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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

사랑도 아픔이 되거늘 채 한 뼘도 안 되던 키가 한 팔 길이 만큼 자란 건 기쁨이겠으나, 제 몸 하나도 버티지 못해 푹푹 줄기를 꺾는 그 아픔까지도 네가 키운 것인지, 그처럼 미련스레 살아도 되는지… 내가 네게 물을 주었고, 내가 너를 볕드는 창가에 두었거늘, 어제의 내 사랑이 오늘 그처럼 아픔이 될 줄이야 하여 네 아픔이 내겐 속상한 일이거늘… 사랑도 그처럼 아픔이 되는 줄… 지금 네가 줄기를 꺾지 않았다면, 나 또한 깨닫지 못했을지니 내가 네게 준 사랑에 너는 온몸을 꺾어 나를 일깨워 준 바가 있으니 내게 보여 준 그 아픔 또한 내게 주는 사랑인 줄 알겠다. (2002.12.) 더보기
빛에 몰입하다 벌써 한 시간 째였다. 잠시 고궁을 바라보다가 이내 발걸음을 옮기고 다시 허공으로 뻗어 오른 나무가지들을 유심히 살폈다. 심지어 길가에 떨어진 손톱만한 벚꽃 잎을 보고도 발길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카메라 렌즈로 꽃잎을 들여다보다가 이내 다시 발길을 돌리고…. 함께 나온 사람들은 열심히 무엇인가를 찍고 있었지만, 중간 점검을 30여분 남기고도 내 카메라 안에 있는 필름은 한 컷도 감기지 못했다. 오직 사진을 찍기 위해, 그것도 누구를 혹은 무엇을 찍겠다는 생각도 없이 사진을 찍기 위한 첫 외출은 그렇게 예상치 못한 ‘산책’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산책이라고 하기엔 머릿속이 복잡했다. 3월 중순, 한겨레문화센터 ‘포토저널리즘’ 강좌를 신청했다. 이전부터 사진을 배우고 싶었다. 취재를 하면서 보고 느.. 더보기
새로운 시스템에 던진 한 표 12월 초, 광화문의 허름한 김치찌개집에서 후배 둥글이와 마주 않았다. 둥글이는 이번 대선에 대한 내 생각을 듣고 싶다고 했다. 그때가 아마도 이번 대선에 대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장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았나 싶다. 한 후배는 “정치 개혁과 부정부패 청산, 그리고 한반도 평화 정책”을 이번 대선의 가장 큰 이슈로 판단했지만, 나는 달랐다. 그런 구체적이고 거창한 이슈들이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큰 기준으로 삼은 것은 ‘이슈’가 아니라, 어떤 이슈를 추진하는 ‘시스템’이었다. 즉 지금의 시스템과는 전혀 다른 비주류의 시스템으로 주류사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그런 시스템의 핵심과 과정은 ‘탈권위’와 ‘탈기득권’에 맞닿아 있다. 이번 대선 때 한편에서는 민주세력으로의 단결을 얘기했지만, .. 더보기