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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알오름의 말들에 대한 예의 - 올레조각4 말미오름을 내려왔다. 시멘트 포장된 농로를 따라 걸었다. 얼마쯤 가자 이정표는 민둥산같은 풀섶으로 향했다. 언덕배기 풀밭을 따라 올랐다. 알오름이다. 숨을 턱까지 채우지 않더라도 오를 수 있는 높이지만, 그곳 또한 올레꾼이 주인은 아니다. 알오름의 정상 한 켠은 말들이 차지했다. 예닐곱 마리의 말들이 저희들끼리 한가롭다. 아마도 올레길이 열리기 전까지는 온톤 저희들의 세상이었을 듯싶다. 말들이 서성이는 꼭대기엔 풀들이 밟혀 맨땅이 드러났다. 사람이 다가가도 전혀 놀라지 않는다. 발정한 수놈은 아랑곳없이 제 짝을 찾기에 바쁘다. 성산포 앞바다와 성산일출봉을 보며 키운 배포가 보통이 아닌 듯 싶다. 이쯤 되면 사람이 말을 괴롭히지 말고 피해가야 한다. 오히려 그 옆으로 지나는 사람을 용서해주는 말들에게 감사.. 더보기
지구자전거3 - 사람지도의 여운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배울 때, 담당 교수는 학생들에게 불쑥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 가운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노래 가을편지 구절의 한 토막이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질문은 이랬다. “모르는 여자가 왜 아름다울까?” 높새와 첫 여행지인 함양에 고속버스가 도착한 시간은 밤 8시 무렵이었다. 숙소를 찾으려고 높새를 타고 어두운 함양읍내 거리를 슬슬 달렸다. 숙소를 찾는 조건은 두 가지였다. 가격이 싸고, 높새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을 것. 세 군데의 모델을 드나든 끝에 네 번째 모델에 들러 방을 예약했다. 가격은 2만원이고, 높새를 모텔 방에 함께 들였다. 그 모델 주인 아주머니와 몇 마디 말문이 열렸다. 내.. 더보기
지구자전거2 - 섬진에 내린 우주 도로는 살짝 비에 젖었다. 물기는 머금었지만 물이 고인 곳은 드물다. 밤새 비는 이슬과 가랑을 오락가락했을 듯싶다. 하늘은 아직 비와 이별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흐릿하다. 저 멀리 산자락들엔 구름도 제법 걸려있다.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이 흐린 아침이 특별한 것은 높새와 더불어 만난 강 섬진이 있기 때문이다. 섬진. 음식을 음미하듯 천천히 읊어보면 맛이 절도 도는 말이다. 감싸 안듯 푸근한 맛도 들고, 여유도 묻어난다. 섬진의 유래는 고려 말엽으로 올라간다. 당시 왜구가 출몰했을 때 강기슭에 두꺼비 수만 마리가 나타나 울부짖어 왜구가 달아났다는 구전이다. 두꺼비 섬(蟾)자에 나루 진(津)을 쓰는 섬진의 단어도 그 구전으로부터 물려받았다. 하동읍에서 2번 국도와 861번 지방도로 길을 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