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깊은사람 썸네일형 리스트형 성공의 뒤안길 박지성. 수원공고를 졸업하고는 프로구단이나 동국대 등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체력이 약해 탈락하고, 결국 “주워온 아이”로 명지대에 입학했습니다. 한․일 월드컵에서 박지성은 평발이라는 ‘장애’를 극복한 채, 뛰어난 체력을 바탕으로 대표팀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가 되었습니다. 김남일. 그는 고 1때 가출해 8개월 동안 웨이터 생활을 했고, 대학 때는 막노동판을 다니며 축구로부터는 먼 방황길을 걸었습니다. 한․일 월드컵에서 김남일은 상대의 게임메이커를 전담하는 역할엔 대표팀 최고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을용. 강릉상고를 졸업하고는 대학진학이 어려워지자, 공사판 막일꾼과 웨이터 생활을 하였습니다. 고등학교 은사의 권유로 다시 축구를 시작한 이을용은 한․일 월드컵에서 이른바 ‘히딩크의 황태자’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더보기 인권운동가, 히딩크 소신 있는 추진력, 장기적 비전, 철저한 사전준비, 자신감 고취, 기초 경쟁력 중시… 이른바 ‘히딩크 리더십’을 말할 때 드는 덕목들입니다. 그러나 히딩크는, 달리 보면 인권운동가입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아직껏 벗지 못한 허울 가득한 권위와 엄숙주의를 넘어선 사람입니다. 그의 골 세레모니는, 골을 넣어도 팔짱을 낀 채 무게를 잡던 한국 감독들의 엄숙주의를 단번에 날려버린 행동이었습니다. 한때 전지훈련장에 여자친구와 동행한 것을 두고 비난하던 일부 언론의 속 좁은 엄숙주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방종’이었습니다. 그는 일치를 만드는 ‘자유’를 알고 조직을 키우는 ‘개인’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훈련 중에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선수들과 함께 골대를 나릅니다. 선수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는 .. 더보기 사람의 뒷길 최옥란, 그는 장애인이었습니다. 생후 100일 무렵 뇌성마비로 오른쪽 손과 다리를 제대로 쓸 수 없었습니다. 출산과 결혼 후에는 스트레스를 받아 팔이 거의 몸에 붙어버렸습니다. 최옥란, 그는 빈민이었습니다. 남매를 혼자서 키우던 어머니는 미군 기지촌 인근 식당 등에서 일품을 팔았습니다. 그 역시 청계천 벼룩시장에서 좌판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최옥란, 그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는 이혼 후 아들을 데려오기 위해 양육권 소송을 준비중이었습니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인 그에겐 너무나 큰 희망이 었습니다. 최옥란, 그는 투사였습니다. 한때는 최저생계비 현실화 등을 요구하며 1주일간 농성을 벌였습니다. 그런 그는 2003년 3월 영구임대 아파트에서 음독자살했습니다. 신체 장애…, 경제적 가난…, 남성이 아.. 더보기 이전 1 2 3 4 5 6 7 8 ··· 1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