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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깊은사람

나는 아니더라도 그의 연기에 즐거워했던 사람들 가운데 정작 ‘커망아웃’ 이후 그의 고통은 얼마나 나누었을지… 2000년 가을 ‘커밍아웃’한 홍석천님은 그 후 1년 여간 방송에 출연할 수 없었습니다. 누구 때문에, 무엇을 위해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가수 이상은의 격렬한 춤에 반해 연극영화과에 들어간 석천님은 영원한 은사 최형인 교수를 만나 연극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적어도 한 사람은 그의 고통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어머니가 딸만 셋 낳아 아버지가 이복형을 둔 일, 중학교 때 남학생들로부터 성폭행 당한 일, 연기자로서 가진 얼굴 콤플렉스, 여성보다 남성을 더 좋아한다는 성적 정체성… 그 모든 고백은 최 교수와 나눈 석천님의 고통이었습니다. ‘커밍아웃’ 이후 동성애 단체가 주관한 행사에 참석했던 그에게 언론에서 물었습.. 더보기
명함의 폭력 일용직으로 근무하는 어떤 노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명함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는 일이 건설 현장의 막노동이다보니 명함을 만들어도 새겨 넣을 회사이름이나 직책이나 직위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명함을 가질 기회가 생겼습니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중심이 돼 만든 건설회사에서 직책을 맡게 된 것입니다. 회사 이름과 함께 직책이 새겨진 명함을 만든 그는 그 기쁨에 가족들을 모아 파티를 열었습니다. 다음 날엔 고향으로 내려가 고향 사람들에게 일일이 명함을 돌렸답니다. ‘금의환향’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가벼운 명함 한 장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직장인들이라면 으레 갖게 되는 명함이지만, 명함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습니다. “나 명함 하나 만들어줘요. 그럴 듯한 명함 하나 만들어 아이들.. 더보기
보증없는 삶 올해 마흔인 한 아줌마가 남편 후배의 회사에 보증을 섰다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채무를 안고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차압에 대비해 살림을 옮기라거나 집이라도 보존하려면 서류상 이혼을 하라는 등 주변 사람들의 조언이 잇따를 무렵, 전업주부로 살아온 아줌마는 정작 자신의 삶은 아무런 보증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줌마에겐 그의 이름으로 된 재산이라곤 10원도 없었습니다. 결혼 전 직장에서 모았던 돈은 이미 신혼살림 장만에 고스란히 들어가 버렸습니다. 결혼 후 재산은 집이며 현금까지 모두 남편이름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남편의 말을 듣고 보증을 섰음에도 법정에 설 두려움에 남편에게 함께 가 달라고 부탁했지만, 남편의 대답은 냉정했습니다. “내가 갈 필요가 뭐 있어?” 돌이켜보면 첫 아이 유산 후 힘들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