 입추. 정확히 그날이었다. 게릴라성 호우가 급습하고 난 다음날 아침이었다. 플라타너스 잎 사이로 고개 내민 바람들이 살결에 부딪히는 순간 익숙한 무엇을 만났다. 가을이다. 선선한 기운마저 도는 바람은 급속도로 마음속까지 쓸고 갔다. 다음날 아침엔 모처럼 학교 지기가 이메일을 보내왔다. “벌써 가을 냄새 맡았수? 아침에 자전거 타고 달리는데 가을 내음 나더군요. 그런 생각하면서 철마다 철 타던 형 생각 잠시 났고 책 받고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보낸 것도 생각났고 그랬어요.” 녀석도 계절을 맡은 모양이었다. 그 후로 서울엔 여름 우기(雨期)를 맞은 듯 며칠인지도 헤아릴 수 없는 날들 동안 비가 내렸다. 담쟁이 넝쿨들을 더욱 윤기 있게 만드는 게 빗방울이듯이, 여름 끝에 걸린 채로 내린 비는 마음 속 가을.. 더보기
일상의 종교 몇 달 전부터 아버지가 성당에 다니신다. 종교적 귀의는 아니다. 심심함을 달래기 위한 방도다. 아버지가 상계동에 뿌리를 내린 지 20여년이 흘렀지만, 시골마냥 친구 분들이 그리 많지 않다. 처음에 성당에 나갔을 때는 어색했던 모양이었는지, 한 번 건너 한 번씩은 빠지곤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두꺼운 성경책이 방안에 놓여 있었고, 어느 날인가는 설교테이프를 듣고 계셨다. 최근엔 베드로라는 세례명도 받은 모양이었다. 지난 주말에 들른 아버지의 방에는 커다란 십자가가 한 개 걸렸다. 성당에서 아버지를 돌보아 주는 분이 선물로 준 거라고 했다. 아버지는 몇 만원 하는 그 십자가를 받아들고는 가격에 적지 않게 놀란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동안 잘 해주던 그 분이 이사가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그게 못내 아쉬운 .. 더보기
아줌마의 눈으로 세상읽기 줌마네 2기 강좌가 끝났다. 아쉬움이 많았다. 아줌마들과 만나는 것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고 그리 익숙한 일상은 아니다. 언젠가는 경험에서 시작된 느낌과, 그 느낌으로부터 비롯된 내 안의 변화 등을 차근차근 들여다보고 싶다. 몇 번인가 그 마음을 풀어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다시, 깨닫는다. 아직 여물지 않은 열매를 애써 따려 하지 말자. 그래서 오늘은 열매가 익어가길 기다리며 나무 아래를 서성인다. 지난 4월부터 줌마네 2기 자유기고가반 아줌마들을 만나면서 줌마네 게시판에 남긴 글들을 모았다. 언젠가는 열매를 만질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1. 가엾지 않은 삶을 위해 “강의를 1시에 하겠다는 아래 글이 무색해져버렸습니다. 어제 강의를 진행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일주일에 하루지만, 그 하루 짬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