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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

30과 12분의 2 재래시장 지나가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에서 내려 수유시장을 지나 왔다. 재래시장이다. 긴 골목 양옆으로 가게들이 펼쳐졌다. 난전이다. 길가에 쌓인 물건들을 구경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먹을거리다. 푸성귀들은 입맛만 다실 뿐, 반찬으로 만들 재주가 없는 나로선 눈요깃거리에 불과하다. 혼자 살아서 그런지 모든 게 생활로 보인다. 불쑥 솥뚜껑삽겹살구이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내 얼마나 고기를 구워먹는다고 저런 걸 사나 싶어 그냥 지나친다. 진열된 계란은 슈퍼에서 구입하는 계란보다 커 보인다. 뭔가 먹고 싶은데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한참을 그렇게 구경만 하고 시장골목을 빠져 나올 쯤, 살짝 의구심이 인다. 무엇 하나 단박에 고르지 못하는 게 빈약한 요리 실력 때문이 아니라 자본의 빈곤 때문이지 않을까. (.. 더보기
아침 6시, 퇴근 버스 버스는 아침 6시를 거두어 마포를 떠난다. 이틀 밤낮을 또닥거려 여섯 쪽 짜리 기사를 떨구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아침, 무엇을 비웠기에 가슴 한 조각보다도 가벼운 몸만 끌고 가나! 함부로 나서지 않던 단어, 한 줄도 더 내닫지 않으려던 자판기를 달래고 어르다 맘 끝이 타든다. 헛돌던 생각이 그때쯤에야 다급해져 아쉬운 대로 손가락을 위로한다. 타다닥 타닥 탁 타닥 아! 이렇게 한 잡념도 주검을 토해 놓거늘, 보일 것 없으면서도 벗을 것들은 있는 것이거늘. 미처 버스에 태우지 못했던 어제 밤과 그저께 아침. 얼마나 더 감추겠다고 마포에 붙잡아 두었나. 그 이틀밤낮에도 버스는 마포를 지나쳤을 텐데. 마포는 어제 아침 6시를 아니 그제 밤 10시도 태워 보냈을 수 있었을 텐데. 바람 없는 대숲에서 연을 올리려다.. 더보기
30과 12분의 1 어느 인턴 회사에 두 달 계약으로 새로 들어온 인턴이 있다. 올해 4학년 되는 여학생이다. ‘빙그레 쌍년.’ 웃으면서 할 소리는 다 하고 살아서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란다. 그런데 이 친구와 언젠가부터 ‘단짝’ 돼 버렸다. 순전히 근무하는 자리 위치 때문이다. 인턴이 내 옆 자리에 앉게 되니 자연스레 수다가 오간다. 회사에 궁금한 것도 내게 묻고 가끔 웃기는 얘기라며 들려준다. 요즘엔 ‘천하무적 홍대리’ 만화를 보고는 얘기해 준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상사와의 관계 등을 다룬 만화인데, 자기 생활하고 똑같단다. 들어온 지 보름도 안 돼 회사생활을 익혔다니 조금 믿기진 않지만. 며칠 전엔 신간안내 기사의 초교지에 뻘겋게 그려진 교정을 보고 투덜거리더니, 오늘은 퍼즐기사에 그려진 초교지를 보고 투덜댔다. 키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