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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깊은사람

유일한 항변 2003년 5월, 새벽부터 중국대사관 앞에는 불법체류 자진신고를 위해 여권을 재발급 받으려는 수많은 조선족 동포들이 줄 맞춰 앉아 있었습니다. 경찰은 질서유지를 위해 통제에 나섰습니다. "모두 앉아! 당신 왜 일어섰어? 당장 집으로 가!" 다음날엔 번호표를 나눠주던 또 다른 경찰이 외쳤습니다. "서류를 안 갖고 온 새끼들은 당장 나와! 당신들 진짜 개새끼처럼 굴 꺼야?“ 한 경찰서에도 여권분실신고를 하려고 수많은 조선족동포들이 몰렸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워낙 저들끼리 싸우기를 좋아해요?" ‘질서유지’가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경찰의 말끝에는 ‘중국’ ‘중국’하면서 욕이 뒤따랐습니다. 그 안에 있던 한 조선족 동포는 욕이 울컥거렸지만 참아야 했습니다. 중국 사람이 모두 그런 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더보기
어둠의 근원 소니아는 인도 북부 질란다루에 사는 열다섯 살 소녀입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5살 때부터 축구공 꿰매는 일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몸져누운 상황에서 아버지의 벌이만으로 생계를 꾸리기는 버거웠습니다. 그가 축구공 한 개를 꿰매서 받는 임금은 약 300원 정도였습니다. “밖에 나갈 시간도 없이 하루 종일 공을 꿰매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축구공 두 개를 꿰매고 나면 하루해가 저물었고, 하루 번 일당으로는 우유 1리터도 살 수 없었습니다. 인도의 한 시민단체에 의하면 인도에서만 축구공 꿰매는 아이들은 2만여명이라고 합니다. 파키스탄은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되지만, 정부는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축구공을 제조하는 초국적기업들이 제조노동자들에게 실질 임금을 보장하지 않는 상황에서.. 더보기
어떤 감사 찬드라 쿠마리 구릉. 평범한 이 네팔 여성이 우리 사회에 알려진 때는 2000년 3월이었습니다. 93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온 그는 음식값 문제로 생긴 오해 때문에 경찰에 연행되었습니다. 우리말이 서툴렀던 찬드라는, 정신병원으로 넘겨져 6년여 간 강제투약에 모욕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찬드라는 우연히 발견돼 불법감금 상태에서 풀려났고, 정신병동 생활을 끝내고 고향 네팔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찬드라의 ‘특별한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딸의 실종 층격에 오랫동안 앓다가 빚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로 인해 찬드라는 이웃들로부터도 싸늘한 시선을 받았습니다. 최근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과 ‘녹색평론’에서는 참회의 성금을 모아 찬드라에게 전달했습니다.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한국..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